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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심 Mar 31. 2021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

32-2.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만난 인연은

곧 사랑이 되었다.




남편과 처음 단둘이 만난 그날 밤, 우리는 와인바가 문을 닫을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밤이 돼서야 만나기는 했지만 새벽 2시가 다 되어 가게 점원이 폐점할 때라고 말했을 때에 처음 시계를 봤을 정도로 우리의 대화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몇 시간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가 있었다. 가게에서 나와 헤어질 때에는 나도 모르게 "집에 가기 아쉽다"라는 말이 세어 나왔고, 나중에 들어보니 남편은 그때 그 순간 진심 더 같이 있자고 해야 하나 고민했다고 한다. 시간이 늦어 서둘러 집으로 향했고, 마침 다음날이 광복절이었어서 우리는 다음날 낮에 또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설레었던 생각이 난다. 분명히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생각도 못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설레고, 기대하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그렇게 인생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었다.


다음날 우리는 약속대로 만나 점심을 먹고 한강 공원에 놀러 갔다. 그 날따라 공원에 많은 연인들이 돗자리를 펴고 누워 있었는데 아직 어색한 우리 두 사람만 꼿꼿이 앉아있었던 생각이 난다. 풀밭이었지만 얇은 돗자리 한 장 깔아놓고 오래 앉아있으려니 슬슬 바닥에서 냉기가 올라와 이리저리 자세를 고쳐가며 앉아있었던 우리 두 사람은 그날도 할 이야기가 그렇게 많았다. 3년 여가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정말 좋기는 했나 보다. 지금은 그렇게 오래 앉아있으라고 해도 못 앉아있을 텐데 그때의 우리는 어린아이들처럼 재미있어했다.




당시에 다니던 회사가 야근이 잦았던 탓에 평일 만남은 무리였는데, 남편은 그런 나를 보러 퇴근 후 회사 앞으로 와 내가 일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주곤 했다. 내가 미안해할까 봐 자신도 공부할 게 있었는데 잘되었다며 집도 회사도 여의도인 사람이 굳이 역삼역까지 와서 카페에서 기다리고는 했고, 나는 그러는 그 사람이 고마워 서둘러 일을 마치고는 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 남편은 우리가 늘 잘 가던 그 카페에서 내게 고백을 했고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조금씩 더 깊어져가고 있었다. 돌아보면 그때의 우리는 정말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 기억에 제일 또렷이 남은 것은 그가 씩 웃는 표정이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내가 아무리 늦어도, 내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뾰로통해 있어도 씩 웃는 그의 표정에 나도 같이 기분이 좋아지곤 했었다.


그와의 연애는 평범한 듯 특별했다. 그는 종종 회사로 큰 꽃다발을 보내 나를 놀라게 했고, 어쩌다 다툰 다음 날에는 달달한 편지로 내 마음을 달래주기도 했다. 마치 통한 것처럼 그는 내가 말하기도 전에 내가 좋아하는 맛집을 데려갔고, 주말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데이트 코스를 짜오는 로맨티시스트 남자 친구이자 내게 찾아온 행운이었다.  




늦여름에 만나 함께 가을을 보내고, 곧 또 겨울이 되었다.


 해의 겨울은 여느 해보다 추웠지만 설렘 때문이었을까, 밖에서 함께 걸을 때도 추운  몰랐다. 우리는 그해 겨울 함께 떠날  휴가를 계획했고, 마침  관광이 다시 허용된 보라카이로 행선지를 정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여행을 떠나기 며칠  내가 독감에 걸린 것이다!


회사에 출근해 있는데 열이 나길래 ‘이상하다하면서도  낫겠지 싶어 타이레놀먹고 버티고 있었는데, 오후 회의 시간쯤 되니 식은땀이 줄줄 나면서  이상 버티기 힘든 지경이 되었다.


함께 회의하던 회사 사람들은 내 얼굴을 보더니 심각한  같다고 병원에 가보라고 했고, 나도 더 이상은 못 버티겠어서 그 길로 병원에 더니 독감 진단이 나왔다.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곧장 집으로  며칠을 정말 끙끙 앓았다.


며칠 쉬면서 약을 먹으니 독감 기운은 조금 잦아들었지만 평소에도 저질 체력나로서는 여행은 도저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로 남자친구가 아쉬워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무리해서라도 가볼까 하는 음이 들어 (예약금을 날리는 것도 조금 아까워서) 짐을 쌌고, 다음날 여행길에 올랐다.


속으로는 '이러다가 보라카이 가서 관광은커녕 내내 병원 신세 지다가 오는  아닌가' 하면서도 어디서 그렇게 초인적인 힘이 났는지 정신 차리고 보니 남자친구와 보라카이에 도착해 있었다. 나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여행 스타일을 갖고 있던 남자친구는 거의 30 단위로 촘촘한 관광 계획을 세워 왔었는데 (여행사 패키지 여행보다 더 한), 첫날은 시름시름 아픈  때문에 모든 계획을 취소하고 호텔에 있다가 가까운 바닷가만 거닐었다.


여행 둘째 날은 크리스마스였는데, 더운 나라에서 맞는 크리스마스는 새로웠다. 시내의 거리에는 산타 코스튬을 입은 관광객들이 즐비해 왁자지껄 축제 분위기가 났는데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은 탓에 우리 둘은 인파를 벗어나 한적한 해변가로 향했다.  동안 머금은 햇살로 저녁까지 따끈따끈한 백사장을 맨발로 거닐면서  손은 상대의 손을 잡고  손에는 벗은 슬리퍼를 들고  해변가를 걷고 있노라니, 문득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이 떠올랐다.


따뜻한 바람이 산들산들 부는 어느  여름밤의 저녁, 적당히 덥고, 적당히 습한 공기가 기분 좋게 몸을 감싸고 있어서였을까. ' 사람과 함께 끝까지 걸어가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런  마음을 표현할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고심하다가 "네가  소울메이트인  같아"라고 말했다. 그리고  말을 들은 그는 특유의 웃음을 지었다. -





행히도 다음 날은  몸이 많이 회복되어 처음으로 남자친구의 촘촘한 계획에 맞춰 움직였다. 각종 수상 스포츠를 즐기고마사지를 받으러 갔다가 호텔에 돌아와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고 가까운 리조트저녁을 먹으러 갔다. 웬일인지 남자 친구는 평소보다  멋을 냈는데, 급기야  더운 나라에서  바지를 꺼내 입어 나는 “누가 본다고~ 너무  내는  아니야하면서 - 웃었다.


리조트에 도착해서 보니, 프라이빗 비치 앞에 딱 한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었다. 분명히 해변가의 뷔페를 예약해 두었다고 했는데 한 테이블 밖에 없어서 앉으면서 남자 친구에게 속삭였다.


"아무래도 여기 망하겠다. 손님이 우리 밖에 없네."


석양이  보이는 자리에 앉은 우리는 느긋하게 식사를 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뷔페식으로 식사가 준비되어있었지만 정말  우리  명만을 위한 레스토랑처럼 서버들이 음식을 모두 자리로 가져다주었고, 특별한 날을 위한 샴페인이라며 샴페인을 따라주었다.


속으로 크리스마스이브인  생일도, 크리스마스도 모두 지났는데 오늘은 무슨 특별한 날일까 하고 있던 가운데, 남자친구가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반지를 꺼내 프러포즈를 했다. 너무 갑작스러웠다.


영화에 나오는 여주인공들은 다들 환하게 웃고, 남자친구가 일어나 반지를 끼워줄 때까지 잘만 기다리던데, 나는 너무 란 까닭에 아무 말도    남자친구가 일어나기도 전에 내가 같이 바닥에 주저앉아 그를 끌어안았다. 이 부분은 친구들한테도 꼭 이야기해주고 싶은 부분인데, 아무리 당황해도 프로포즈를 받으면 반드시 착석해 있길 바란다. 그래야 사진이 잘 나온다.


남자친구가 반지를 끼워주고 한참 뒤에야 진정하고 손가락 위에서 빛나고 있는 반지를 봤다. 예쁘다는 말과 함께 눈물이 났다. 불과  개월 전의 우리는 서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였는데, 우리  사람이 함께 여행을  평생을 약속했다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프러포즈 뒤의 식사는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맛보다는 풍경이 다한 식사 자리였고, 사실 너무 놀라 웃고 울고 하다 보니 음식을  이상 겼다. 그리고 밤 늦게 호텔로 돌아가서는 서로 배고프다며 발코니에서 컵라면에 맥주 한잔을 마시며 낄낄거렸다.  




글을 쓰고 보니 꿈같은 시간들만 있었던  같지만, 현실 연애는 결코 꿈만 같지는 않았다.


 듯이 기뻤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슬프고 미친 듯이 화가 나는 순간들도 있었다. 때로는 서로를 오해했고, 각자의 방법이 맞다고 오기 부렸고, 상대를 이해할  없다며 화냈다. 그렇게 우리는 여느 연인들처럼 조금씩 서로에 대해  깊이  많이 알게 되었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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