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단서
테이블에 음식을 차린다.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먹는다. 일상이 무너졌을 때 나는 이걸 못한다. 음식을 접시에 담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 잠을 못 자거나 마음이 상한 때면 내게 기다림이란 없다. 냉장고에서 꺼내는 순간 집어 먹고 있으며, 다 먹기도 전에 더 집어온다. 그리고 괜찮아질 때까지 먹는다. 그렇게 임계치가 간당간당하다고 몸에서 알림이 울린다.
한창 예민해지는 몸에 가기 가장 힘든 곳은 지하철이다. 열차가 7분 뒤에 들어온다는 전광판을 보면 초조함과 짜증이 동시에 밀려온다. 서서 기다리면 되는 그 상황이 못 견디게 짜증스럽다. 차라리 고강도 헬스가 나을 지경이다. 아침 지하철 길게 늘어선 줄과 에스컬레이터에서 빠르게 걸어가는 사람, 계단이나 통로를 통해 뛰는 사람을 보기만 해도 내 몸과 마음에 평안이란 단어는 사라진다. 그때 나는 그 누구보다 발걸음이 빠르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요리조리 빠르게 가려고 애쓰는 사람 중 한 사람이디 된다.
웃긴 건 사실 난 늦지 않았다는 거다. 그저 뛰는 사람들과 덩달아 뛴다. 그렇게 불안한 마음은 다른 불안한 마음들과 공명하듯이 움직인다. 지하철역 각 출구에서 저마다의 회사가 다를 텐데 지각하지 않으라 뛰는 저 사람과 내가 가는 길이 다를 거란 생각을 못한다. 그러니깐 다시 말해서 나는 어떻게 해야 분주해진 마음을 다시 여유로 돌릴 수 있는지 알고 싶다.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그들이 너무 바쁠 때 내 마음은 같이 헝클어졌다. 대신 저 멀리 깨끗이 보이는 인왕산을 바라보며 횡단보도를 건널 땐 마음이 아주 편안해졌다. 밥을 먹을 때 빨리 먹는 사람은 내게 최악이었다. 혼자 먹을 때도 마음이 바빴다. 반대로 아주 여유로운 사람들 사이에서 밥을 먹을 때 나는 편안해졌다. 그래서 아주 느린 속도로 천천히 밥을 먹는 사람들과 밥 먹는 게 좋았다. 혹은 백화점에서 여유롭게 식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먹는 밥이 좋았다. 그것들이 충분한 순간이면 달달볶이던 빨간불이 내려갔다.
이번에 시작된 불편주기는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엄마 생일 준비 때부터였을까, 아니면 진학 준비 때부터였을까. 쌓이고 쌓여서 쭈그러진 내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가면서 끝은 힐링 푸드와 쾌변으로 피로 주기를 끝냈다. 이제 잠시 짜증에서 나와 차분히 본다. 새삼 힐링푸드라는 말부터 음미한다. 몸에 좋은 과일들은 안타깝게도 나의 힐링푸드는 아니었다. 내겐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충분히 달아서 확실히 단 걸 먹었다는 신호를 줄 수 있는 게 핫초코라테가 이번의 힐링푸드였다.
요즘을 되짚어보기도 한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던 요즘이다. 그래서 생각과 준비에 바빴기도 했다. 곧 출산휴가를 들어가는 언니들에게 적절한 선물과 편지를 전해야 했고, 엄마 생신 때 만날 가족들 모두에게 줄 선물을 각각 준비해야 했고, 날 위해 매일 한 끼 정도의 도시락을 준비해야 했다. 내년에 입학할 대학원에 맞춰서 가계부를 새로 쓰며 경제적 상황도 살펴야 했고, 학교 근처로 이사도 알아봐야 했다. 매일 마음을 뒤트는 글 한 편을 남겼으면 해서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것과 8시간의 노동자로써 일도 해야 했다. 연말을 맞아 남자친구에게 줄 선물도 생각해야 했고 주말에 신혼집 방문, 생일맞이 친구와의 여행 등이 예정되어 있었다. 동생 생일이 있다. 이렇게 이벤트로 가득하고, 일상에 욕심도 많으니 내 안에서 경고등이 울릴 법했다.
잠잠한 폭식과 신경질이 터졌던 며칠 나는 이 시간을 복기해 본다. 애써 잘해보려고 한 많은 생각들로 고꾸라질 때, 그때는 그 상태로 며칠을 머물러야 한다는 것과 한 번 찌그러지면 예상보다 이삼일은 더 회복기가 필요하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좀 나아진 때의 신호로는 그런 것들이어도 괜찮다는 마음이 든다는 걸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선언할 수 있다. 힐링 푸드와 쾌변으로 이번 피로 주기는 완전히 끝났다. 일 년에 감기를 많이 겪어야 한 번인 것처럼, 몸에 긴 피로주기도 일 년에 한두 차례일 수 있게 조금 더 잘 살피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