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
미국에 머물렀던 시간만큼이나
나는 한국에서 이방인이 되어있었다.
미국에서 퇴직한 뒤에 한국으로 건너와 새로운 직장을 잡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내 학위와 내 경력이 매력적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오산이었고, 나는 한국식으로 대기업 취업을 준비하지 않은 미국에서 애매하게 경력을 쌓은 상태가 되어있었다. 미국에서도 알아주는 꽤나 괜찮은 경력을 갖고 있다고 우겨보고 싶었지만 아쉬운대로 새로운 연봉과 직급 체계에 맞춰 내가 바라던 조건보다 낮춰서 경력직 자리를 찾았다.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듯이, 커리어는 아쉬운대로 맞췄지만 의외로 적응이 힘들었던 것은 내 가치관이었다. 미국에서 지낸 10년 동안 내 가치관이 미국식으로 변해 있었던 탓인지 나는 한국의 많은 것들이 답답하고 생소하게 느껴졌는데, 다시 5년이 흐른 지금은 내가 한국에 적응을 한 것인지 아니면 한국이 그동안 많이 변한 것인지 불편함이 많이 해소되었다.
하지만 내가 한국에서 다시 자리를 잡기 시작한 2016년에는 데이트 폭력, 워라벨, 비혼주의와 같이 지금은 꽤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아직 생소한 때였다. 미드(미국 드라마)는 핫하지만, 그것은 드라마일 뿐 실생활에서는 '김치녀'나 '페미' 같은 단어가 심심치 않게 쓰이는 것을 보면서 남성에 비해 여성의 입지가 낮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도 마찬가지였다.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막 도입되고 있었고 과도기인 시기였는데, 돌이켜보면 한국은 지난 5년 동안 참 많이도 변했다.
어느 날, 친구들과의 모임에서였다.
한 친구가 운동할 때 레깅스 위에 긴 티셔츠나 반바지를 따로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남자친구와 싸웠다며 고민을 토로했다. 나는 당장에 '남자친구가 왜 운동하는 옷차림에 간섭해!'라고 생각했고 입 밖으로 내 생각을 내보내려는 찰나, 친구들의 분분한 의견에 놀라 입을 닫았다.
남자친구가 여자친구를 너무 좋아해서 자신만 보고 싶으니 그랬을 것이다, 남자들은 대게 자신의 여자 친구가 시선 받는 것을 싫어한다는 의견까지, 듣고 있노라니 참 내 친구들은 남자에 대해 이해심도 많았다. 시간이 흘러 요즘은 그런 이야기 보다는 결혼 또는 육아가 대부분의 이야깃거리이지만 그때의 충격은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리고 속으로는 내 친구들 모두가 각성했을 것이라 믿는다.
아무리 애인 사이라 할지라도, 상대의 옷차림에 대한 심한 간섭은 데이트 폭력이 될 수 있다. 아버지가 딸의 옷차림을 소관 하는 것과 남자친구가 소관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아버지 나이대의 남자친구와 사귀어 심각한 세대차이를 극복할 수 없는 것이 아닌 이상, 당당하게 "내 옷차림은 네 소관이 아니야. 내가 어떤 옷을 입을지는 내가 결정해."라고 말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이미지 출처: Getty Images
당시 한국의 워라벨도 내게는 충격적이었다.
미국에서도 워라벨이 유난히 좋았던 회사 생활에 적응한 나는 한국의 광고 회사에 입사해 밥 먹듯이 야근을 하며 그야말로 '멘붕'을 겪었다. 내가 바라던 것은 6시 땡 퇴근만큼 야무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회사 밖에서의 개인 생활을 존중해 주길 바랬다.
"자기 요즘 연애해?"
"부모님은 무슨 일 하셔?"
"결혼은 언제 할 거야, 빨리 해~"
회사에서의 '자기'라는 호칭은 친밀감을 나타내기 위함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나는 친밀하게 느껴지기보다는 이상했고, 나의 연애사와 부모님 직업에 대해서 묻는 것은 회사 친구가 아닌 이상 불편하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웬 오지랖이야 싶었지만 그런대로 적응해 나갔다.
오히려 더 참기 어려운 것은 지나친 가족적 사고였다. 팀워크를 떠나 엄연히 '내 일'과 '네 일'의 경계선이 있는데도 다른 이들이 퇴근하는 시간까지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어야 했고, 은근한 눈치게임에 지쳐 결국 먼저 퇴근 스타트를 끊고는 했다.
자신의 맡은 바를 끝내면 떠날 수 있어야 하고, 퇴근 시간 이후에는 집에서 일할 수도 있는 것인데 보이는 곳에서 티 내면서 일하는 것에 적응된 회사의 동료들이 안쓰럽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지 않은가! 미국의 회사 생활과 너무 비교가 되어 미칠 것 같은 몇몇 순간들을 빼고는 회사생활은 순탄했다.
*이미지 출처: Google
한국은 유독 여자 나이에 엄격했다. (아니, 하다. 애석하게도 현재형이다.)
엄청난 흥행을 거둔 미드 '섹스 앤 더 시티'만 봐도 서른은 진즉에 넘었을 '왕'언니들이 자유롭게 싱글 생활을 즐기는데 한국의 여성은 나이에 '3'자를 달면 이제 어리지 않은 나이임을 인정하고 부지런히 결혼상대를 찾아야 하는 임무를 맡은 것 것 같았다.
서른이라는 나이 때문이었을까. (솔직히 말해 29살과 30살이 무슨 차이가 있다고, 30대는 비장하게 맞는듯한 분위기였다. 게다가 35살이 된 지금은 40살을 바라본다고 더욱 비장해지는 것 같다).
당시 내 친구들의 최대 화두는 연애와 결혼이었으며 어른들 뿐만 아니라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언니들조차 여자 나이에 '3'자 달으면 늦은 거라며 서둘러 신랑감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결혼은 옵션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대학 진학, 그리고 이어서 취업 준비를 하듯 결혼은 뒤따라 오는 필수 코스 같은 것, 그래서 때를 놓치지 않고 부지런히 준비해서 해야 되는 숙제로 여기는 전반적 분위기 속에서 나도 신랑감을 찾아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처녀'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쓰였고, 나중에 노처녀 히스테리 부린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라도 결혼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물론 '골드미스'라는 표현도 쓰였지만, 능력 있는 여성에 한해서였고 심지어 '여자가 그 정도 나이 되면 기가 세서 결혼 못해'라는 험담도 서슴지 않는 지인들을 보며,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게다가 남녀차별적이라고 생각한 것이 남성은 '골드미스터'라고 불리지 않는다. 능력 있는 신랑감 대신 '골드미스터'라는 단어는 쓰지 않으면서, 커리어가 탄탄한 여성은 '골드미스'라고 불리는 아이러니가 여전히 불편하다.
서른 살이 되면 어른인 줄 알았는데 나는 그저 학기 중에 전학한 학생처럼 바쁘게 적응을 해야 했고 20대의 전부를 보냈던 미국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한국에서 30대를 맞이하면서 혼란스러웠다.
다행히도 요즘의 한국은 아주 빠르게, 또 많이 바뀌었다.
데이트 폭력에서 나아가 '가스 라이팅(gas lighting)'이라는 개념까지 탑재한 요즘의 20대는 적어도 레깅스 운동복 차림을 이유로 남자 친구와 다투거나, 불필요한 간섭을 사랑으로 혼돈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이와 성별을 막론하고, 본인이 '비혼주의자'라고 말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고 업무환경 내의 수평적인 관계를 위해 직함을 생략하는 회사가 늘어나고 있다. 삼십 대 중반의 내가 '라떼' 어르신의 대열에 낄까 봐 회사에서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러운 요즘, 나는 워라벨을 야무지게 챙기는 후배들이 대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