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발견
아내가 작년초에 사준 [배움의 발견]을 작년에는 읽다가 완독을 하지 못하고 그냥 뒀다가 코로나 시국에 이제서야 완독을 하게 되었다.
우선 이 책은 내용보다 소설책인가, 에세이 인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글쓴이의 감정 표현과 상황 묘사가 아주 잘 묻어난 책이라고 생각한다. 소설같은 에세이라고나 할까??
저자는 1986년 생이다. 나보다는 어리지만 동시대를 살아왔기에 일부 공감하며 책을 읽었다.
책의 시작은 어느 시골집의 7남매중 막내로 태어난 7살 어린 소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공교육이 필요하지 않다고 밑는 아보지와 이를 방조한 엄마로 인해 저자는 16살이 될때까지 남들보다 늦은 배움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곳이 시궁창이었는지도 몰르고 저자의 어린 시절은 그녀의 부모가 가둔 시선에만 의존하며 살아갔다.
그렇다. 저자 타라의 집은 배우는 것이 금지된 가족이다. 책과 학교 교육은 아이들을 세뇌시키는 것이라고 믿는 아버지의 고집 때문이다. 배우는 것 자체가 거부 되는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은 대부분 그게 잘못되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배우는 것을 불경한 일이고, 신성한 노동만이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기에 이 가족에서 배움을 스스로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다.
p. 84
'우리 집에서 무엇을 배운다는 것은 온전히 혼자서 방향을 찾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
p. 168
그때까지 평생 내 본능이 주장하는 것은 단 한 가지였다.
나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생존 확률을 높이는 길이라는 것.
현 시대의 교육 방향은 나 - 가족 - 사회로 나가는 거다. 하지만 저자는 부모가 정상적이기 않기에, 배우기 위해서 가족을 건너 뛰고 배우며 사회로 곧장 나가기 위해 넘어야 하는 관문이 쉽지가 않았다. 가족이라는 굴레는 그녀 인생의 전부였기에.... 그러나 저자는 배우기 위해서 그곳을 벗어나야 했다. 그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저자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p. 193
'그때 내가 이해한 한 가지는 내가 나 자신을 믿어도 된다는 것, 내 안에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무언가는 여자든 남자든, 나이가 많든 적든 상관없이 스스로 타고난 본연의 가치, 아무도 흔들 수 없는 가치라는 사실 말이다. '
그러다 저자가 16세가 되던 해에 배움의 길이 열렸다. 배움으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세상은 온갖 예측 불가능한 것들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배움으로 예측 가능한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살아온 세계와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천천히 깨닫게 된다.
p. 202
삼각함수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직각을 포함한 세 개의 점이 가진 성격을 언제나 예측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끌렸다. 내가 아는 물리학은 모두 폐철 처리장에서 배운 것이었다. 그곳에서 배운 물리의 세계는 불안정하고 변덕스러웠다. 어쩌면 현실도 설명과 예측이 가능할지 몰랐다. '
공부를 열심히 한 저자는 17세에 대학에 입학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가족을 떠나 처음으로 타지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리고 배움을 거듭하며 저자는 가족의 특별함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저자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가족을 떠나지 못하는 거야?" 하지만, 저자는 마음만은 가족을 떠나지 못한다. 돌아갈 곳이 가족이 있는 벅스피크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엄마, 가족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는 건 그들을 부정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p. 254
나는 항상 아버지가 믿는 신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겸양을 <믿었지만> 우리는 겸양을 실천했다. 다른 사람들은 주님의 치유 능력을 <믿었지만> 우리는 주님의 손에 치유를 맡겼다. 다른 사람들은 주님의 재림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믿었지만> 우리는 실제로 준비가 되어 있었다.
p. 357
'그곳은 나를 놔주지 않아. 거기서 어쩌면 절대 해방되지 못할 것 같아.'
대학에서 공부를 하며 저자는 빛을 발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녀 본래의 삶, 벅스 피크 폐철장에서의 삶과 분리가 되지 못한다. 그녀는 배웠지만 그녀의 가족은 여전히 배우지 못했으므로 그 간격은 점점 멀어지기만 했다. 그 커다란 간격 사이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떠돌게 된다. 그런 본인의 모습을 보며 괴로워한다.
p. 379
'학생은 순금이에요. 브리검 영으로 돌아가든, 산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든 그 본질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
저자의 배움은 계속 되었다. 브리검 영 - 케임브리지 - 하버드까지 타라의 배움의 길은 이어졌다. 저자는 이제 다시 배움이 없던 어릴적 소녀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예전으로 돌아가기에 배움은 깊었고, 그 여정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가족과의 인연을 끊게 된다. 소녀의 전부였던 벅스 피크를 떠나게 된다. 배움으로 인해 가족의 관계가 끊어지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배움의 발견이다.
p. 506
나와 아버지를 기르고 있는 것은 시간과 거리만이 아니다. 그것은 변화된 자이다.
나는 아버지가 기른 그 아이가 아니지만, 아버지는 그 아이를 기른 아버지다.
p. 507
이 자아는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 나는 그것을 교육이라 부른다.
나도 한 아이의 아빠다.
부모가 자아 형성이 되지 않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걸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
앞으로 내 아이에게 무분별한 교육보다 진심어린 참된 교육을 함으로서 아이가 좀더 올바른 교육을 받아드릴 수 있도록 아빠로서도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