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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심 Jan 29. 2021

내가 소개팅을 통해 배운 것

30-2.

나 이런 사람이야.
사랑에 빠질만한 조건이지?




스물아홉에 12월 말에 귀국한 나는 한국에서 서른을 맞이했고, 서른이 되던 해 부지런히 소개팅을 받았다. 부모님을 포함한 다양한 지인들이 소개를 해주시다 보니 참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게 되었고, 나는 금방 소개팅이라는 시스템에 싫증을 느꼈던 것 같다. 나의 부족함 때문이었겠지만 소개팅 운이 안 따라준 덕에 부작용으로 ‘남자’와 ‘연애’에 있어 회의적으로 변하기도 한 해였다.




당시 소개를 받은 분들은 조건적으로 어느 것 하나도 안 빠지는 훌륭한 분들이었지만, 조건은 조건일 뿐 가슴 떨리는 사랑을 소개팅으로 만나는 것이 퍽 힘들어 보였다. 상대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자신을 빠른 시간 내에 어필해야 하는 소개팅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서인지 첫 만남부터 본인의 배경, 학벌 그리고 직장(또는 연봉) 중 자신의 강점을 나열하는 것부터 사랑에 빠지는 것을 방해하는 것 같았다.


"나 이런 사람이야, 사랑에 빠질만한 조건이지?"


라고 하는 것 같아 불편했고 같이 장단을 맞추고 있노라니 나도 덩달아 가식적인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자연스럽지도 매끄럽지도 않은 만남들이 반복되다 보니 흥미를 잃어갔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라 할지라도 그저 최근의 재미있었던 일, 각자의 관심사나 취미 등 담백하고 진솔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만남이 고팠다.


간단한 호구 조사 뒤에 따라오는 결혼 관련 질문들이 더 큰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결혼 생각은 있는지, 결혼 전 적정 연애기간은 얼마인 것 같은지 등의 질문이 대다수였는데 간혹 가다가 결혼 후 적정 생활비가 얼마인 것 같은지, 결혼 후 직장을 계속 다닐 생각인지를 묻는 이들도 있어 더 당혹스러웠다. 요즘은 직장을 다니는 여성을 더 선호하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그때 내가 소개팅으로 만났던 이들은 집에 있는 와이프 (house wife)를 원했다.


당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30대 중반의 소개팅남은 자신의 부모님이 건물주라면서 결혼해서도 자신의 부모님이 생활비는 넉넉히 주실 테니 자신은 내조하는 와이프를 원한다고 했었다. 문득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그는 현재도 그렇게 철없는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기억에 남는 마마보이 소개팅남도 있었다. 나이 차이가 꽤 나는 누나가 두 명 있었는데 아들을 낳기 위해서 어머니께서 자신과 누나 사이에 딸 두 명을 유산시키면서까지 막둥이인 자신을 낳았다고 했다. 연로하신 어머니께 본인이 잘하면 될 텐데 대리 효도를 해줄 며느리감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마마보이 소개팅남, 철없는 건물주 아들 소개팅남 등 몇몇 인상 깊은 소개팅남들을 만난 뒤에 멋진 친구도 만났으나 그는 곧 미국에 박사 공부를 하러 갈 계획으로 가급적이면 같이 떠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다. 미국에서 얼마 전 귀국한 나에게 달갑지 않은 이야기라 그 만남도 이어지지 않았다.




서른 살을 결혼 적령기로 믿었던 나는 소개팅에 성실한 자세로 임했지만 나의 인연은 결국 찾지 못했다. 그리고 신랑감을 모색하는 그 과정 중에 나는 모순된 여성상을 바라는 남성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결혼 전에는 멋진 커리어 우먼이다가 결혼 후에는 참한 며느리, 내조하는 아내

학벌이 좋고 억대 연봉을 받아도 '오빠가 최고야'라고 말해주는 순종적인 아내

얼굴과 몸매가 이미 착한데, 마음씨는 더 착하고 명품과 사치는 멀리하는 아내

 

단순히 내가 독특한 분들은 많이 보았던 것인지, 아니면 아직도 이런 모순된 여성상을 가지고 있는 남성들이 많이 계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성별을 막론하고 모순된 이성상을 그리기 전에 자신을 되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나는 객관적으로 어떠한 사람인지 그리고 나의 이성상이 모순되지는 않았는지..,


소개팅 릴레이는 시간 낭비만은 아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그리고 내가 어떠한  이성상을 배우자로 원하는지 배울  있는 기회였다.  




5년이 흘러 기혼자가 된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의 나는 결혼에 대한 환상이 많았던 것 같다. 어렸을 적부터 또래에 비해 현실 감각이 뛰어났던 터라, 백마 탄 왕자님을 그리는 그런 환상은 없었다. 하지만 나를 무척 사랑하고 아껴줄 사람과 결혼해 아이를 낳고 화목한 가정을 꾸린다는 상상 속에 장애물 하나 없는 것이 환상이었던 것이다.


현실은 다르다.


가파르게 상승하는 집값에 비해 연봉은 제자리걸음이고, 아이를 키우는 일은 사랑뿐만 아니라 경제적, 시간적 여유를 수반하는 일이라 쉽지 않은 선택이다. 결혼 후의 명절은 온전히 내 연휴가 아닌 나와 남편의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고,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살기에 불편함을 감수하고 내가 불편한만큼 상대가 편해지는 그런 아이러니한 팀 플레이기도 하다.  


과격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결혼 서약은 앞으로 어떠한 불편함이 오더라도 내 앞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감수하고 변치 않을 것이라는 무모한 맹세인 동시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약속할 수 있는 행운이다.


그러니 얄팍한 질문으로 이 사람과의 결혼 생활이 어떨 것이다를 가늠하는 그런 질문들이 가득한 선 또는 소개팅은 사양하는 것이 좋겠다. 혹은 내가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생각하는 결혼은 무엇인지, 결혼이 그저 조건과 니즈가 맞는 두 사람의 결합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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