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르는 인도] 16화
“그래서 나도 라니코르로 가는 거야? 아니면 투라로 가는 거야?”
24화에서 따로 또 소개하겠지만, 마우크르왓에서 돌아온 뒤 나는 다시 투라로 현지 학생들을 보러 가게 되었다. 투라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부서 직원으로부터 이메일을 한 통 받았다. 이메일의 요지는 7월 21일부터 예정된 교사 역량 강화 교육을 위해서 선생님들께서 지낼 홈스테이가 예약되었다는 것인데, 투라에서 진행되는 교육에 관한 이메일에 내가 cc 되어있었다. 라니코르에서 하는 교육을 방문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투라 교육 이메일을 받으니, 혼란스러웠다. 나는 투라에 남아있어야 하는가?
다행히 현장 방문 하루 전, 팀원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너도 라니코르 가는 거지?” 그래서 라니코르 행을 확정 짓고 투라를 떠났다. 원래는 화요일에 교육이 공식적으로 시작하는 것이라서, 마우크르왓 때처럼 교육 시작 당일인 화요일에 출발할 줄 알았는데, 웬걸 월요일에 출발이다. 그래서 투라에서 실롱에 도착한 것이 저녁 6시, 그리고 저녁도 먹고 친구들과 이야기하니 오후 10시였는데, 바로 다음 날인 월요일 오전 9시 반에 출발해야 했다. 그래서 시간이 부족할 줄 알았는데, 내 몸이 생각보다 회복이 빨랐다. 오전 6시 조금 넘어서 일어나서 투라에 가져갔던 옷들을 전부 세탁하고, 라니코르로 가져갈 옷을 챙기고도 친구와 전화할 시간이 남았다.
라니코르에 비가 많이 와서 날이 추우니 얇은 재킷을 하나 가지고 오라는 문자를 받았던 터라, 실롱보다 추울 수도 있겠구나 싶어 긴 팔을 주로 챙겼다. 물론, 실상은 정반대여서, 3일 내내 비가 하늘에서 내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머리에서만 계속 내렸다. 더워서 죽는 줄 알았다. 날씨가 그 짧은 사이에 꽤 바뀐 것 같다. 직원들이 태우러 오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매직 버스 인디아 재단 담당자의 집이 우리 집과 가까워서 짐 옮기는 것을 도와주러 그 집으로 가서 차를 기다렸다. 그래도 이 집에서 출발은 9시 반을 조금 넘어서 출발했는데, 마지막 인턴을 태우러 가는 길이 꽉 막혔다. 저런. 분명 제시간에 출발했는데, 마지막 인턴을 태우고 나니 오전 11시다. 마지막 인턴이 실롱에서 멀리 떨어진 곳도 아니고, 실롱 도심 중 한 곳에 사는 것인데 시내 교통 체증이 일정을 전부 지연시켰다.
실롱 외곽에서부터 라니코르까지는 약 3시간에서 4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지도에는 나와 있다. 아마 실질적인 거리만 계산하면 그럴 것 같다. 하지만 라니코르까지 가는 길 대부분은 지난 화에서 소개한 마우크르왓 가는 길과 같은 길이라서 길이 매우 험난하고, 이 때문에 지도에서 제시한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라니코르는 마우크르왓과 같은 사우스 웨스트 카시 힐스 구역 소속이지만, 방글라데시와의 국경에 매우 가까이 위치한 국경 마을이다. 이러한 지리적인 위치 때문에 국경 지역 지원 사업으로 작은 마을이지만 고속도로가 지나간다. 물론, 고속도로에 차는 많이 없어서 거의 인도처럼 사용된다. 그뿐만 아니라, 방글라데시에서 넘어오는 물자도 많아서 방글라데시 간식이 유명하다고 한다.
하지만 반대로 국경도시라서 인도 내의 물자가 도달하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 내가 방문했던 다른 지역들과 달리 5G가 아니라 4G만 터지고, 에어컨 설치를 할 수 있는 기술자가 없어서 정말 더운 동네임에도 에어컨을 가지고 있는 건물이 없다고 한다. 마우크르왓은 중심 도시라서 시장도 잘 갖추어져 있지만, 라니코르는 식당이나 상점들도 가판대에 가깝게 운영하는 곳이 더 많다. 즉, 마우크르왓에 비해서 훨씬 더 열악한 환경이다. 그래서 이번 현장 방문은 더 중요했다. 정부에서 더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지역에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가 하는 일들이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라니코르로 가는 길이 멀었기에, 마우크르왓 주변에 있는 자크렘 (Jakrem A)라는 마을에 들렀다가 가기로 했다. 자크렘은 메갈라야에서 좋은 온천을 가지고 있는 곳으로 유명한 곳인데, 지난번에 마우크르왓 방문 때는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아예 가 보지를 못했다. 그때도 우리를 운전해 주셨던 기사님께서는 저녁에 온천으로 가서 씻고 왔다고 하셨을 정도로, 꽤 사랑받는 온천이다. 도착해서 보니, 차로 들어가기는 길이 어려워서 주변에 차를 대고 온천 입구로 걸어 들어갔다. 입장료는 한 사람당 50루피 (약 800원)이었다. 실제 온천이 있는 곳까지는 계곡과 푸르른 자연이 감싸고 있다. 심지어 온천이 최근 리모델링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더더욱 기대했는데, 아쉽게 도착해서 보니 우리나라 사우나처럼 되어있다. 전에는 자연을 보며 온천욕을 즐길 수 있었다는데, 건물이 생기니 영락없는 한국에서 보던 목욕탕이다.
결국 온천을 즐기는 것은 포기하고, 마저 가던 길이나 가자고 뜻을 모았다. 라니코르 가까이의 고속도로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끊임없는 비포장도로였다.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도로와 굽이진 길들로 차가 흔들리면서 계속 이동했다. 벨트를 매지 않으면 몸이 붕 뜨기도 하고 정신이 없다. 그래도 바깥 풍경은 매우 아름답다.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무릉도원같이 아름답다. 끊임없이 펼쳐진 산과 언덕들이 장관을 이룬다. 자세히 보면 그 높은 산꼭대기에 마을이나 교회가 있기도 해서, 조금은 이색적인 풍경도 같이 보인다. 물론, 나는 투라에서 돌아온 직후라서 중간에 잠을 잠시 청해서 놓친 풍경들도 있지만, 내가 볼 수 있었던 부분들조차 이미 너무 아름다웠다.
라니코르에서 우리가 할 일이 생각보다 많아서 교사 역량 강화 교육 하루 전에 우리가 도착한 것인데, 분명히 아침 일찍 출발했는데 도착을 해보니 이미 저녁에 가까운 시간이다. 게다가 다들 험난한 여정으로 인해 피곤함에 절어있던 상태라, 다른 일을 하기 전에 짐을 풀러 우리가 나흘 동안 머물 홈스테이로 먼저 갔다. 홈스테이로 이동하는 길, 주변에 띄엄띄엄 늘어진 가판대들을 보고, 우리 홈스테이의 상황도 열악하지 않을까 조금은 걱정이 됐다. 우리가 지낸 브레린 홈스테이 (Brelin Homestay)의 입구에는 오래돼 보이는 식당들이 있었는데, 홈스테이 자체는 완전히 새로 지은 건물이라서 정말 깔끔했다. 정돈도 잘 되어있고, 우리가 나흘 동안 먹은 아침과 저녁은 모두 홈스테이에서의 식사였는데, 홈스테이로 요리하러 오시는 아주머니의 솜씨가 아주 좋다. 메갈라야 현지 음식을 주로 하시는데, 최대한 메뉴가 겹치지 않게 준비해 주시고, 우리가 요청하는 음식은 대부분 해주셨다. 물론, 맵기 조절만 제외하고.
물론, 여전히 국경도시에 있는 홈스테이라서 아쉬운 부분도 있다. 우선, 단층으로 지어진 건물이라서 밤이 되면 벌레가 많이 모인다. 창문이나 문을 열어야 시원한 바람이 조금이나마 들어오는데, 벌레가 들어올까 무서워 우리 방은 문을 열지 않았다. 물론, 홈스테이의 문제는 아니지만 라니코르의 날씨가 너무 더웠다. 우리는 밤이 되면 온도가 조금 떨어지기라도 하지, 라니코르의 기온은 밤이 되어도 떨어지지 않는다. 26도에서 30도 사이를 하루 종일 유지하니, 땀이 마를 새가 없다. 홈스테이에는 선풍기가 천장에 달려있는데, 아쉽게도 에어컨이 아니다 보니 방 온도를 획기적으로 떨어뜨려 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라니코르 마지막 날에는 양팔에 땀으로 인해서 습진이 올라오고, 차에서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 때까지 땀을 식히지 못해서 에어컨을 맞자마자 얼굴에 주름이 잡히고, 얼굴은 완전히 타서 피부가 엉망이 되는 등 참담했다.
돌아와서도 직원들과 라니코르의 더위에 대한 농담을 자주 주고받을 정도로 잊을 수 없는 날씨다. 진짜 더웠다. 매일 더위 때문에 잠을 3시간에서 4시간 정도밖에 못 잔 것 같다. 심지어 라니코르의 전력 수급이 불안정한 지, 매일 새벽 2시부터 7시 정도까지는 전기가 끊겼다. 즉, 그나마 있던 선풍기도 밤이 되면 끊겨버렸다. 뒤척이며 밤을 지새우고, 교육 첫날이 밝았다.
이번 교육의 내용은 지난번 마우크르왓에서 진행한 교육과 같은 내용이다. 강사님도 거의 비슷한데, 참여하는 선생님들만 달라졌다. 라니코르 주변 마을에 택시와 같은 교통수단도 변변치 않고, 택시를 타더라도 한참 떨어진 마우크르왓에 들렀다가 다시 라니코르로 오는 방법밖에 없어서 걸어서 5시간을 오신 선생님도 계셨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 5시간을 걸어서 오신 것이 정말 존경스러웠다. 심지어 그분께서는 이제는 수업을 직접 하시는 것이 아니라, 교육부 소속으로 교육 지원을 담당하시는 분이셨는데, 그 먼 거리를 이 교육 때문에 오셨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이렇게 어렵게 모신 선생님들이 많았기에, 강사님들도 더 준비를 많이 하셨다. 내가 수업 준비를 돕던 지난번과 다르게 강사님들이 이미 충분한 회의를 사전에 해서 수업이 착착 진행되었다. 정말 내가 할 일이 수업을 관찰하는 것 말고는 아예 없었다. 마우크르왓에서의 경험과 비교를 해보니, 강사님들이 사전에 수업의 구조나, 수업의 순서 등을 사전에 논의하는 것이 얼마나 교육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었다. 같은 내용을 가르치더라도, 짜임새 있는 수업은 선생님들의 참여도를 훨씬 높였다. 그래서 현장 방문을 모두 마치고 나서, 우리 팀 상사에게 사전 논의를 강화하고, 강사님들께 충분한 연습 기간을 주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해서 올렸다.
첫날 교육은 특별한 일 없이 흘러갔다. 한 교육장은 영어로, 다른 교육장은 카시어로 수업이 진행되었는데, 카시어 교육장은 스탠드형 선풍기가 두 대나 있지만, 영어 교육장은 공간이 넓은데 켤 수 있는 선풍기가 없다. 선풍기 자체는 천장에 있지만, 청소가 안 되어서 쓸 수가 없다. 그래서 더위 먹기 직전 수준으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수업을 지켜봤다. 점심은 선생님들이 드시는 도시락을 하나 받아서 먹었는데, 이곳의 도시락은 바나나잎에 밥과 고기반찬이 함께 담겨있다. 손으로 집어서 먹는 사람도 있고, 숟가락으로 고기나 밤을 부숴서 먹는 사람도 있다. 밥이 조금 많기는 했지만, 고기도 느끼하지 않고, 괜찮게 한 끼를 해결했다.
우리가 이번 교육에서 특별히 할 일은 없기에 잠시 시간이 비는 틈을 활용해서 과일 주스 가게로 갔다. 교육장에서 조금 걸어가면 라니코르 시장가가 나오는데, 그곳에 현지 자조 모임 (Self Help Group) 출신의 여성분이 운영하는 과일 주시 가게가 있다. 우리가 잘 아는 파인애플이나 망고부터 대추까지 다양한 과일 주스를 파는데, 나의 선택은 항상 망고였다. (파인애플은 항상 없었다) 워낙 지역이 덥다 보니, 시원하게 보관되어 있던 이 가게의 주스는 잠시나마 땀을 식혀주는 감사한 존재였다. 교육이 진행된 3일 동안 매일 가서 마신 것 같다.
첫째 날 교육이 안정적으로 마무리되었기에, 한시름 놓고 우리 팀도 라니코르를 구경할 시간이 생겼다. 홈스테이에서 3분 정도 떨어진 곳에 해변이 있다고 해서 바로 구경을 갔다. 물론, 메갈라야는 내륙 지역이기에 바다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방글라데시로 이어지는 라니코르강 (Ranikor River) 주변에 모래사장이 형성되어 있다. 원래 자연을 구경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라니코르 해변의 경치는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산, 깨끗한 강물, 밝은 날씨까지. 어느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다. 마침, 날도 더웠기에 시원한 강물에 발을 담그고 시간을 보내니, 이보다 시간이 더 잘 갈 수는 없었다. 모래사장을 충분히 즐긴 이후에는 방글라데시로 흐르는 강물과 방글라데시 쪽 풍경을 조금 더 보기 쉬운 라니코르 다리 (Ranikor Bridge)로 가서 구경을 했다.
둘째 날부터는 일정이 조금 달랐다. 교육은 여전히 진행되지만, 우리는 교육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라니코르 지역 학교를 방문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진행하는 교육의 목표도 선생님들께서 학교로 돌아가서 학생들에게 삶을 살아가며 중요한 스킬을 가르치는 수업을 직접 하는 것이기에, 우리가 진행하는 교육의 효과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보고, 선생님들과 면담해야 한다. 처음 방문한 학교는 라니코르에서 약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농듀사우 (Nongdewsaw) 마을에 있는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하나 짚고 가자면, 인도의 상급 초등학교는 6학년부터 8학년 (한국에서의 초등학교 6학년 ~ 중학교 2학년)의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고, 기초 초등학교 (Lower Primary)는 1학년부터 5학년 학생이 다리는 우리가 아는 초등학교에 가깝다.
이 상급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가까운 도로에 차를 대고, 표지판이 안내하는 대로 길을 따라서 언덕을 내려가야 한다. 한 10분 정도 걸어 내려가면 마을이 나오는데, 학교도 계단을 타고 내려가야만 나온다. 학교에 도착해서 선생님들과 간단한 면담을 하고, 담당 교사가 라이프 스킬 수업 시강을 준비하는 동안, 다른 인턴과 나는 학교를 둘러봤다. 우리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상급 초등학교 학생만을 대상으로 하기에, 교실에는 5학년 학생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교실 내부의 사정은 아쉬운 곳이 많다. TV는 고사하고, 꽤 더운 지역임에도 선풍기도 없고, 오래돼 보이는 칠판만 하나 있다. 시간이 여유가 있어서 학생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이렇게 상황이 어려운 학교임에도 이곳이 주변에서 유일한 학교라서, 학생 중에서는 아침마다 2시간을 걸어서 등교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여전히 인도, 그리고 메갈라야와 같이 도시화가 덜 진행된 지역일수록, 학교 접근성은 점점 떨어진다. 우리는 “초등학교 품은 아파트”라는 단어가 유행할 정도로 학교가 가까이 있는 것이 익숙하고, 당연한 일이지만, 이곳 학생들에게는 오히려 한두 시간을 걸어서, 그것도 평지가 아닌 언덕을 건너서, 학교를 가는 것이 더 익숙한 풍경이다. 아침에 20분 정도를 걸어서 정부 청사로 출근할 때도 이미 땀을 한 바가지를 흘리는데, 두 시간을 걸어서 학교 가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학교로 오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하다.
학교 아이들에게 한국 문화를 알고 있냐고 질문했는데, 한 학생이 손을 들고는 블랙핑크를 좋아한다고, ‘뚜두뚜두’를 들어봤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라니코르 지역 담당자분이 설명해 주시기를, 국경도시인 이곳의 아이들도 한국 문화를 정말 좋아한다고. 매번 이야기하지만, 이런 순간마다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이날 시간은 아쉽게도 담당 선생님께서 진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셔서, 우리 파트너인 매직 버스 재단의 담당자가 직접 시강을 했다. 선생님께서도 교육을 한 번밖에 안 받으셔서 어려움을 겪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직원들과도 교육 이후에 지속적으로 복습 및 연습을 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두 번째 학교는 조금 더 라니코르에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래서 첫 학교에서 돌아가는 길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풍경이 정말 기가 막힌 학교다. 학교가 관리를 통해서 조경이 아름다운 학교는 내가 다니는 대학원이나 졸업한 고등학교에서 자주 봤지만, 학교에서 볼 수 있는 자연 풍경 자체가 아름다운 학교는 처음이었다. 뒤에 산을 끼고, 학교에서 공터로 가는 길에는 작은 물줄기가 흐르는 자연 속에 섞여 있는 초등학교였다. 이 학교는 그래도 주변에 마을이 있어서 대다수의 학생은 마을에서 사는 학생들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방문했을 때가 점심쯤이었는데, 시강이 끝나자, 학생들이 자신의 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집이 정말 멀리 있는 학생들만 도시락을 싸서 온다고 한다.
이곳에서도 시강을 진행했는데, 선생님께서 우리가 제시한 방식에서 조금 벗어나서 수업하고 계셨다. 그래도 활동이나 게임을 학생들과 진행하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은 보였는데, 학생들이 더 쉽게 자신의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방향은 아니다 보니, 선생님께 피드백을 끝내고 드려야 했다. 나는 본래 커뮤니케이션팀 소속이기에, 이 두 학교를 방문하면서 또 다른 임무가 있었다. 바로, 선생님들과 아이들의 인터뷰를 하는 것. 우리가 진행하는 MPOWER 프로그램에 더 많은 학교와 학생들이 참여하기 위해서는 이 프로그램들이 어떠한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더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수치나 프로그램 효과에 대한 설명보다, 참여자가 직접 느낀 부분들을 설명하는 것이 더 효과적으로 우리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그래서 MPOWER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느낀 점이 있는지, 어떠한 어려움이 있는지,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커뮤니케이션 팀 직원과 함께 담았다.
두 번째 학교 방문을 마치니 점심시간이다. 점심을 먹을 곳을 찾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우리가 아닌 마을도 아니고, 상점이나 식당이 많은 것도 아니라서 차로 조금 이동을 해서 먹었다. 당연히 카시 음식점이었는데, 이곳은 훈제 돼지고기가 일품이다. 특히, 직원 중 한 명이 훈제 돼지고기를 숯불에 바로 구운 것을 한 점 시켜주었는데, 지금까지 이렇게 먹지 않은 것이 후회될 정도로 맛있었다. 훈제 향과 숯불 향이 함께 올라오면서, 겉바속촉의 정석으로 익혀진 그 고기의 맛이 쉽게 잊을 수 없다. 아마 다시 찾아가서 먹기는 어렵겠지만, 미래에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먹어보고 싶다.
라니코르로 돌아왔을 때 이미 이틀 차 교육은 마무리가 되어있었다. 그래도 몇몇 선생님들과 인터뷰할 수 있어서 도착하자마자 바로 진행했다. 내가 하는 교육과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개인 연구를 위한 인터뷰도 선생님들과 카메라가 설치될 때까지 몸풀기로 진행하고, 이후에는 선생님이 교육을 들으며 느낀 점에 대한 인터뷰를 카메라에 담았다. 선생님들께서는 공식 교육 시간 이후에 자신의 시간을 내서 인터뷰하시는 것이라서, 죄송한 마음에 최대한 일찍 끝내고자 노력했다.
이때부터 몸에 힘이 없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땀은 계속 흘리고,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아예 없던 터라, 너무 피곤했다. 그래서 직원들은 가까운 수영장으로 놀러 갔는데, 나는 홈스테이에서 쉬었다. 잠시 눈을 좀 붙이고,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것도 마무리 짓고 나니 벌써 하루가 다 갔다. 하루만 더 보내면 집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희망을 품고 잠을 청했다.
마지막 날에도 학교 방문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 학교는 교육장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어서 마지막 날에 잡았다고 한다. 역시나 학교 건물은 많이 노후화되어 있다. 그래도 학교 앞에 넓은 공터도 있고, 가봤던 학교 중에서는 좋은 축에 속하는 학교였다. 이곳에서도 선생님께서 진행하시는 시간을 보고, 마지막 학생 피드백 부분만 우리 직원과 매직 버스 인디아 재단의 담당자가 진행하였다. 항상 걱정이 많다. 학생들이 제대로 된 경험을 했으면 하는데, 아직 선생님들께서 완벽하게 수업 진행 방식을 몸에 익히지 못하셔서 추가적인 도움이 필요해 보였다. 아직도 우리 팀이 해야 할 일은 많다.
시강을 보기 전에 교장 선생님과 우리 직원 전체가 면담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교장 선생님께서 이야기하시기를, 학생 중에서 돈을 벌기 시작하면 학교를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특히, 채굴장에서 일을 하면 교사 월급보다 더 잘 버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학생들이 선생님들을 무시하거나 학교를 빠지는 것이 당연시된다고 한다. 부모님들 역시 무료 교육이 제공되는 상급 초등학교 (중학교)까지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만, 그 이후부터는 교육에 투자했을 때 얼마나 자식의 미래에 도움이 될지 잘 알지 못하고, 이조차 불확실하기에 잘 보내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가 커뮤니케이션팀 소속으로서 할 일이 명확히 보인다. 물론, 교육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못하지만, 지금까지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줄 수도 있다는 것을 더 알려야 한다. 단순히 교육 기관을 늘리고, 학생들을 강제로 학교에 남게 하는 것으로는 단기간에 해결되는 것처럼 보여도, 장기적으로는 다시 원상복구 되기 쉽다. 그렇기에 공부할 이유를 먼저 잘 만들어주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렇게 마지막 학교까지 방문을 마치고, 교육장으로 돌아가서 선생님들과 추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쯤에는 이미 우리가 모두 지쳐있던 터라, 최대한 빠르게 마무리하고 차로 돌아갔다. 나도 온 팔에 두드러기가 심하고, 온몸에 가려운 곳이 많아서 빨리 정리하는 편이 나았다. 차에 타서 한 20분 정도 창문도 다 닫고 에어컨을 최대로 켜서 우리를 식혔는데, 그 짧은 새에 두드러기가 줄어들고, 몸 회복이 되는 것이 느껴졌다. 진짜 시원한 환경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이, 에어컨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몸소 느꼈다.
다시 실롱으로 가는 길, 마우크르왓에 들려서 우리가 점심마다 가서 밥을 먹었던 블래스 하베스트 이터리에 가서 간식을 먹었다. 지난번에 먹은 찐 치킨 모모 (만두)가 아니라, 튀긴 치킨 모모를 시켰는데, 오랜만에 먹는 군만두의 맛이라서 혼자서 3조각인가 먹었다. 다 먹고 나오니 직원들이 다른 건물 외벽을 사진 찍길래 나도 따라서 찍었다. 도대체 왜 찍냐고 물어보니, 건물에 적힌 “Dukan Sha & Ja”를 가르치며 카시족 식당에 저렇게 적혀있는 것이 전통이라고 한다. 너무 고전적으로 적혀있어서 찍었다고. 우리로 치면 전통 간판으로 된 노포를 찍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아, 저 문구의 뜻은 차 (SHA)와 Ja (쌀 혹은 밥)을 파는 가게 (Dukan)이다. 정부 청사 주변에는 주로 영어로 “Tea Stall”이라고 적혀있는데, 카시어로 적혀있는 것은 나도 처음 봤다.
점심 먹고도 실롱을 향해서 한참을 달렸다. 그렇게 밤이 어둑어둑해져, 시계가 오후 10시를 가리킬 때 나는 집에 간신히 도착했다. 그 이후에는 씻고 바로 잤다. 더 무엇을 할 힘이 없었다. 다음날 바로 출근해야 했기에 빨리 몸을 회복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현장 방문은 항상 몸이 피곤하다. 이번에는 몸도 성하지 않고, 집에 빨리 가고 싶다는 생각도 종종 들었다. 그래도 현장에도 가야겠다는 생각이 여전히 드는 것은 갈 때마다 그곳에서 내가 모르는 세상에 대해서 더 배우고 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