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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케이 Aug 30. 2023

신기한 말을 하는 사람

별난 친구

왜 또 웃고 있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할거다. 네가 처음으로 내 친구를 만나러 안동까지 간 날 사람 낯을 가리는 네가, 개를 좋아하지 않는 네가 하루종일 이곳저곳을 다녔던 날. 개 냄새에 피곤한 건 나였고, 배고프지 않은 상태로 식당을 간 게 못마땅한 거였으면서 무심하게 대답하는 태도를 참지 못한다며 음식을 덜어주는 너의 손을 무안하게 만들고 돌아오는 기차 안이었다. 너는 한참을 생각하다 기분 상할 말을 했다며 사과하고 다음 말로 나를 놀라게 했다. “누가 사과하는 건 안 중요해. 푸는 게 중요하지.”


싸우기 가장 힘든 상대는 싸우지 않는 사람이란 걸 아는 사람. 그게 나였고, 싸우지 않는 사람이 너였다. 너는 가끔 아주 신기한 말을 했다. 내가 너에게 등을 돌리고 딴짓을 할 때면, “나 좀 봐줘”라는 말로 그 순간에 너를 돌아보는 일 외에 모든 것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렸다. 나는 그런 뜨끔한 말이 좋았다. 아주 아주 못생겨 보이다가도 한순간 귀여워 보이는, 내 변덕 따라 마음이 언제 어떻게 커질지 몰라서 좋았다.


너의 행동과 말은 닮아있었다. 운전대나 물컵을 잡을 때면 새끼손가락이 살짝 들리고, 일요일 밤마다 분리수거하길 좋아하고 요리가 끝난 동시에 음식만큼 깔끔한 뒷정리를 좋아했다. 할머니들 사이에 있다면 이런 칭찬을 들었을 거다. 애가 참 곱다. 몸집 큰 나긋한 곰돌이 같은 너는 말도 행동도 예쁘니 자연스레 다정하다는 말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런 너에게 배우는 것 중에 하나가 괜찮다는 마음이다. 괜찮다는 말은 네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었다. 나도 자주 하는 말이었지만 너와 다르게 마음에 썩 들지 않은 상황에서 말끝을 흐릴 때 쓰는 표현이었다. 너 역시 그런가 싶어 뭐든 괜찮다 할 때 몇 차례 내 맘대로 해보았는데도 넌 정말 괜찮아해서 다른 괜찮음을 믿게 되었다. 마음이 충분한 네 옆에서 나는 좀 편해졌다. 틀렸고 잘못했고를 따질 것 없는 네 곁에서 경계를 허물어 갔다. 경계란 게 별거 아니라면 아니고 대단한 거라면 무시무시한 선입견이었다.


하루 여덟아홉 시간을 잔다면 자느라 하지 못한 것들로 찜찜하고 아쉬워야 하는데 늘 그렇게 자야 개운하다며 하루를 시작하는 너를 보았다. 처음에는 새벽 여덟 시, 열 시 요정이라며 놀리기도 했다. 원래의 나라면 틀렸다 할 일인데 이상하다 쯤에서 끝난다. 딱히 이기고 지는 게 없는 너의 세상에서 나는 뒷짐 지고 어슬렁어슬렁 거리다가 늦잠이 좋은 건가 싶어 따라 해 본다. 부드러운 지각변동이다.


이것을 스밈이라 한다면 낯선 게 싫어 여러 번 선을 긋기도 했지만 결국은 가랑비에 젖듯 젖는다. 완강하거나 뾰족할 거 없이, 한두 발의 양보가 아니라 몸 한 켠을 다 비켜서서 다 괜찮다는 말해주는, 그리고 마지막 인사가 좋네, 좋아인 너는 네가 다정하고, 착하고, 무엇보다 신기한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란 걸 알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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