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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케이 Aug 18. 2023

사람, 변해요

별난 사람

사람들은 자기의 비밀을 말해 놓고 멀어졌다. 왜 그랬을까. 나는 왜 그랬을까. 감당하지 못해서다. 그리고 이럴 때 나를 미워하기보다는 상대를 미워하는 게 쉽다. 비밀을 말한 건 나면서 겁이 나 들어준 상대를 미워하는 거, 그건 나약함이었다. 그래서 나는 비밀을 털어놓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다른 걱정을 했다. 혹시나 이 사람이 나와 멀어져 버리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 다행히 생김새만큼이나 반응도 제각각이어서 말하면서 눈물이 터지는 큰 고백이었음에도 고백 전후로 변함없이 대하는 사람을 보고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단 걸 알았다. 그때의 학습으로 나는 오늘의 문장을 정리했다. 사람이 변하나요? 네, 변해요.


속이야기를 했는데 자신에게는 너무 버거운 이야기라고 말한 친구가 있었다. 나만큼이나 솔직해서 적잖이 당황했다. 스스로 약점을 내보이고도 겁이 나서 도망가는 나는, 친구가 어렵게 꺼낸 이야기에 들어주기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은 친구가 아니라며 비난했다. 비난보다 서운함이 적절했을까. 서운함은 적절했을까. 서운함 역시 내 뜻대로 반응해야 한다는 다소 폭력적인 감정이라고 정의한 최은영 작가의 말에 뜨끔한 걸로 보아 서운함도 아니었다는 걸 안다. 정해둔 감정이 아니면 멀어지기를 택한 나는 얼마나 고집스러운 심보였나. 십 년 전 스물의 유치한 마음이 서른에는 달라졌을까.


저녁 퇴근길 혹은 아침 출근길에 반가운 마음으로 전화를 걸어오는 엄마와 아빠. 그러나 일 년 365일이 무음모드인 나는 전화를 자주 놓친다. 때를 놓친 회신에 두 분은 예쁜 딸이라는 애칭을 거둔 채 뭐 했냐라거나 전화 통화 한 번하기 힘들다는 핀잔을 준다. 변심한 목소리는 하려던 안부는 닳아버렸다는 티를 낸다. 내 애정도 꺾인다. 빠르게 용건을 묻고 3분도 안 돼서 전화를 끊는다. 예상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저리도 쉽게 바뀌는 마음이라니. 기분이 나빠진다. 그렇다, 지금 나는 내로남불. 전화 좀 잘 받아줬으면 하는 두 분의 마음같이 전화 좀 못 받은 거 좋게 넘어가길 원했던 그 마음이 열 살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 타이밍을 맞추기도 쉽지 않은데, 예상대로 반응하기란 얼마나 더 어려웠을까. 그 옛날 어렵다고 솔직하게 말했던 친구의 표현이 단순한 마음이었음을 이제야 안다.


사람은 변하는가에 대해 뚜렷한 답이 없던 나는 답이 생겼다. 사람은 변한다. 따라 할 수 있는 선택지만 있다면 아주 쉽게도 변한다. 며칠 전부터 뜬금없이 묻고 다녔던 질문에 대한 답도 얻었다. 사람이 타인을 더 이해한다는 게 가능할까? 입장이 바뀌면 이해도 가능하지 않을까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내면에 손바닥만큼 좁고 구석진 마음이 있다. 조금만 찔리면 회피하거나 남을 탓하는 마음. 쉽게 서운하다가도 며칠이 지나면 다시 연락하고 부대끼며 지내는 모습도 있다. 마음과 행동의 간극 사이에는 겸연쩍은 표정을 짓게 하는 생각도 있다. 이 세 가지가 맞물리며 돌아가는 덕분에 실수와 만회, 반성 필요한 모든 것들을 하며 맞들면 낫고, 하나보다 둘이 낫다는 사람 속에서 살아간다. 나는 너를 따라 한다. 나는 너를 모방한다. 나는 너를 통해 배운다. 그렇게 사람은 변한다. 다행이다. 사람이 사람을 따라 하는 게 쉬워서. 한편으론 두렵다. 자극에는 선악이 없으므로. 나는 네가 내뱉은 좋은 문장, 네가 하는 좋은 행동, 너의 좋은 장면을 자주 보려 한다. 내 옆에 누구도, 그 누구도 또 누구에게로 전달한다고 생각하면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이 희망으로 맺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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