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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기동 사적식사 Jan 06. 2019

고모님의 떡국

떡국

첫째의 요청으로 만든 떡국입니다. 고명은 계란 지단만을 원하네요.

제게 가장 강렬했던 떡국은 부산에 사셨던, 돌아가신 고모님 댁에 가면 매 명절마다 내어 주시던 떡국입니다. 가장 강렬했던 떡국이 가장 맛있었던 떡국이냐면 그건 전혀 아닙니다.

고모님에 대해 제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기억 몇 가지와 낯설었던 떡국맛이 결합되어 가장 강렬한 떡국의 기억을 만들어 냈습니다.

고모님 댁에 가면 항상 오래된 단독 주택 특유의 쿰쿰한 냄새가 났습니다. 곧 점멸할 것 같은 어두운 백색 형광등 조명 아래 한가위 맞이 씨름대회로 TV채널은 항상 고정되어 있습니다. 고모부는 방에 누워 계시고 고모님은 장미 한 대를 그야말로 맛있게 태우고 계십니다.


아버지는 항상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시지만 4-5시 정도가 되면 떡국에 차례 음식을 곁들여 한 상이 나옵니다.

떡국은 점심때 쯤 끓인 듯 떡이 더 이상 퍼지기 힘들 정도로 퍼져있고, 계란 지단과 김가루 위엔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참깨가루가 뿌려져 있습니다. 전분기 넘치는 국물은 한 술 뜨면 비릿한 멸치향이 온 입안을 가득 채웁니다. 김치는 염도가 거의 멸치젓 그 자체인 수준입니다. 우적우적 씹어 삼키면 강렬한 염분기와 젓갈향으로 입 안이 얼얼할 정도입니다.

고모님 장례에서 저는 처음으로 화장하는 장면을 봤습니다. 화장 후 뼈를 추려내는 손길이 어찌나 날렵하고 군더더기가 없었는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떡국과 장미 담배의 기억 이외엔 고모님과 이렇다 할 추억도 없습니다. 일상의 시간을 함께 보낸 적도 없습니다. 왠지 저는 고모님이 마음 따뜻한 분이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떡국은 항상 퍼져있고 쉬어빠진 김치엔 젓가락이 쉬 가지 않았지만 가끔 그 떡국 생각이 나는 것이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떡국 끓이면서 또 고모님 생각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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