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케이 Aug 23. 2023

현남친의 브런치를 보았다

별난 사람

많은 일이 우연이듯, 오늘의 시작도 그랬다. 브런치 첫 화면에서 전남친의 청첩장을 받았다는 제목을 보았고, 오늘 어쩌다 남자친구와 서로의 브런치를 공개하였다. 순서로 치자면, 나의 브런치 저장글을 보여주었다가 남자친구 자신도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은지 오래되었다며 목록을 보여줬다. 나는 독특한 그의 작가명을 기억했다. 맛있는 저녁을 먹고 헤어졌고, 글을 마저 쓰러 들어온 브런치에서 남자친구의 글을 탐독했다. 보라고 올려뒀다지만 염탐하는 느낌으로 읽기 시작했다. 타인의 생각을 읽는다는 건 늘 신선한 일인데, 그 타인이 지금 매우 가까운 누구이고, 지금은 결코 볼 수 없는 과거, 과거 그 자체를 본다는 건 은근한 재미가 있었다. 주말 저녁에 뭐 하는지 궁금해하는 엄마에게 남자친구가 써둔 글을 읽는 중이라며 당사자만 모르는 놀림을 이어갔다.


직장 생활 후 글쓰기를 병행하기 쉽지 않다는 심경 글과 영화 비평이 많았지만, 웃음 짓게 하는 건 두 번이나 인생이 회색이라며 올려둔 글이었다. 저 친구, 나를 만나서 재밌다는 게 뻥이 아니었구나. 나랑 놀면 웃기다는 게 정말이었구나를 확인한다. 각별한 사이인 만큼 가장 슬픈 지점에서 미소가 지어진다. 지금 나는 속으로 주문을 건다. 너의 회색빛 세상에 웃음 발작을 일으킬 이불킥을 선물할 준비가 되었으니 어서 오라. 여기가 바로 너의 예능판타지가 될 테니.


누가보든 상관없다며 적었을 글이지만 결코 바라지 않았을 독자를 꼽는다면 회사 사람, 가족, 구여친, 술친구 그리고 나정도이지 않을까.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나는 정성을 다하여 놀릴 준비를 한다. 이 반듯한 진심이 ‘굳이?’라는 너의 어이없는 웃음을 도출하도록 부지런히 쓴다. “친구, 나는 다 보았노라.”


혹여나 너무 민망하여 부적절하게도 화를 낼까 봐 방지책을 두자면 모든 글을 다 읽진 않았다. 영화에 흥미가 없어 글 대부분을 지나쳤다. 내가 읽은 건 어쩌면 하나뿐이다. 2년의 짝사랑과 시간에 쫓겨 실패한 몇 번의 연애 그리고 긴 연애 공백기, 사랑 대신 사람 간의 스트레스로 세상에서 나만 행복하지 않은 것 같다는 외로움. 토로하다시피 쓴 글들이 언젠가 지나가는 말로 해줬던 이야기이기도 했다. 내가 몰랐던 너와 내가 아는 네가 다르지 않아서 조금 더 신뢰하게 되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요즘 행복하다는 네 말을 믿는다. 그러니 나는 널 조금 놀려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이전글 냉정함을 사랑할 수 있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