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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라로 떠나요, 더 많은 인도 학생들 만나러

[우리가 모르는 인도] 18화

by 모험가 콜린

실롱에서 내가 진행하는 수업이 3주 차에 이르렀을 때, 메갈라야 모의 유엔 자단 창립자인 매슈와가 나에게 질문을 하나 던졌다, “혹시 아 수업 과정이 최종적으로 몇 알에 끝나?” 총 네 번의 수업을 하는 것이었기에, 다음 주에 끝난다고 답변을 하니, 휴대전화를 꺼내서 인스타그램을 뒤져본다. 그러더니 생각하지도 못했던 기회를 나에게 주었다.


“혹시 투라에 갈 생각 있어?”


이미 라니코르 이야기를 풀면서 이야기했듯이, 정부 내 우리 부서에서도 나에게 투라를 방문할 기회를 주었다. 투라는 가로 힐스, 즉 가로족의 사람들이 사는 곳의 중심도시이자 메갈라야 내에서는 실롱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약 7만 4000명 정도가 살아가는 도시이기에, 실롱과는 얼마나 다를지, 가로족의 사람들은 또 어떨 게 다를지 정말 궁금했다. 하지만 지난번에는 내가 아팠기에 가지를 못해서 내심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투라에서 마침 재단이 진행하는 모의 유엔 회의가 7월 셋째 주에 열렸다. 하늘에서 결국에 나도 투라에 가게 될 운명이라고 점지해 두었는지,매슈와가 그날 해준 제안을 받아들여서 투라에 가게 되었다.


물론, 내가 가르친 학생 중에서도 투라에서 열리는 화의에 참여해서 나랑 같이 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 친구들도 있었고, 투라에 대해서 배우는 것도 좋지만, 메갈라야에서는 모의 유엔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참관해 보고도 싶었다. 특히, 내가 정부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중에서 청소년 교육 관련된 것이 많은 만큼, 현지 학생들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했다. 현지 학생들이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교외활동에 참여하는지, 내가 비슷한 활동을 추진한다면 학생들이 열의를 가지고 참여할지 궁금했다. 다행히 내가 모시는 두 명의 팀장님 모두 흔쾌히 투라에 다녀오는 것을 허락해 주셨고, 오히려 현장에 이렇게 또 가게 되어서 좋다고 칭찬도 해주셨다.


물론, 걱정 어린 조언들도 많았다. 투라까지 가는 길이 쉽지 않다. 일곱 시간에서 여덟 시간을 차로만 이동하는 것이 기본이고, 가는 길도 잘 정리가 되어있지 않거나 굽이진 곳이 많아서 시간이 훨씬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 게다가 직원들과 인턴들로부터 투라에서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들어서, 더더욱이 투라에서 내가 잘 3일을 보내고 올 수 있을까 걱정도 컸다. 게다가 물론 내가 모의 유엔 수업을 하면서 친해진 학생들과 재단 직원들도 있지만, 살롱에서 함께 이동하는 대다수의 다른 재단 사람들은 내가 아예 모르기 때문에 어색하지는 않을까 고민도 많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인생은 모험이 아닌가. 이러한 걱정에 둘러싸이면 결국 새로운 도전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투라에 갈 채비를 했다.


투라에 가는 것은 처음이지만, 이미 마우크르왓 현장 방문을 경험했기에, 경험에 비추어서 짐을 쌌다. 사실 마우크르왓에 갔을 때는 짐을 정말 가볍게 해서 갔는데, 잘 생각해 보니 어차피 모든 짐은 다 차에 실어서 가고, 들고서 움직일 일이 별로 없으니, 필요한 물건을 최대한 가져가는 것이 나의 삶을 더 편하게 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헤어드라이어도 가져가고, 옷도 충분히 챙겨가고, 수건도 혹시 몰라서 가져갔다, (우리가 머문 숙소에는 실제로 수건이 없었다) 특히, 모의 유엔 화의에 참석할 때는 정장 차림으로 가는 것이 기본이라서 정장도 챙겼는데, 날이 너무 더울 것 같아서 여름 정장 한 벌과 인도 전통 의상인 네루 재킷 (Nehru Jacket) 한 벌을 셔츠들이랑 챙겼다. 인도에서는 네루 재킷을 입는 것이 정장을 입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단정함으로 보는데, 네루 재킷은 조끼처럼 생겨서 훨씬 덜 덥다, 그래서 인도에서 여름에 중요한 행사가 있다면, 남자들은 네루 재킷을 입는 것을 추천한다. (네루 재킷 이름의 유래가 인도 첫 수상 자와할랄 네루인만큼, 남자들이 주로 입는 옷이다. 여자들이 네루 재킷을 입는 것을 보지는 못했다.)


모의 유엔 회의 자체는 목요일이 시작하지만, 우리는 갈 길이 멀기에 수요일 아침에 출발하기로 했다. 우리를 태우고 갈 버스가 원래 실롱에서 출발해서 구와 하티에서 다른 재단 사람들을 태우는 것이 계획이었는데, 버스 회사 사정으로 구와 하티 사람들을 먼저 태우고 실롱에 한 열 시쯤에 버스가 우리를 태우는 것으로 계획이 바뀌었다, 문제는 버스가 집 앞으로 태우러 오는 것이 아니라, 실롱 정부 청사 주변의 한 버스 정류장에서 나를 태우는 것이었는데, 도대체 어디서 택시를 구할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평소에 합승 택시를 탈 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짐이 생각보다 많았기에 어떻게 자리를 구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재단 측에서도 나와 같은 라잇움크라에 사는 재단 회계 총괄, 에디를 소개해 주었다, 에디도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해야 하니, 에디와 아침에 만나서 같이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


에디와는 라잇움크라 폴리스 포인트라는 택시 집합소에서 만나서 택시를 타고 갔는데, 버스는 아직 오지도 않았다. 에디가 아침을 먹지 못했다고 그래서 에디는 아침 식사를 하러 가고, 나는 투라로 가는 길에 화장실이 없거나 있더라도 제대로 쓰기 어려운 환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물 한 병만 추가로 사서 가방에 넣어두었다, 지금이야 에디와 친하지만, 이때는 에디와 난생처음 만난 사이라서 모든 대화가 어색했다.


아침을 먹고 한동안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니, 흰색 밴이 한 대 왔다. 맞다.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고속버스나 우등 버스가 아니라, 현대 스타렉스보다 조금 더 큰 밴이 왔다. 이미 안에도 사람들이 타고 있었는데, 차 안에 들어가니 복도가 짐으로 꽉 차 있다. 트렁크도 없이 차 안이 좌석으로 꽉 차 있었기에, 짐은 복도 여기저기에 있어서 제일 뒤에 앉은 사람들은 앞문으로 내리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래서 싫었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이게 진짜 모험인지 생각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런 밴을 타고, 장거리 여행을 비슷한 나이대의 또래들과 할 수 있을까 기대되었다 오히려. 그래도 타는 것은 쉽지 않아서, 나도 간신히 짐을 옆에 두고 가장 앞쪽에 있는 좌석이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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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투라까지 타고 간 미니버스/밴. 밖에서 보기에는 커 보이는데, 안 쪽은 그렇지 않다. (좌) 내부에서 찍은 사진. 휴대폰 충전하는 곳이 있었지만, 오래된 감이 있다. (우)

한참을 달려서 실롱에서 빠져나오니, 현장을 나갈 때 보았던 농촌 풍경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물론, 이때 마우크르왓 방문, 직원들과의 파티, 월요일과 화요일 출근까지 하고 이동하던 거라서 피로감이 장난 아니었다, 그래서 중간중간 눈을 붙이면서 이동했다, 한참을 가다가, 작은 휴게소에서 잠깐 쉬고, 농스토인 (Nongstoin)이라는 지역에서는 완전히 차를 멈췄다. 농스토인 지역의 자연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해서, 재단 사람들이 사진도 찍고 구경을 조금 하고 가고 싶다는 의견이 많아서 아예 차를 세웠다. 언덕 위로 올라가서 쭉 펼쳐진 농스토인 지역의 경관을 보면 되는 것인데, 언덕을 오르려면 한 사람당 20루피를 내야 한다. 현금으로. 요즘은 온라인 결제가 인도 웬만한 곳에서는 다 통하기에, 현금이 있는 사람이 없어서 나도 가지고 있는 현금을 보탰다. 언덕 위에서 펼쳐진 풍경을 보니, 진짜 장관이다, 언덕들이 끊임없이 있고, 개발이 된 부분이 적어서 푸르른 자연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 사진 찍을만한 장소라서, 만약 지나가게 된다면 꼭 한 번 보는 곳을 추천한다. 날 좋은 때 방문해서 사진을 찍기만 하면, 좋은 사진을 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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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스토인에서 바라본 주변 언덕의 모습. 동양의 스코틀랜드라는 말이 틀리지 않다. (좌) 재단 사람들과 함께 농스토인에서 찍은 단체사진. 이 때까지는 조금 덜 피곤했다. (우)

그 이후로도 한참을 가야 했다. 가는 길이 험난해서 차도 흔들리고, 차 안의 자리는 좁았지만, 어찌어찌 버티면서 이동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져서 한 식당에 차를 세웠는데, 진짜로 현지인들을 위한 식당이다. 실롱에서 지내는 동안 관광객들이 먹을 법한 식당을 본 적도 거의 없거니와, 당연히 그런 곳에서 먹은 기억도 별로 없다. 나도 최대한 음식을 가리기보다는, 현지 친구들이 먹는 음식을 똑같이 먹는 것을 목표로 하면서 지내왔다. 그래서 이 식당에서도 현지식 돼지고기 카레를 주문해서 먹었는데, 항상 그렇지만 내 입맛에는 잘 맞는다. 점심을 먹고 화장실을 쓰려고 식당 주인 분께 여쭈어보니, 식당 뒤의 들판으로 나를 안내해 주시고는, 그냥 여기에 쓰면 된다고 하신다. 쉽지 않지만, 일단 급하기는 했기에 쓰고 다시 차 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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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었던 식당의 외관. 관광객을 위한 식당은 절대 아니다. (좌) 돼지고기가 한 점 있던 점심 메뉴. 렌틸콩 수프와 먹다보면 한 점임에도 충분한 식사가 된다. (우)

또 한참을 달려서, 해가 떨어질 때쯤에 가로 힐스의 한 마을에 도착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차에 내려서 음료수나 간식을 샀는데, 나는 그럴 생각조차 없었다. 비행기를 오래 타는 것은 이제 너무나 익숙하고, 영국에서 런던에서 에든버러까지 9시간을 버스를 타고 이동한 적도 있지만, 이번에는 피로감이 장난 아니었다. 그래서 차 안에서 쉬고 있으니, 점점 날이 더 어두워진다. 그래서 다시 출발할 즈음에는 거의 어둠 속에서 운전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는데, 길이 굽이진 곳이 많다 보니, 내가 운전하는 것도 아닌데 긴장이 된다. 진짜 한 번 차를 잘못 돌리면 언덕 아래로 차가 떨어지는 것이라서 숙련된 기사님이 아니면 밤에 운전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다, 앞의 시야가 거의 안 보이는 것이나 다름없어서, 코너를 돌 때면 모든 차량이 경적으로 차가 반대쪽에 있음을 신호한다. 애초에 메갈라야에는 도로에 코너가 되게 많아서 날이 밝을 때도 코너에서는 경적을 울리는 기사님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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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라로 가는 길에 보이는 포장이 되지 않은 길 (좌) 해가 떨어진 이후의 시야. 자동차 조명이 없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을 것 같다. (우)

끝도 없이 오랜 시간을 달리니, 드디어 투라에 도착했다. 투라에 도착할 때까지 몇 분이나 남았는지, 한 15분인가 남았을 때부터 다 같이 카운트다운 했다. 투라에 도착했을 때 이미 8시인가 9시였는데, 당연히, 제일 처음 한 일은 우리가 머무를 숙소로 가는 것이었다, 우리는 파스트럴 칼리지 (Pastoral College)라는 곳에서 묵었는데, 쉽게 생각하면 신학원 기숙사다, 평소에는 신학생들이나 방문객들이 지내는 곳인데, 나흘 동안은 우리가 지낼 숙소다. 숙소 내부는 정말 깔끔하고, 화장실도 내부에 갖춰져 있고, 천장에는 선풍기도 있어서 이 정도면 충분히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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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도착하자마자 찍은 파스트럴 칼리지의 전경 (좌) 도착 다음날 아침에 찍인 숙소의 모습. 성당에서 운영하는 곳이라서 십자가가 여기저기에 그려져있다. (우)

사실 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자는 것을 생각했다. 애초에 내가 돈을 내고 가는 것도 아니고, 재단 측에서 숙소와 교통편을 모두 제공하는 것이라서, 최소한 2인 1실의 숙소를 제공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나에게만 개인실을 주었다, 그래도 멀리서 온 손님이라서 최대한으로 예우를 해주는 것은 정말 고마웠지만, 나만 개인실에서 자는 것이라서 다른 친구들에게 조금 미안했다.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방을 쓰면, 자연스럽게 이야기도 많이 나눠서 친해지기 쉬운데, 그 부분이 없어져서 조금은 아쉬웠다. 하지만 동시에 모의 유엔 회의에 한 번 다녀오면 진이 다 빠지는데, 개인실이 있으니 편하게 숙소로 돌아와서 쉴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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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트럴 칼리지 1인실. 천장에는 선풍기가 있고, 침대 틀의 뾰족한 기둥은 모기장 설치를 위한 것이다. (좌) 개인실 내부의 화장실. 깔끔하다. (우)

그렇게 투라에 적응하고 나니, 모의 유엔 회의 첫날이 시작되었다. 나도 회의 의장단 중 한 명이었기에, 조금 일찍 숙소에서 나서 모의 유엔 회의가 열리는 인도 공인 재무분석가 대학 (ICFAI University) 투라 캠퍼스로 이동했다. 회의 운영진들이 빵, 달걀, 차를 비롯한 간단한 아침 식사를 준비해 주었고, 아침을 먹고 나니 회의 개회식이 열리는 강당으로 이동해야 했다. 개회식에는 재단 설립자, 대학 관계자 등을 비롯한 다양한 분들의 연설이 이어졌고, 가로족의 전통 춤인 왕갈라 춤 (Wangala Dance)와 대학 내 동아리에서 준비한 가로족 전통 음악 및 밴드 음악 공연을 보았다. 같은 메갈라야인데도, 내가 실롱에서 봤던 전통 음악 및 춤 공연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준다. 하지만 메갈라야 사람들이 음악을 정말 좋아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만큼, 학생들의 공연임에도 정말 수준 높은 연주와 춤이었다. 물론, 모든 음악은 가로어로 불렀기에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부분이 아예 없었다. 우리 의장단에도 가로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서로를 계속 쳐다보면서 멜로디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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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회식에서 가로족 학생들이 준비한 왕갈라 춤을 추는 모습. 타악기의 소리가 강렬하다. (좌) 가로족 전통 노래를 부르고 있는 대학 동아리 부원들의 모습. (우)

모의 유엔 회의라고 하지만, 가로 힐스의 학생 중에는 모의 유엔에 대해서 모르는 친구들도 많고, 모의 유엔에 대한 경험이 없는 친구들이 매우 많아서 회의 첫날은 토론하기보다는 모의 유엔에 대해서 수업하는 날로 기획했다. 이미 실롱에서 수업하면서 만들어둔 자료가 있어서, 조금 손 보고 가로족 학생들에게도 같은 수업을 해주려고 했더니, 교실에 프로젝터가 없다. 그래서 PPT가 아예 소용이 없었다. 수업을 진행하는 것 역시도, 이미 내가 지난 4주 간 수업을 했기에 사실 내가 다 진행할 수도 있지만, 함께 의장단을 하는 두 친구가 더 많은 기회를 가졌으면 해서 자리를 많이 내주었다. 1부 수업에서는 전반적으로 수업을 들으면서 필요한 부분에만 살을 붙이고, 2부에서는 국제관계와 연설 작성법에 대한 강의만 진행했다. 이렇게 들으면 되게 짧아 보이지만, 수업하고, 학생들에게 직접 연설문을 써보라고 연습시키고 하다 보니 벌써 하루가 다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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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 유엔 환경 총회의 의장단을 맡은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 고등학생인 에릭과 구와하티 출신의 궈럽과 함께 했다. (좌) 회의 중 발언권 순서를 적은 종이 (우)

수업하면서 나는 학생들의 표정을 지속적으로 확인하는데, 학생들의 표정이 영 이해를 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내 영어 말하기 속도가 너무 빨라서 그런가 하고 의도적으로 말의 속도를 줄여보기도 하고,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져보기도 하고, 교실을 걸어 다니면서 수업도 해봤는데 여전히 학생들이 뚱한 느낌이 있어서 걱정되었다. 이 수업을 즐기고 있는지,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내가 4주 동안 3시간씩 가르쳤던 많은 내용을 하루 안에 담아낸 것이기에 완전히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다 이해하지 못해도, 학생들의 반응이라도 좋으면, 좋은 추억이라도 만들어간다고 생각했겠지만, 하품하고 책상에 엎어지는 학생들을 보니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러한 이야기를 다른 의장단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나누니, 학생들의 참여 의욕을 끌어올리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특히, 가로족 학생들은 모의 유엔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기에, 그 중요성과 모의 유엔이 줄 수 있는 도움을 전달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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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으로 먹은 가로족의 음식. 주변 시장에서 사오는 것이라고 들었다. 실롱에서 먹은 음식과 비슷했다. (좌) 점심 먹고 마음이 답답해서 창 밖 풍경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우)

번외로 하는 이야기이지만, 의장단 친구들이 경험으로 분석한 내용은 외부에서 조사를 통해 분석한 메갈라야 사람들의 특성과 완벽히 들어맞는다. 메갈라야 사람들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장기적인 계획보다는 단기적인 이익이나 상황에 더 관심을 두는 편이라고 한다. 즉, 돈이 생겼을 때 미래를 위해 저금을 하는 것보다 현재 상황을 더 낫게 하려고 돈을 쓰는 것이 더 익숙하다. 그래서 메갈라야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장기적인 이익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우리의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의장단 친구들을 비롯한 내가 모의 유엔에 대해서 생각하면, 당장 만들 수 있는 친구들이나 수료증을 넘어서 장기적인 혜택과 토론을 통해 배우는 내용들이 미래에 가져다줄 수많은 기회에 대해서 생각한다. 하지만 이곳 학생들은 이러한 장기적인 이익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보니, 참여를 유도할 당근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수많은 생각을 안고 저녁 행사가 진행된 강당으로 갔다. 저녁 행사는 현지 가수들의 공연이 준비되어 있었다. 어린 학생들이 대다수라서 그런지 나는 공연을 보고 학생들이 즐기는 모습을 보는 것에 만족했다. 공연을 보고 있으니, 재단 설립자 매슈 와가 혹시 저녁을 밖에서 먹을 건데 올 생각이 있냐고 물어봤다. 그래서 마침 나도 배가 고팠기에 가겠다고 하니, 투라에 있는 한식당 메뉴를 보여줬다.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아서 여기로 가자하고, 재단의 일부 직원들과 함께 길을 나섰는데, 어디를 찾아봐도 한식당이 길가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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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행사에 초대된 현지 가수가 공연을 하고 있다. (좌) 게임에서 진 친구들이 벌칙으로 공연을 들으며 춤을 추고 있다. 결국은 벌칙이 아닌 것처럼 변했다. (우)

결국은 가스트로노믹 가든 (Gastronomic Garden)이라는 투라에서 가장 깔끔하고 현대적인 식당으로 가서 식사했다. 팟타이와 볶음밥을 몇 개 시켜서 먹었는데, 맛있다. 매콤한 맛도 잘 어우러져 있고, 맥주랑 같이 먹기에 딱 좋게 간이 되어있었다. 볶음밥은 다 같이 추가해서 더 먹었을 정도로 제대로 먹은 한 끼였다. 저녁을 먹으면서 내가 매슈와에게 보냈던 메갈라야 모의 유엔 재단이 더 많은 해외의 단체와 협력을 하는 방법에 대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 보고서를 쓰면서도 느꼈지만, 더 많은 기회가 필요하다.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 학생들이 많은데, 그리고 해외에는 이 친구들을 위한 기회가 많은데, 그 둘이 제대로 이어지지 못해서 학생들이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그래서 내가 해외에 네트워크가 있으니 충분히 도와줄 수 있다는 약속과 함께, 재단 사람들과 재단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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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라의 가스트로노믹 가든의 내부 모습. 서울 어딘가에서 볼 법한 깔끔한 식당이다. (좌) 우리가 주문한 싱가포르식 볶음밥. 요리를 잘하는 곳이니, 걱정 없이 주문했다. (우)

둘째 날은 조금 어수선하게 시작했다. 다행히 첫날 이후에도 대다수의 학생이 회의장으로 돌아왔고, 우리도 어제 하루 동안 수업을 했기에 오늘부터는 회의를 시작해야 했다. 그래서 모든 학생에게 집에서 써오라고 숙제로 내준 개회사(Opening Speech)를 읽게 하였는데, 생각보다 아이들이 준비를 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챗지피티를 이용한 친구들도 종종 느껴졌지만, 가장 조용해 보이던 학생도 연설하는 것을 보니 한 편으로는 뿌듯했다. 하지만 회의가 조금 더 진행되자, 학생들의 참여율이 점점 떨어졌다. 우리가 토론 구조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해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학생들이 어떠한 이야기를 해야 할지, 중재 토론 (Moderated Caucus) 때 어떠한 주제로 토론해야 하는지 감을 못 잡는다. 다음으로 토론을 할 사람, 연설을 할 사람을 물어봐도 손 드는 사람이 없다.


더 이상 회의를 정상적으로 진행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아서 잠시 회의를 멈췄다. 정말 아쉬웠다. 나 자신이 모의 유엔을 통해서 학업과 삶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고, 성장할 수많은 기회들을 받았고, 결국에는 유엔 산하 기구에서 일할 기회까지 얻었기에 학생들이 모의 유엔 회의에 참여하지 않고 시간만 보내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조금만 더 참여하면 ‘나도 이런 걸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텐데, 좋은 기회를 왜 이렇게 그냥 날릴까 하고 화가 난 것도 있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너희들이 이 회의에서 얻어가고 싶은 것은 무엇이니? 회의에 참여했을 때의 목표는 무엇이니?”


일부 학생들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다, 친구들을 만들고 싶다, 수료증을 받고 싶다는 등 현실적인 답변을 주었다. 하지만 일부 학생들은 모르겠다거나 집에 가고 싶다 하기도 하고, 아예 답을 피하는 경우도 있었다. 답변을 아예 피하는 학생 중 한 명에게는 몇 번을 더 질문했지만, 답이 없었다. 포기하려는 순간, 운영진과 동료 의장단들이 이곳 현지 언어인 “가로어 (Garo)”로 물어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가로어를 할 수 있는 운영진이 우리의 질문을 번역해서 학생들에게 전해줬는데, 이 질문들을 통해서 얻은 진실은 충격적이었다.


학생들은 우선 우리가 가르친 내용은 다행히도 다 이해했다고 한다. 하지만 의욕이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 회의실에 있던 학생 중 한 명 빼고 나머지는 모두 학교나 선생님이 가라고 해서 모의 유엔 회의에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아, 이래서 실롱에서의 경험과는 달랐구나.” 실롱에서 수업할 때는 자진해서 토요일 오후 시간을 반납하고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이었기에, 수업 참여도가 높았다. 내가 시간을 스스로 쓰는 만큼, 하나라도 더 얻어가야겠다는 생각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했다. 하지만, 이 회의에 참여한 많은 학생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타인의 의지로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에 충분한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 모의 유엔이 아예 무엇인지 모르는 학생들도, 왜 이 회의를 가야 하는지도 학생들에게 알려진 것은 당연히 없었다.


이 상황을 인지하고 나니, 왜 학생들이 이렇게 힘들어했는지 이해가 갔다. 나라도 내 의지와 관계없이 참여하게 된 교육이나 행사에서는 집중하기가 더 힘든데, 아예 관심이 없거나 모르는 내용의 회의에서 발언하는 것은 더더욱 학생들에게 가혹한 처사이다. 그래서 점심 식사를 위해서 쉬러 간 사이, 회의실에 있는 화이트보드에 학생들이 쉽게 따라올 수 있도록 모의 유엔 회의 구조와 학생들이 각 순서에 이야기해야 하는 내용 등을 담아서 자세하게 판서를 했다. 학생들이 잘 모르더라고, 칠판을 보고 따라서 읽으면 회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큰 글씨로 다양한 내용을 담아서 판서를 했다. 그리고 의장단을 같이 하는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다.


“우리의 목표는 결의안을 쓰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가더라도 모든 학생이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IMG_4455.jpeg 화이트보드에 모의 유엔 토론 규칙, 다음에 해야 할 일 등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을 보기 좋게 정리해서 판서했다.

의장단을 같이 하는 친구들도 동의했고, 우리도 다시 회의를 진행해 나갔다. 사실 둘째 날은 나에게도 꽤 정신이 없는 날이었다. 우리 부서에서 회의를 다녀오는 것은 허락해 주었지만, 외부 협력 기관과 하는 온라인 회의에도 양해를 구할 수는 없었기에, 중간에 회의실에서 빠져나와 회의에 참여해야 했다. 다행히 주최 측에서 빈방을 제공해 줘서 편하게 회의에 참여했다. 회의가 두 개라서 잠시 회의를 진행하다가 다시 내려가서 빈방에서 두 번째 회의에 참여하였다. 두 번째 회의를 들으면서 앉아 있는데, 의장 중 한 명이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어? 그럼, 회의실에 가장 어린 의장 혼자 있을 텐데…?” 그 생각이 드는 순간, 회의실로 뛰어 올라갔다.. 물론, 온라인 회의는 계속 내 귀에 들어오고 있었지만, 어린 의장이 혼자서 진행하기에는 버거울 수도 있기에 옆에 앉아 있기라도 하자는 생각으로 올라갔다. 다행히 그 의장 친구는 의젓하게 잘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지만, 다른 회의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그 어린 의장이 불평불만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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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방에서 미팅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좌) 주최 측에서 내게 내어준 빈 교실. 평소에 대학생들이 이 곳에서 공부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쉽지 않겠다 생각이 들었다. (우)

그렇게 둘째 날이 정신없이 마무리되고, 회의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전날에 참여한 학생들 사이에서 장기자랑과 미스 가로힐, 미스터 가로 힐을 뽑는 행사를 본회의 마치고 했었는데, 그때 우리 회의실을 대표해서 참가했던 학생들에게 선물을 주고 시작했다. 아쉽게 우리 회의실에서 우승자가 나오지는 못했다. 학생들이 오히려 나와 의장단에게 놀라운 선물을 안겨주었다. 우리 셋에게 학생들이 돈을 모아서 가로족 전통 목걸이를 사 왔다. 밤사이에 우리 회의실 왓츠앱 채팅방에서 가로어로 학생들이 대화를 나누었는데, 우리 셋 다 가로어를 할 줄 모르기에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몰랐다. 알고 보니 목걸이를 사 오기 위해서 학생들이 돈을 모으고 있던 과정이었단다. 어제 화가 났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학생들에게 정말 고마웠다. 잠깐 만난 인연인데, 이렇게까지 생각해서 선물을 준비해 줬다는 것에 고마웠고, 한 편으로는 학생들에게 회의 참여를 계속 독려하는 우리가 조금은 까다로울 수 있었겠지만, 그 모든 과정이 학생들이 더 잘되는 것을 원하는 우리의 진심이라는 것이 잘 전해진 것 같아서 안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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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중 한 명이 나에게 가로족 전통 목걸이를 채워주는 모습. 조금 끼었지만, 찰랑찰랑하는 목걸이의 느낌이 좋았다. (좌) 동료 의장이 목걸이를 바라보는 장면 (우)

마지막 날에는 회의가 더 활성화되었다. 학생끼리는 가로어로 소통을 할 수 있게 하고, 혼자서 한 나라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두 명이 함께 한 조를 이루어서 한 나라를 대표하는 방식으로 바꾸니, 조금 더 조용하거나 쑥스러워하던 친구들과 이해를 온전하게 하지 못한 친구들도 모두 도움을 받아서 참여할 수 있었다. 그래서 결국은 끝까지 연설하는 것을 거부한 한 친구를 빼고, 나머지 학생들은 전원 연설을 통해서 회의에 참여하였다. 확실히 학생들의 토론 참여도가 높아지자, 그리고 학생들도 자신의 아이디어를 이야기할 수 있는 팀원이 생기자 더 자신감을 가지고 참여하였다. 이 과정에서 느낀 점은 역시나 유연한 대처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기존의 규칙과 구조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상황에 맞게 유연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궁극적인 목표가 변하지 않는다면 가장 실용적인 방법을 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만약 기존의 모의 유엔 규칙을 완벽하게 지키는 것에만 몰두했다면, 오히려 학생들에게는 좋은 경험을 주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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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의 유엔 회의 내에서 기자 (IPC) 역할의 학생들이 우리 회의실 대표단을 취재하는 모습 (좌) 워킹 페이퍼를 쓰기 위해서 논의를 이어가는 학생들의 모습. (우)

그렇게 모든 학생이 토론에 참여한 끝에 결의안은 아니지만, 학생들의 해결책이 담긴 워킹 페이퍼 (Working Paper), 즉 작업 초안 문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 회의를 마무리하면서 학생들에게 이야기했다. 이번 회의가 완벽한 모의 유엔 경험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회의에서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더 많은 경험을 하기를 바란다. 나도 처음 모의 유엔을 시작했을 때는 제대로 연설도 못 하고, 결의안을 작성할 때도 큰 목소리를 내지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도 못했다. 집에 가는 길에 “왜 내가 이런 모의 유엔을 계속해야 할까?” 고민했던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 어려웠던 경험은 내가 이후의 회의들에서 어떻게 행동할지를 알려주었고, 결국은 대학교 모의 유엔 동아리에서 회장을 맡으며 나의 모의 유엔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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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환경 총회에 참여한 대표단 학생들과 함께 찍은 단체 사진. 마지막 날은 각자의 전통 의상을 입는 날이라 나도 네루 재킷을 입었다 (좌) 의장단이 다같이 찍은 단체 사진 (우)

회의를 마치고 나서는 댄스파티가 열렸다. 학생들과 의장단, 운영진이 모두 모여서 춤을 추는 시간인데, 한국인인 나라 배려해서 마지막 곡은 지수의 "아파트"를 틀어줬다. 오래간만에 춤추는 파티에 간 것인데, 생각보다 몸이 잘 움직여줘서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같은 날 밤, 재단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서 음료수와 간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방 안이 오히려 더워서 다 같이 숙소 앞 계단에 둘러앉아서 현지 간식 중 하나인 와리와리 (Wari Wari)를 먹으면서 모의 유엔에서 겪었던 다양한 경험을 나눴다. 투라에서 돌아오는 길도 역시 8시간이 넘게 걸렸다. 특히, 이번에는 구와 하티에 먼저 일부 재단 사람들을 내려주고 실롱으로 가는 일정이었기에, 실롱까지 2시간 정도를 더 달려서 분명히 오전 7시쯤에 출발했는데, 오후 6시 넘어서야 실롱의 우리 집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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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과 함께 "아파트"에 맞춰서 춤을 추고 있다. 함께 하는 마지막 날이라서 한풀이 하듯이 놀았다. (좌) 밤에 숙소에 와서 먹은 와이 와이 라면 믹스. (우)

실롱에 도착해서 재단 사람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다. 4일을 함께 보냈지만,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낸 의장단이 아니면 제대로 이야기할 기회가 많지 않았기에, 저녁을 먹으면서 다양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녁을 먹은 이후에도, 어린 친구들은 집으로 보내고, 조금 더 나이가 있는 학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끼리 모여서 밤까지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이날 재단 회계 총괄인 에디와 더 친해졌다. 우리가 그렇게 어색하게 투라로 가던 날을 생각해 보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된 것이 신기할 정도다. 물론, 나는 2022년에 대학을 졸업하면서 모의 유엔을 졸업하였지만, 여전히 내가 모의 유엔을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람들이다. 항상 열정이 있고, 흥미로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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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롱에 도착해서 간 키친 익스프레스 (Kitchen Xpress)라는 식당. 피쉬 앤 칩스를 시켰다. (좌) 같이 저녁 먹으러 간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 (우)

글을 올리는 오늘이 마침 에디의 생일이다. 만약 투라에 가지 않았다면, 에디와 친해질 기회는 아예 없었을지도 모른다. 에디뿐만 아니라, 재단 사람들도, 투라에서 만난 모든 학생도 마찬가지다. 내가 만약 수업하지 않았다면, 투라에 가지 않았다면 모두 만나지 못하고 스쳐 지나갔을 사람들이다. 하지만 나의 선택들이 이 사람들을 결국은 인연으로 만들어주었다. 이래서 “인생은 모험이다”라는 슬로건을 버리지 못한다. 다음 모험에서는 또 어떠한 사람들을 만날지 궁금하므로. 그리고 모든 모의 유엔을 한 학생들에게, 아니면 아직 모의 유엔이라는 모험이 겁나서 시작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 처음에는 어려워 보일지라도, 꾸준히 하다 보면, 계속 연습을 하다 보면, 좋은 기회가, 좋은 인연이 찾아온다. 그리고 단순히 모의 유엔을 말로만 하는 토론으로만 생각하기보다는,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기획하는 연습을 하는 배움의 장으로서 활용하기를 바란다. 혹시 모른다. 여러분도 모의 유엔에서 진짜 유엔으로 갈 수 있을지.

10a9e714-cbb3-4865-9e53-c7792874a0d4.jpeg 메갈라야 모의 유엔 재단 운영진들과 함께 투라에서 찍은 사진. 항상 모험을 떠나는 이유는 결국 사람이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전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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