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르는 인도] 20화
실롱에 관한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지만, 19화까지의 이야기를 돌아보면 내가 인턴으로서 살아가는 조금 특별한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풀어나갔다. 동료들이 “명예 메갈라야인”이라는 별명을 지어줬을 정도로, 현지 문화와 생활에 녹아들고자 노력하지만, 여전히 외국인이기에 조금은 특별한 경험들 역시 갖게 되는 것 같다. 지금까지는 국제개발 분야에 일하고 있는 메갈라야 정부의 인턴으로서의 메갈라야와 실롱을 소개했다면, 20화부터는 라잇움크라에 사는 실롱 주민으로서 내가 살았던 도시의 곳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미 전에 이야기한 바와 같이 메갈라야의 75% 정도가 크리스천이고, 실롱 역시도 약 46%가 크리스천이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다른 인도의 지역들과 다르게,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비롯한 육류를 소비하는 것이 일상화되어있고, 십자가나 예수상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물론, 종교가 크리스천만 있는 것은 아니고, 토속 신앙인 냠 카시 (Ka Niam Khasi)라는 종교 역시 많은 카시 부족 사람들이 믿는다. 물론, 냠 카시는 미사나 예배드리는 완전한 종교의 느낌은 아니지만, 주기적으로 종교적인 행사가 있을 때면 사람들이 많이 참여한다. 우리나라에 무신론자이지만 불교의 교리를 따르는 사람들과 같이, 카시 사람들 역시 무신론자에 가깝지만 냠 카시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필자는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에, 메갈라야가 너무나도 잘 맞는 곳이다. 처음 인도로 인턴을 지원할 때, 인도에 가서 성당을 찾기는 쉬울지, 미사를 주일마다 참석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는데, 웬걸. 성당이 도시 곳곳에 있을 뿐만 아니라, 내가 사는 라잇움크라 메인 로드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실롱에서 큰 성당 중 하나인 “도움을 주시는 성모 마리아 대성당 (Cathedral of Mary Help of Christians)”이 있어서 주일 미사 참석에 대한 걱정을 덜었다. 이 성당은 실롱 가톨릭 대교구의 본당이라서 그런지 성당의 규모가 압도적으로 크다. 미사를 드리는 성전만 있는 것은 아니고, 대교구 산하 사무실과 세인트 앤서니 대학 등을 관리하는 돈 보스코 재단 등 대교구 산하 기관들도 다 같이 모여있는 구역이라서 더 부지가 넓다. 신자로서 가게 되는 건물은 주로 미사 드리는 성전인데, 이 성전도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보이는 대성전과 지면과 맞닿아 있는 소성전이 있다. 대성전은 규모가 더 커서 그런지 카시어로 미사를 드리고, 소성전에서는 영어로 미사를 봉헌한다. 내 기억이 맞다면, 영어 미사는 일요일 오전 7시, 오전 9시, 오전 11시, 오후 6시에 진행되고, 오후 6시 미사 이후에는 성당에서 미사 후에 마실 수 있는 차를 준비해 준다.
성당에 갈 때마다 느끼지만, 신자들이 정말 많다. 단 한 번도 성전 내부가 비어 있던 적이 없다. 오전 6시, 오전 9시, 오후 6시에 미사를 각각 가봤는데, 시간대와 상관없이 항상 자리가 부족해서 예배용 긴 의자 옆에 있는 플라스틱 의자까지 꽉 채우고, 오전 9시 미사에는 성전 로비와 심지어는 성전 밖에 의자를 두고 미사를 드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서는 가톨릭 신자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주일 미사 참여도는 15%라는 비교적 낮은 수치라서 미사를 드릴 때면 자리가 비어 있는 경우도 많은데, 실롱에서 꽉 들어찬 성전의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어느 시간에 가든 미사드릴 때 수많은 사람이 성가를 크게 불러서, 성가대가 따로 필요가 없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미사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 나 역시도 자연스럽게 더 적극적으로 성가를 부르거나 미사에 참여하게 된다.
크리스천의 교세가 강하기 때문에 성당은 단순히 종교적인 공간이 아니라, 지역 커뮤니티가 모이는 공간의 역할을 한다. 나 역시도 인턴 생활을 하면서 만난 많은 사람들과 가장 쉽게 연결점을 찾은 것이 바로 내가 가톨릭 신자라는 것이다. 가톨릭은 전 세계 어디에서든 같은 교리와 같은 미사 방식을 따르기 때문에,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많다. 실제로, 내가 실롱에 가서 처음으로 친해진 현지 인턴도 가톨릭 신자였고, 그가 나에게 영어 미사가 소성전에서 봉헌된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려주었다. 나의 상사 중 한 분 역시 가톨릭 신자 셔서, 미사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까지 차로 태워주시기도 하셨다. 실제로 미사를 마치고 밖을 나가보면,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인사를 나누고 수다를 떨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코로나 이후에 한국의 많은 성당에서 성당 공동체의 구축이나 회복을 목표로 하는 곳도 많은데, 실롱 대교구의 공동체 모습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성당이 아니어도 여전히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의식이 메갈라야에는 강하게 남아있다. 실제로, 현지 친구들과 이야기해도 “우리는 인도 다른 지역과 달리 개인주의보다 공동체주의가 더 강하게 영향을 주는 지역”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부족 사회의 영향이 여전히 강해서 사람들 역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는 것에 적극적이다. 이 공동체 의식은 주민 행사에서도 볼 수 있다. 실롱에 도착하고 며칠 후, 밤에 밖에서 안내 방송이 들렸다. 처음 카시어로만 방송할 때는 대피 안내 방송이라고 생각하고 무슨 일이 난 것인가 싶어서 조금 무서웠는데, 영어로 안내가 나오기 시작하자 곧 토요일에 진행될 행사에 대한 홍보 방송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라잇움크라 메인 로드를 포함해서 그 행사에 참여 대상인 지역을 쭉 읊어준 뒤, 행사 장소와 시간을 공지하였다.
행사는 우리 집에서 청사로 출근할 때 매일 지나치는 세인트 앤서니 대학 부속 초등학교의 돈 보스코 홀에서 열렸는데, 행사 시간 때문에 고민이 생겼다. 행사는 토요일 오전 9시에 시작하는데, 정부에 출근하고 맞은 첫 주말이라서 그냥 편하게 잠을 푹 늦게까지 자는 것이 맞을지 아니면 이 행사에 참여해 보는 것이 나을지 고민이 되었다. 결론은 가보기로 했다. 만약 내가 시간 안에 제대로 일어난다면. 이런 주민 행사가 언제 또 열릴지 모르기에, 한 번은 꼭 봐두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행사는 실롱 시 정부 주관으로 개최되는 행사이지만, 이 행사를 보면서 이곳의 정부 행사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정부 공무원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주민들과 소통을 하는지 보고 싶은 것도 있었다. 결국은 나도 주 정부 소속으로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세워야 했기에, 조금이라도 현재 의사소통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아는 것이 중요했다.
행사 당일 아침.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우고 준비를 하니, 벌써 시계가 9시를 향해서 달려간다. 그래도 돈 보스코 홀까지는 5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이기에 큰 무리 없이 행사 시작 전에 도착했다. 행사장에 가니 자신의 이름과 주소를 적고 등록해야 했는데, 내 이름 옆에 내가 사는 에어비앤비의 주소를 적으니, 이제 진짜로 실롱이 내 집이 되어간다고 느꼈다. 그러고는 시 정부에서 준비한 “Make Shillong Clean (실롱을 깨끗하게)”라고 적혀있는 소책자를 받고 자리에 앉았다. 나는 정식으로 주민도 아니고 관찰하러 온 것이라서, 최대한 바깥쪽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때가 8시 57분쯤이었는데, 앉아서 참석 인원을 세보니 정부 직원들을 제외하면 한 24명 정도가 있다. 9시가 되어도 행사는 시작하지 않았고, 주민들은 서로 만나서 반갑게 이야기를 나눈다. 분명 공지는 9시 정각에 시작한다고 했지만, Indian Stretch Time의 명성에 맞게 9시 10분이 지나도 행사는 시작을 안 했다.
하지만 그렇게 기다리는 사이, 강당은 꽉 채워져 갔다. 주민들이 정부 행사에 이렇게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다. 한국이나 영국에서도 비슷한 행사를 가보면, 행사장을 꽉 채우는 것은 항상 쉽지 않은 일인데, 행사장의 뒤편에는 서서 듣는 주민들이 있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정말로 실롱의 사람들이 공동체 의식도 강하고, 공동체 행사에 대한 참여 열의가 강하다는 것을 느꼈다.
물론, 참석과 참여는 조금 차이가 있다. 행사의 전반적인 진행은 시 정부의 커뮤니케이션 전문관이 맡아서, 시 정부가 진행하는 쓰레기 무배출 (Zero Waste) 캠페인에 대해 설명했다. 지금까지도 다른 구역과 학교를 돌면서 캠페인 소개를 해왔다고. 진행자가 시민들에게 무엇이 웨이스트 (waste)냐고 물었는데, 아무도 답변을 해주지 않는다. 정적이 흐르자, 진행자님께서 계속 소개를 이어 나갔는데, 카시족 사람들은 항상 청결을 우선순위에 두고 살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옛날의 실롱과 지금의 실롱은 다르다. 개발이 지속되면서, 실롱에서만 하루에 20만 킬로그램의 쓰레기가 배출되고, 80%의 오수가 배수관이나 강으로 여과 없이 흘러간다고 한다. 또한 새롭게 쓰레기를 매립할 부지도 부족해서, 쓰레기 처리에 대한 고민이 깊다고 한다. 실제로, 실롱의 거리를 돌아다녀 보면, 도심이라서 길바닥에 버려진 쓰레기가 꽤 있다. 물론, 여전히 다른 인도의 도시에 비하면 청결하다. 그렇지만 실롱에 부모님이 사셨거나 실롱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인도 친구들도 하나 같이 이야기해 주었다. 예전의 실롱과 지금의 실롱은 아주 다르다고. 과거의 실롱은 정말 모든 곳이 청결했다고 한다. 자연도 잘 보호되어 있고. 하지만 실롱이 점차 도시화하면서 이러한 장점들을 잃어버렸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2016년에 고형 폐기물 관리 규칙 (Solid Waste Management Rule)이 제정되었는데, 쉽게 말해서 주민들이 분리수거를 해야 한다는 규칙이다. 이 외에도 생리대는 묶어서 버리고, 길에서 쓰레기를 내버리거나 태우는 행위를 금지하고, 백 명 이상이 모이는 행사에는 무조건 시청에 공지해서 쓰레기 수거를 요청해야 한다는 내용이 규칙에 담겨있다. 이러한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은 최소 5,000루피 (약 8만 원) 이상의 벌금을 받게 되고, 최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만 루피 (약 160만 원)의 벌금을 처벌받을 수 있다. 이 설명이 마무리되었을 때가 시작한 지 20분쯤이었는데, 전기가 나갔다. 돈 보스코 홀에 어둠이 가득 찼다. 마이크도 프로젝터도 모두 꺼졌기에, 사람들도 그냥 기다린다. 물론, 이 와중에도 사람들은 계속 더 들어와서 의자를 계속 더 가져다 놓고, 더 많은 사람들이 서 있다.
임시로 다른 마이크와 프로젝터를 가지고 와서 행사를 지속했는데, 실롱의 쓰레기 관리 실태는 처참했다. 차에서 쓰레기를 꺼내서 공용 공간에 버리는 경우도 있고, 아시아 개발은행의 원조를 받아서 정부가 제공한 분리수거용 쓰레기통은 목적을 잃은 채 감자 등의 음식을 보관하는 장소로 쓰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서 진행자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간단했다. 실제로 행동해야 한다. 우리가 단순히 쓰레기를 줄이고, 일회용 플라스틱을 줄여야 한다고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해야 한다.
진행자님이 하셨던 비유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가 사는 도시를 성당이나 교회처럼 여기자는 것이었다. 크리스천의 비율이 높은 실롱 주민의 특성을 고려해서, 진행자님께서 위의 메시지를 간결하게 전달하기 위한 비유를 찾은 것 같았다. “여러분은 성당에 쓰레기를 버리시나요? 그렇지 않죠?”로 시작한 이야기는 결국 성당같이 우리 집 앞마당도, 우리 동네의 공용 공간도 깨끗하게 관리해야 하는 공간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마무리되었다. 진행자분의 설명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는데, 이때가 내가 가장 충격을 받은 부분이었다.
우선, 주민분들도 적극적으로 질문을 하신다. 한 분은 아시아 개발은행 쓰레기통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를 물었고, 다른 한 분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레기를 수거 및 처리하는 환경미화원분들이 분리수거에 대한 교육을 잘 받지 못한 것 같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돈 보스코 홀 주변의 돈 보스코 포인트에서 장사를 하는 한 사장님께서는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공간이나 쓰레기통이 없어서 학생들이 길에다가 쓰레기를 버리는 경우가 많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도 꽁초를 버릴 수 있는 곳이 없다며, 한 번은 자신이 가져다 놓은 쓰레기통이 태워져 없어진 경우도 있다고 이야기하셨다.
어떻게 보면 민원을 현장에서 바로 받는 구조인데, 공무원인 진행자님께서 모든 질문에 대해서 천천히 답을 해주셨다. 만약 질문자가 추가 질문이 생기면, 그 역시도 모두 받아주었다. 즉, 피하지 않았다. 내가 들었을 때도 쉽지 않은 질문임에도 망설임 없이 답변하였다. 자신이 모르는 내용은 모른다고 당당히 이야기하고, 지금까지 실패한 정책에 대해서도 어떠한 점이 실패로 이어졌는지를 설명할 줄 알았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진정으로 정부의 커뮤니케이션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립적인 수사를 통해서 안전한 답변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진솔하게, 진심을 담아서 답변하는 것. 사람들도 정부가 에둘러 표현하거나 현실을 담지 못한 답변을 하면 다 알 수 있다. 특히, 소셜 미디어가 발달한 요즘은 더 쉽게 집단지성으로 알아낼 수 있다. 즉, 국민은 충분히 똑똑하다. 그렇기에 정부 역시도 이를 인지하고, 책임을 피하기보다는, 잘못이 있었다면 인정하고 더 나은 정책으로 사과와 보답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행사가 꽤 오래 진행되었는데, 중간중간 쉬는 시간에 내 바로 옆자리에 앉은 신사분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옆에 앉으신 분은 라잇움크라 메인 로드에 있는 호텔의 주인이었는데, 자기 호텔에는 당구장도 있다며 언제든지 무료로 치고 가라고 초대해 주셨다. 그리고 운명의 장난처럼 내 바로 앞줄에 앉은 분들은 내가 지내는 에어 비엔비의 주인아주머니와 그분의 동생분들이었다. 그때까지 주인아주머니의 아드님 하고만 소통해서 아주머니를 뵌 적은 없었는데, 호텔 사장님께 내가 지내는 곳을 이야기하니 앞에 앉아계시던 아주머니 어깨를 툭툭 치며 “얘가 너 건물에 세 들어 산다는데?” 하며 나를 소개해 주셨다. 그 사장님과 우리 주인아주머니는 어릴 적부터 같은 동네에서 자라온 친구 사이라고.
사장님께서는 이런 정부 행사가 몇 년에 한 번 열리는 일이라고 하시며, 몇 년 동안 이런 행사나 캠페인이 있었지만, 변화를 보지 못하고 두세 달이면 다시 돌아간다고 한다. 그러면서 환경의 날 행사를 예로 드셨는데, 그런 행사가 단발성 행사가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바꾸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맞다. 정확히 짚으셨다. 많은 환경 관련 행사들이 주민들의 환경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진행되지만, 짧은 기간 이후에는 잊히고, 결국 행동의 변화로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더 시스템적인 교육과 프로그램이 어릴 때부터 도입되어야 한다. 학생들이 자라나면서 친환경적인 생활양식이 몸에 자연스럽게 밸 수 있도록.
이날 행사를 보면서, 성당에 매주 나가면서 내가 만들고 싶은 학생 프로그램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학생들이 자신의 공동체에 돌려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어야 한다. 강한 공동체 의식을 더 나은 변화를 위해서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단순히 강연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 나가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학생들이 메신저가 되어서 퍼뜨리는 방식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럴 때 더 효과적으로 변화에 대한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이래서 현지 주민 행사를 가는 것을 좋아한다. 갈 때마다 내가 일하는 곳에 대해서 하나라도 더 배우고 올 수 있다. 그리고 현지 주민들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떠한 고민이 있는지 직접 들을 수 있다. 모두에게 열려있기에, 만약 여러분도 나중에 메갈라야에서 낮은 목소리의 안내 방송이 나온다면, 귀 기울여 들어보자. 여러분이 참여할 수 있는 현지 주민 행사에 대한 초청장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