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기동 사적식사 Jan 04. 2019

요리사, 요리책을 말하다

저는 저자인 Fabio 님과 일면식도 없습니다.

종합상사에서 사업개발 관련한 일을 하고 있던 수년 전, 요리를 업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고민이 담긴 장문의 편지를 보낸 적이 있는데 생각 접으라는 논리적이고 점잖은 충고를 받은 짧은 인연이 있을 뿐입니다.

그로부터 또 수 년이 흘러 저는 이제 전업 요리사의 길에 들어서 있습니다. 저는 현장 직접 조리를 원칙으로 하는, 정찬을 차려내는 출장 요리를 표방하고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제게 이 업의 중심적 화두는 취향과 밥벌이의 균형점을 찾는 것입니다. 의뢰인에 맞추어 메뉴를 재구성하는 특성상 20,000원짜리 고기메뉴를 만들 때 벌어지는 일을 묘사한 이 책의 에피소드와 같은 일들이 원가 분석을 위한 엑셀을 앞에 둔 제 머리 속에서 매번 벌어지곤 합니다.

사실 이런 화두는 요리사만 당면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건축자재를 수입해서 판매하는 업무를 했었는데 업계 사람들을 만나보면 수익을 떠나 각 영업사원들이 한 번 팔아보고 싶은 물건들이 있고 이는 모두 제각각입니다. 모든 사람은 취향을 가지고 있고 이 세상의 모든 일에는 취향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한 편엔 준엄한 밥벌이가 존재합니다. 그 사이 어딘가의 균형점을 찾아내어 취향을 무너뜨리지 않는 범위에서 밥벌이를 해내는 것, 저는 스스로의 존엄을 지켜내기 위해 이 균형을 찾아내야 한다고 느낍니다.

저는 20여년 전, 영국 중소도시에 있는 스페인 레스토랑에서 8개월간 접시 닦은 일을 제외하곤 아무런 실무 경력이 없습니다. 부끄럽게도 정석적인 조리적 접근이 어떠한 것인지, 식재료를 다듬는 기본이 무엇인지를 잘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조리를 전공한 사람의 취향과, 국문학을 전공한 사람의 취향,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의 취향이 모두 요리를 향해 있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이 일의 전망입니다.

하룻밤만에 책을 다 읽었습니다.

밥벌이의 준엄함을 다시 생각합니다. 온갖 실무적인 조언과 어두운 직업적 전망으로 가득한 이 책에서 저는 힘을 얻습니다.

결국 어떠한 직종도, 어떠한 직업도 취향과 밥벌이의 균형을 찾지 못하면, 나의 존엄을 찾아낼 수 없습니다.

좋은 책입니다. 추천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찜쭘, 불과 흙의 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