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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케이 Aug 25. 2023

<꼬박 하루하고 반나절을 걸려>

별난 사람 시

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가버렸니

잡아당기기도 전에 가버렸니

가버렸다는 말에 묵혀두었던 얼굴들이 솟았다 사라진다

     

계세요, 

다음 낱말에 알맞은 그림을 그려줘

하나 행복, 둘 만족, 셋 수용

비어있는 이미지에 플러그인을 할 수 없어서

불행했나봐 불만이고 거절이었나봐

넋두리는 돈이 될 수 없어


아는 지윤이가 많아져서 지윤이만 벌써 셋이 됐다

지윤이 일 지윤이 이 지윤이 삼

다다익선이 맞을까

질문이 늘면 팔자주름이 느는 건 맞아

확신하는 요상한 물음


가질 수 없는 것들은 상해

몸 어디가 가장 발효가 되었나

정수리는 식초공장

가슴 아래는 깨진 와인병

생각이 울적이 아니라 축축해

 

이내 찾은 반고흐 당신의 얼굴, 자화상

왼쪽에 서 있어도 오른쪽으로 걸어도 

따라오는 눈동자 원망 서린 외로움

나는 어쩌자고 그걸 읽어버렸을까

불운했단 말은 안돼 이유없는 슬픔이 되어버리니깐

내 슬픔도 당신을 섣불리 따를 새면 설치지 말라고 말려야지

네 슬픔과 그들의 슬픔이 추종한다고 나서면 말려야 해

슬픔의 크기를 쉽게 늘릴 수 없어

밤하늘엔 별과 낮하늘엔 태양이 뜨겁게 타올라야 해     


발걸음을 크게 돌려

이곳으로 와

멕시코음식점 아보카도 얹어진 까나페 좋아

포크로 돌돌말은 토마토 스파게티가 뜨거워 한 잔 더 한 잔 더 부지런히 리필하러 다니는 엉덩이 것도 좋아     

손을 흔들어 장면전환

돌계단 옆 커피집 거기는 프랑스

검은색 그물코 민소매 셔츠와 허리춤에 회색 리본이 달린 짧은 반바지 단발머리를 하고

거기서 헬로우 인사하면 미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새로운 커피잔이 된 나

거기는 햇살이 뜨겁겠다 바게트가 되어도 좋겠어     


다시 발을 한번 굴려

전화기의 수신음이 이내 공공:공공으로 변환

휴, 안심이 된다

친구 뭐해?     


손딱딱이 두번으로 다음을 외친다

바다 위 서핑보드에 누워

보드를 빼고 담요를 덮는다

일광욕을 한다     


하늘색이 평화로운 물결색이 되고

자화상의 회오리 보라색으로 되었다 다시 하늘색으로 돌아서도

슬픔의 총량은 늘지 않았다는 걸

이해할 때      


꼬박 하루와 반나절을 들여 관람이 끝났습니다     


어느 밤에 사라진 당신의 별빛은

차마 두고 올 수 없어 챙겨나왔습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데 매춘부에게 줬다는

당신의 살점 오브제 거기다 말하면 들립니까

깨진 마음 아래로 흘리면 지하 바닥을 뚫고

당신이 묻혀있는 뜬 눈 속으로 떨어질까요


미안해요 

회오리가 메아리였나 

늦은 이웃의 사과를 받아요

아니지 더 이상의 반고흐는 없다고 주문을 넣어야겠어요      


여기요, 주문할게요.




의정부 예술의 전당에서 반고흐의 레플리카 전이  8월 20일까지 있었다. 고흐의 별 헤는 밤을 너무 좋아해서 목걸이도 별 헤는 밤, 카디건도 별 헤는 밤이 프린팅이 된 외국인 선생님을 통해 알았다. 그리고 이번 전시를 통해 나는 두 가지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첫 째는, 짧고 굵은 고흐의 화필

둘 째는, 레플리카전의 의미


고흐의 초기작품부터 고흐가 프랑스 몽마르트와 아를, 오베를 쉬즈에 머무를 때 그린 일련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감자 먹는 사람들>부터 <해바라기> 연작, <다리 아래에서 빨래하는 여인들>, <아를의 별 헤는 밤>, <카페테라스에서의 별 헤는 밤>, <별이 빛나는 밤>부터, 그의 자화상, 아몬드나무, 초기의 밀밭 작품부터 마지막을 그린 까마귀 지나는 밀밭, 오베르의 마을까지 그의 대표작이 이렇게 많은 줄은 전시회를 통해 알았다. 기계분야에서 레플리카가 모방품을 의미하듯이 회화에서 레플리카전 역시 복제작품으로 구성된 전시회를 의미한다. 진품이 아니라는 단점 하나로 전시를 이야기하기엔 장점이 뚜렷했다. 한 작가의 일련의 작품을 모아 볼 수 있다는 건, 그의 작품이 어떻게 변화했고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그만큼 화필이 무엇인지 분명히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나 고흐 같은 화가의 작품을 레플리카 전이 아니면 생애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본다는 건 정말 힘들지 않을까. 이미지 사진검색으로 모아보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지 않냐 하면 확실히 다른 울림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큐레이션은 힘이 세기 때문이다.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작품뒤로 별이 빛나는 밤, 그다음으로 귀에 붕대를 한 자화상 다음으로 하늘색의 자화상이 전시되었을 때, 나는 그 자리에서 발이 얼었다. 귀를 잘라 오브제라며, 간직하라고 매춘부에게 줬다는 벽면의 작품소개 때문인지 혹은 빨간 벽에 푸르고 검은색의 밤하늘에 빛 번짐처럼 그려진 별들 때문이었는지, 그의 특유의 짧고 굵은 화필이 정신착란을 가장 부드럽게 표현하듯 회오리처럼 변해가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자화상>에서 마주한 그의 눈이 어느 각도에서 걸어도 그의 시선이 따라붙었다. 궁금해졌다. 진짜 그림에서도 이렇게 눈이 계속해서 따라붙을까. 이 따라붙는 시선 때문에 나는 그의 외로움을, 원망 섞인 외로움을 읽어버렸다. 이때부터 발걸음을 옮겨 읽어간 그의 회화의 마지막 작품들 <오베르 성당>과 <오베르의 집>, <까마귀를 나는 밀밭> 앞에서 별과 빛을 잃어버렸음에 속상함이 섞인 한숨을 뱉어야 했다. 불과 일 이년 전만 해도 그의 그림에는 꽃이 피었고(‘꽃 핀 아몬드 나무’) 밤하늘에 별과 달이 있었는데(‘사이프러스와 별이 있는 길’) 말이다. 고흐의 자화상에서 받은 그 눈길을 털어내는데 시를 쓰고 나서야 겨우 끝낼 수 있었다. 정말 하루하고 꼬박 반나절이 걸려 그 눈에서 나올 수 있었다.


의정부에 갔으니 메뉴는 두말할 것 없이 평양냉면을 먹었다. 것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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