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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케이 Sep 01. 2023

달리면 달리기를 좋아하게 되죠

별난 운동

운동화, 레깅스, 품이 큰 검은색 티셔츠. 왼손엔 시계 오른손에는 핸드폰. 타이머를 1시간으로 맞춘다. 뛴다. 타이머가 울리면 다시 1시간을 맞추고 왔던 길을 향해 뛴다. 이것이 나의 달리기 규칙이다. 그리고 나는 한강을 달린다.


달리기를 하다 맞은편에서 홀로 걸어오는 할머니들께 꾸벅 인사를 한다. 할머니들은 종종 잘 뛴다는 칭찬과 예쁘다는 말로 화답한다. 오늘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주는 어르신도 만났다. 칭찬받으려고 뛰는 건 아니지만 기분은 좋다.


혼자 기억하게 되는 장면도 있다. 오늘은 엄마와 할머니와 함께 유모차 앞에서 걸음마를 떼고 있는 아이를 보았다. 걸음 소리에 뒤돌아보는 아기의 표정은 입 모양을 대문자 유(U) 자로 크게 웃고 있었다. 오늘 내가 보게 될 것 중에 가장 사랑스러운 모습이란 걸 직감한다. 입가에 침이 고여있었다면, 국자를 닮았겠다 생각하며 그렇게 또 한참을 뛰어간다.


속도를 줄이고 핸드폰을 꺼내게 만드는 장면은 바닥흙을 전부 가려버린 풀밭이었다. 볏잎처럼 뾰족한 잎이 아니라 호박잎처럼 둥글고 넓적한 잎들이 덩굴로 이어져 오랫동안 인적이 없던 숲 속 같지만, 내가 지나는 이 길은 사계절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한강이다. 한강에서 이런 착각 재밌어 꼬리뼈를 살짝 말아 상체를 조금 더 세운다. 세워진 상체만큼 보폭을 줄이고 풀과 나무의 이어짐을 본다. 벌초하는 곳에선 쑥만큼 짙은 풀냄새가 난다. 몸을 연두색으로 광합성 할 기새로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뛰어간다.


공무 수행이라는 글자를 붙이고 지나가는 카트차가 부럽지 않은 건, 양화대교를 지나는 차들을 보면서 즐겁기만 한 건 뛰고 있어서다. 엉덩이 두 짝을 의자에 뭉개고 있는 게 아니라 왼쪽 오른쪽 움직이면서 뛰어다니는 시간이 자유롭기까지 하다. 타이머가 울려 집으로 돌아가자고 방향을 틀 때 두 허벅지에는 없던 힘도 붙는다.


장마철이면 하늘에 낯빛은 각양각색이다. 구름  켠은 하늘색이고 다른 한쪽은 먹색이다. 내 정수리 위쪽 구름길은 어떤 색에 가까워지는지 머리 위에 눈 달고 부지런히 움직인다. 신발 뒤꿈치 뒤로 길어지는 그림자와 그보다 더 좋은 물그림자본다. 물그림자에서 색깔 그대로 반사된 하늘을 보면, 신기하고 행복하다며 곁눈짓으로 얼른 담아낸다.


힘들어 침 꼴깍일 때면 강도 꿀렁임 소리를 주는 착각이 통하는 공간. 나처럼 뛰어가는 사람과 나와 달리 걸어가는 사람, 사람이 많대도 그보다 훨씬 많은 ,풀, 나무. 두 시간 뛰면 정강이 혈관 따라 멍이 일렬로 들거나 네 번째 발가락이 새끼발가락에 치여 물집이 잡히기도 하지만, 며칠은 묵직한 다리를 끌어야하지만, 뛰면서 보게 되는 예쁜 것들이, 뛰면서 맡게 되는 단내가 한 주 뒤에 나를 또 뛰게 만든다. 알람이 울릴 때까지 뛰기만 하면 몸은 땀으로 젖고 무릎은 정말 아프고 기분은 반드시 좋아진다. 언제나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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