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케이 Aug 21. 2023

냉정함을 사랑할 수 있나

별난 서평

최은영 작가의 단편 「이모에게」에서 나의 이모는 냉정한 사람,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 최소한의 공감도 하지 않는 사람으로 언급된다. 묘사와 대사를 읽으면서 나는 자꾸만 두 사람이 떠올랐다. 잠깐이었지만 정말 마음을 다해 좋아했던 한 사람과 나의 아버지. 겨우 두 사람만 떠오른다는 건 아주 운이 좋은 일일까, 냉정을 알고 공감할 수 있었으니 좋다 할 일일까. 잡다한 생각이 길어지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쓴다.


냉정하다는 말에 떠오른 기억은 보고 싶은 마음에 집 앞에서 전화를 걸었는데 첫마디가 '야'라고 했을 때, 줄어드는 애정표현에 원래 표현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할 때, 그렇게 자기 할 일과 양심에 내 감정은 가볍게 여길 때였다. 그때 나는 상대가 못 됐다, 고집 세다, 재수 없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그 사람이 내게 냉정해졌다며 끝끝내 미워하진 못했다.


냉정한 사람이 나쁘다면,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상대를 벙어리로 만들어서다.  상처받은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화나 분노가 밖으로 새지 못하 마음을 닫고 입을 닫게 만들어서다. 「이모에게」서도 (희진)사랑하는 사람이 주는 상처에는 마음을 닫는 게 ‘주특기’라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냉정하대 사랑을 멈출 수는 없으니깐 말이다. 냉정한 사람을 사랑해서 가장 슬픈 건 그가 더 이상 곁에 없어도 그의 태도는 내 것이 되는 거였다. 깊이 좋아한 만큼 더 많이 더 자주.


어릴 때 들어온 냉정한 목소리는 어떤 흔적을 남길까. 책에서 나(희진)는 이모의 돌봄으로 컸다. 이모는 희진에게 늘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다고’ 했다. 희진은 그 문장이 이모의 사랑표현임을 알았다. 그래서 부응하고 싶어 했다. 나 역시 그랬으니깐. 그리고 그 말이 얼마나 독이 될 수 있는지를 안다. 내겐 지금도 그러하니깐.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다는 말은 지금도 내겐 진짜로 믿어지는 신화다. 내가 삼십 대이고, 회사의 5년 차 중견 사원이고, 친구들이 하나 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지만, 나는 여전히 뭐든 될 수 있다는 희망이 남아있다. 그런데 저 문장에는 한 가지의 단서가 달린다. '무엇이든'이 아무거나는 아니란 것. 아주 좋고, 대단해서 냉정한 사람이 인정하는 ‘무엇’ 이어야 한다. 의도하지 않은 인색한 격려가 받는 사람에게 유일한 것이므로 그 말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싶어 진다. 근데 현실의 벽이 가끔은 너무 높아서, 데드라인이 없는 매번의 기대에 부응한다는 게 눈물 난다. 번번이 노력하는데 노력하다가 아찔하고 노력했는데 공허하다. 작가는 간신히 실망을 비켜갔다고 했고, 나는 아빠에게 나란 존재는 자랑이었지 사랑이 아니었다고 쓰곤 했다.


냉정한 사람이 곁에 있어서가 아니라, 냉정체화해 버린 뒤면 멈춤이 체념, 한계, 포기를 수용한 실패로 느껴진다. 엄격한 자신은 멈출 수 없다. 결국 걸어잠근 분노와 좌절이 무시무시한 힘으로 끌어내릴 때야 수동적 자의로 멈춘다. 정량화할 수 없지만 나는 거기에 냉정과 무심 그리고 외면의 태도가 작용했다고 믿는다.


냉정한 사람으로서 변을 하자면, 애정도 있고 표현도 할 줄 안다. 이모는 희진을 사랑해서 함부로 대우받지 않도록 여린 희진을 고치려 했다고 말한다. 그때 희진은 이모에게 성공했다며 자기 마음은 돌이 되었다고 답한다. 이모는 희진을 사랑해서 데워진 이불 안으로 희진을 들이고 등을 두드려준다. 등을 쓰다듬어주는 이모 앞에서 울지 않으려 안감힘을 썼다는 희진을 보면서 한참 앞의 문장이 생각났다. 나를 이렇게 아프게 하는 이모라면 용서하지 않을 거라는 문장. 나는 희진도 이모를 끝끝내 미워하지 못했을 거라고 짐작했다.


냉정한 목소리를 자주 쓰다 보면 타인에게 냉정하다는 말을 듣고, 스스로에게 점점 더 냉정해지는 사람이 된다. 괜찮다면 상관없는 일인데, 나는 안 괜찮았다. 그리고 내게 또 한 번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냉정한 나의 태도로 상대의 마음이 닫히길 원치 않는다. 왜 말하지 않았냐고 다그치고 싶지 않다. 나는 누군가의 흔적이 될 텐데 누군가의 평생에 쉽게 고쳐지지 않는 아픈 습관이 되길 정말 바라지 않는다.

작가의 이전글 사람, 변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