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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케이 Nov 28. 2023

말의 저주를 풀었지 뭐예요

대화의 단서

아버지 마음에 꽤나 들었던 연인과 헤어졌다고 알린 날. 아빠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네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게 될 세 가지 중에 하나”라고. 가끔 그 사람을 이야기하다가 아빠가 했던 말이 떠오르면 나는 어떻게 아빠가 딸에게 저렇게 확신을 가진 저주를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분개한다. 생각해 보면 내겐 저주의 말이 몇 개쯤 더 있었다.


연인의 말이 다수였다. 물론 특이성은 있었다. 정말 한껏 좋아했던 상대였기에 그 친구의 거의 모든 말이 기억이 되는 신체적 변화가 있었다. 절기가 바뀔 때 던 관련 속담마저 기억했다. 대상은 그의 말에만 한정되었기에 기억력이 갑자기 비상해진 건 아닌 것 같았다. 반대로 그와 싸울 때에는 싸우고 싶지 않은 속마음 탓인지 머리가 백지화되는 상황을 겪었다. 그의 말에 몸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유무해를 나누기 힘든 말도 남아 때때로 말을 걸어왔다.


헤어졌을 때, 계절이 겨울이었고 운동할 여건이 적절치 못했던 거였으면서 그리고 저녁밥을 해주던 언니와 함께 살아 잘 먹고 안 움직여 몸무게가 는 거면서 이 모든 정황을 물리치고 그 친구의 마지막 말 '살 좀 쪄'란 말로 인해 내가 살이 찌는가 싶었고, 그 모든 정황이 반대여서 살이 좀 빠진 거면서 그 말이 더는 효력이 없어서 살이 빠지는구나 오해했다. 그 생각과 동시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걸 잠시 잊으면서 말이다.


아빠의 확신에 찬 그 저주는 내게 후회를 남기고 싶었던 거라면 나는 똑같은 방법을 나에게 쓰고 있던 걸까. 상대의 유무는 나의 의지가 아니니 말을 통해서 고 싶던 걸까.  후회랑 이웃한 그 마음은 미련일까. 아니면 되게 되게 닮고 싶었던 존재의 부재에 마지막 말을 유훈처럼 떠받드는 걸까. 기분 나쁘게 왜 그럴까.


이런 내 생각을 환기시켜준 상황이 있었다. 최근에 읽었던 김연수 작가의 ‘너무나 많은 여름이’라는 책에서였다. 너무나 좋은 문장이 많은 책이어서 아마 잠들기 직전까지 읽다 잠들었다. 그러다 새벽에 깼는데, 그때 머릿속에 책의 한 문장이 떠올랐다. ‘조금 다정한 것이었다(?)’다. 압도적인 문장이 전혀 아니었고 그래서 이 문장은 답이 되었다. 가볍고 난해한 문장 그 모든 문장이 다 내게 남는 문장이 아니었다. 그때그때 꽂히는 문장은 다르기에 아주 평범한 문장도 남을 수 있었다. 시간과 이해에 따라 몸에 남았다 머리에 남았다 그러다 이내 몸에서 초탈하여 망각이 될 때도 있는 거였다.


너무 아픈 말이어서 한처럼 맺히는 말이 있다. 나처럼 발화자에 의미부여해서 못잊을 때도 있다. 말에 연결된 감정이 너무 강렬해서 자꾸 생각나는 말도 있다. 그게 나쁜 상황으로 끌어간다면 그게 다 말의 저주다. 그리고 난 저주 같은 말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배웠다. 아주 공평하게도 나쁜 말만큼이나 좋은 말도 남는다는 걸 이해했다. 이 방법이 특히 좋았던 건 이해의 순간 모든 저주를  깰 수 있겠단 느낌 때문이었다.


나 스스로 평생 잊지 않겠다고 미움으로 박제했던 말들이 있다. 누구보다 예쁨 받으려고 눈치 보는 게 습관이 된 나에게 제멋대로라며 이기적이라고 했던 배신의 말들이 그랬다. 근데 이 말들도 다른 좋은 말들이 많아지면 이내 입지가 좁아지고 끝내 초월해 망각으로 날아가 버릴 걸 안다. 여기 가설을 하나 세우면 나쁜 말들은 붉닭볶음면같고, 좋은 말들은 삶은 계란 같단 거다. 아주 강렬한 맛에 또 생각나는 맛이지만 매일 불닭볶음면 먹으면 아프다. 반대로 삶은 계란은 매일 먹어도 탈이 없다. 행복이 강도보다 빈도순이라는 말이 이 가설을 지지할 것만 같다. 그렇다면, 내가 내일도 해야 할 건 매일 아침 회사 1층 경호 선생님들과 잊지 않는 고갯짓 인사와 아침 출근길 잘 잤는지 연인에게 연락하기. 그 나머지의 일과도 소소해도 좋기만 한 말들로 채워보는 거겠다. 이때 빈도순인 행복은 편이 돼서 이런 지지를 보낼 것 같다. 큰 힘 아니고 자그만 힘을 내면 되니깐, 그것 참 다행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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