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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케이 Aug 31. 2023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나고

별난 사람

내게 지키고 싶은 존엄이라는 게 있는데, 이 존엄이 훼손되는 때가 있다. 요즘 그런 때는 남에게 기생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다. 공짜는 없다는 걸 알아서 과장해서 웃고, 과장해서 반응하다 문득 허무해서 입을 다문다. 그걸로 얻은 건 내 힘으로는 지금 당장 하기 힘든 것들이다. 일례로, 주말에 데이트를 근교로 몇 차례 다니면서 나는 내가 드라이브를 아주 좋아한단 걸 알았다. 내가 드라이브를 하려면 운전면허도 따야 하고, 운전면허를 따려면 서울 외곽에 위치한 운전면허장을 퇴근 후에 몇 번이고 가야 하고, 합격해서 차를 사서 차와 함께 오는 할부금을 내야겠지. 월급날이 꽤나 답답해질 테다. 근데 오늘 당장 친구 옆자리 조수석에 앉으면 운전할 때의 긴장감과 피로감 없이 따라 부르고 싶은 음악을 골라 듣고 창문을 열고 창밖 구경을 하면된다. 두 개를 비교하면 후자는 얼마나 간편한가.


근데 마음은 왜 안 편할까. 운전석에 앉은 상대는 쉽게 얻지 않았단 걸 알아서다. 운전만 그런게 아니다. 2018년 내가 취업을 하던 해 친구 한 명은 창업을 했다. 샌드위치 가게를 열었던 친구는 내가 회사에 회의를 느낄 때쯤 친구도 사업을 접니 마니 하던 고비가 있었다. 일주일 넘게 가게를 닫고 동업자와 전국의 샌드위치 가게를 돌아다녔다는 말을 들었다. 동네 친구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그 친구는 투자하지 않으면 성장도 없다는 말을 했다.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함께 다닌 친구가 어느새 서점에 가면 회장님들이 하는 말을 하고 있었다. 내가 회사를 다니면서 얻고 잃는 값을 치렀듯이, 친구도 자기의 경험으로 삶을 살고 있었다.


갈대 같은 마음이 자꾸 나약한 소리를 내는 요즘이다.연애에서 한창 좋기만 했던 시간이 지나면서 상대와 나의 격차가 자꾸만 거슬린다. 실로 얼마만큼인지도 모르면서 남의 집 귀한 아들에게 자꾸만 양아치가 되어가는 것 같다. 의탁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돋아나 곤란하지만 편하단 걸 알아버렸다. 이 마음이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서 할 수 있는 좋은 것들을 모두 경험할 수 있게 잔고가 줄지 않는 마법의 통장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로또가 되었음 좋겠다. 그런데 그런 통장은 없다. 로또도 되지 않았다. 그냥 생겨나는 건 없어 네가 아껴 썼듯 나도 아껴 쓰면 되고, 네가 다른 노력을 하였듯 나도 다른 행동을 해야 하는데, 생각만 생생하게 살아서 괴롭다.


경고등이 계속 울린다. 쉽게 얻는 편안함만큼 자존심이 계속 상한다고 말이다. 불편함이 다행스럽기도 하다. 아직 생동하는 양심이 있으니깐. 지금에야 아양이지만 나중에는 어떤 비참이 될지 모를 일이다. 그림 그리는 카페 사장님이 왜 멋있다고만 생각했을까. 영어학원에서 만난 사장님들을 왜 신기해만 했을까. 따라하기엔 너무 멀리 있어서였을까. 가까이 있는 친구사장님에게 이내 전화를 걸었다.


좋은 걸 다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이 꽤나 공평하다는 걸 안다. 속상한 마음도 비가 오니깐, 주말이 재밌었으니깐 이런저런 이유로 잊혔다가 다시 빠져들 질문들이란 것도 안다. 까먹는 걸 까먹을 때까지 반복할지도 모른다. 질문은 끝나지 않아 나는 잘하고 있나로 이어진다. 매일 하는 출근, 매일 쓰는 글이 미워진다. 유쾌한 사람들을 만나 즐겁던 영어학원도, 아침에 갈까 저녁에 갈까 뭐가 더 좋을까 고민하던 헬스장도 내키지 않는다. 이전의 나를 찰흙 뭉개듯 뭉개버린다. 변화를 상당히 해롭게 하는 중이다.


열심히 보내온 시간에 화가 난다. 도망갈 줄 몰라서 최선이었고 얼마나 다칠지 몰라서 무모했고 겁이 많아도 몰라서 용감했던 시간들. 차곡차곡, 차근차근 쌓아온 시간이 비교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다. 지금에 와서 조금 편하게, 좋은 것에 기대는 마음을 먹으려니 너무 쪽팔리는 거다. 모른 척이 안되는 그 마음이 부끄럽다고 왕왕 소리지른다. 아, 정말 마음 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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