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릭요거트 만들 준비물을 사러 갔다가 그보다 1.5배 더 많은 편지지를 사서 왔다. 무거운 장바구니 들고 집에 가는 길, 엄마와 통화를 했다. 요거트 준비물 사러 왔다 카드와 편지지를 왕창 샀다고, 엄마 생일에도 예쁜 걸로 써주겠다 했다. 오늘 있었던 일 중 자랑하고 싶은 일이 잔뜩 사 온 카드와 편지지였다.
편지지는 예쁜 종이다. 그냥 예쁜 게 아니라 아주 예쁜 종이다. 하나에 오백 원, 천 원인데 거기에 담을 수 있는 마음은 이십만 원쯤 아니 삼십만 원쯤 넣은 축의금만큼 마음이 꽉 찬다. 눈앞에 튀어나온 마음같이 입체형인 것도 있고, 애정(fondest)과 사랑(love)이 한글과 영어 번갈아가며 다채롭게도 쓰여있기도 하다. 봉투도 노란색, 초록색, 분홍색, 파란색 깔별로 형형색색이다. 요즘엔 반투명 봉투도 있다. 투명한 내 마음을 열어봐 달라는 것처럼 말이다. 날로 발전하는 완구에 들여가고 싶은 게 한가득이다.
매대에 꽉 채워진 현란하고 귀여운 종이를 본다. 뭘 고를까 고심하는 진정성이 발휘된다. 서른 가지가 넘는 것 중에 택하게 된 것들은 연상되는 누군가가 있는 것들이었다. 파티(party)가 벌어지는 연회 무대 카드는 축하하는 사람 중에 내가 가장 축하한다고 알려주고 싶은 사람에게, 미니라는 문구가 들어있는 카드는 이름 끝에 민이 들어가는 친구에게, 편지지 6매와 카드가 3매가 들었다는 건 4명인 한 그룹인 친구들에게 공평히 나눠 쓰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고르게 되었다. 고르면서 생각나는 얼굴들은 하나같이 반갑고 친애하는 이들이다. 그러니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생일 축하와 감사. 메시지 별로 카드를 고른다. 편지지를 고를 때 즐거웠던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내년에 있을 축하할 일과 감사할 일을 상상하며 골라서다. 사랑과 감사, 고마운 상황을 그리며 골랐다. 메시지가 적혀있지 않은 편지지들은 고르지 않은 쪽으로 남았다. 상상 속에는 좋은 일들만 있어서다. 미안해서, 위로가 필요한 때에 편지를 쓴 날도 있었지만 고르지 않은 편지지에는 놓고 싶은 사건들을 놓아버린 것 같다. 반대겠지. 놓치고 싶지 않은 일들이 그들을 축하할 일과 감사할 일들이겠지.
가로형 입체카드, 히든편지세트, 다발카드, 미니캐릭터편지세트를 최종적으로 샀다. 사면서 편지의 주인이 다 정해졌다. 늘 그랬듯이 달이 차고 지는 부지런함 속에서 언젠가 이 편지들이 전해질 때가 올 거란 걸 안다. 올해 볼 수 있어 좋았던 그 표정들이 내년에 또 볼 거란 걸 안다.
가정이 이토록 행복하기만 하다니. 편지지 매대 앞에서 어떤 걸로 살까하는 고민은, 고민과 익숙한 걱정과 불안은 드리우지도 못하고 그저 즐겁고 행복하기만 했다. 독백으로 써내려가는 즐거움과 편지를 받아 든 그들의 행복한 웃음은 한참 멀었는데 그저 예쁜 종이를 고르는 지점부터 커다란 행복이 왔다. 그것도 방긋, 아주 크게, 활짝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