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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현지 학생들과 만드는 실롱에서의 나의 수업

[우리가 모르는 인도] 17화

by 모험가 콜린

정부 청사에 출근하기 시작한 첫날. 국장님도 일정으로 출장을 가시고, 휴가 분위기라서 청사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다른 인턴들은 애초에 인도에 도착하지도 않았고, 부서 사무실에는 나와 몇몇 직원들뿐이었다. 물론, 첫 번째 주 중반부터는 나에게도 일을 많이 줘서 할 일이 차고 넘쳤지만, 첫날의 할 일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없는 그 기분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직 우리 팀 팀장님을 만나기 전이었기에, 그냥 앉아 있는 것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조금 만들려다가 만 커리큘럼을 손보기 시작했다. 커리큘럼이 인턴십과 무슨 관계가 있나 할 수 있는데, 맞다, 인턴십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그 커리큘럼은 내가 실롱에서 하고 싶은 개인 프로젝트와 관련이 있었다. 2020년에 런던 국제 모의 유엔 재단 (LIMUN Foundation) 처음 입사했을 때, 나에게 주어졌던 프로젝트는 런던에 있는 고등학교를 돌아다니면서 모의 유엔 토론 워크숍을 진행하는 일이었다. 고등학교 때도 영어 수업을 하는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학교에 다니면서도 항상 친구들에게 무언가 알려주는 것을 좋아했기에 나에게 딱 맞는 보직이었다. 그렇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코로나19가 우리의 삶에 찾아왔다.


그래서 수업은커녕, 재단의 모든 일이 중단될 위기에 있었다. 당연하다. 모의 유엔 토론을 하는 단체인데, 만나서 토론을 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어지니 막막했다. 이때 처음으로 내가 기획한 프로젝트가 “Connected Delegates Programme (CDP)”이다. 영국에서 처음으로 진행한 대규모 온라인 모의 유엔 수업이었다. 전 세계를 돌아봐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온라인으로 모의 유엔을 가르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그만큼 고생했다. 보고 배울 수 있는 예시가 없고, 줌이나 멘티 미터 같은 온라인 도구조차 쓸 줄 몰랐던 때라서 이런 것부터 배워야 했다. 주어진 시간은 3주 남짓이라서 빠르게 준비하고, 모의 유엔을 여름 동안 가르칠 커리큘럼을 직접 쓰고, 수업도 직접 하고, 수업 후에 녹화 영상을 편집하는 것도 다 나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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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애 진행헀던 Connected Delegates Programme (CDP) 포스터 (좌) 그 때 수업 준비하면서 찍었던 사진 (우)

그래도 이러한 노력을 하늘도 가상히 여겼는지, 18개국의 2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나의 수업을 그해 여름에 들었다. 특히 조지아, 카보 베르데, 인도, 우루과이, 베트남과 같이 개발도상국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에게 새로운 교육의 기회를 주고, 평소에는 모의 유엔을 접할 수 없던 친구들에게 무료로 새로운 교육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그래서 실롱에 오기 전부터 계획은 세우고 있었다. 실롱에 가서도 그곳의 학생들이 모의 유엔을 즐길 수 있도록 수업을 진행할 생각은 이미 갖고 있었다. 그래서 2020년의 경험과 그 이후로 쌓은 추가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전반적인 커리큘럼은 짰는데, 문제는 어디서, 어떻게, 누구와 이 수업을 할 수 있냐는 것이었다.


내가 실롱에 아는 사람이 있던 것도 아니고, 실롱과 관련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기에 학생들은 어디서 모을 수 있는지, 수업할 장소는 어디가 있을지 감조차 잡지 못했다. 그래서 성당에 우선 연락을 했었다. 가톨릭의 세가 강한 지역이고, 가톨릭 재단에서 관리하는 학교의 수도 꽤 많았기에 학생도 충분히 모으고, 성당 내부의 방 중 한 곳에서 수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매우 안일한 생각이었다. 성당으로부터 온 답은 당연히 없었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무런 연고가 없는 외국인이 수업하겠다고 하는데 사기라고 생각하고 신고하지 않았으면 다행이다.


그래서 인도로 출국하면서도, 혹시 새로운 NGO를 찾아봐야 하는지 아니면 다른 성당 연락처는 없을지, 계속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준 첫 번째 업무가 모의 유엔 수업 강의안을 마무리하는 것이었기에,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해답을 찾아야 했다. 물론, 찾지는 못했다. 모의 유엔이 일부 대학과 학교에서 동아리처럼 존재를 하는 것 같은데, 연락처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내용이라도 검사를 받으려고 정부 직속 선배에게 강의 계획안을 주고 물어보았다.


“어떤 것 같아? 이 강의 계획안 실행 가능할까?” 내가 제공한 강의 계획안을 쭉 읽어보더니, 선배는 칭찬을 우선 해주었다. “오, 이건 우리 MPOWER 프로젝트의 일부로도 진행할 수도 있겠는데?” 물론, 정부의 지원을 받는 것은 중요하지만, 결국은 정부에 대한 자유로운 평가가 조금 어렵고, 무엇보다 여름에 시작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부족했기에 다른 방법을 찾기로 하였다. 선배는 우리 부서에 메갈라야의 모의 유엔 단체, 메갈라야 모의 유엔 (MeghalayaMUN)에서 활동을 한 사람이 있다면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나의 강의 계획안은 이 루트를 통해서 재단의 설립자이자 초대 회장인 매슈와 (Meshuwa)에게 전달되었다. 매슈와는 강의 계획안을 읽고 나에게 연락을 따로 해주었는데, 내용의 요점은 수업 아이디어가 매우 좋고, 최대한 수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었다.

Screenshot 2025-08-09 at 11.47.22 PM.png 내가 MeghalayaMUN 팀에 제출했던 강의 계획안의 표지. 새롭게 디자인도 하고, 내용도 많이 업데이트해야 했다.

물론, 피드백도 있었다. 우선, 내가 기획한 프로그램은 8주짜리였는데, 8주를 진행하면, 대학교나 고등학교가 방학을 시작하는 시기가 포함되기에, 일부 학생들이 수업을 중도 포기하게 된다. 그래서 한 시간 반씩 8주를 하기보다 4주 동안 3시간씩 수업을 하고, 매주 토요일마다 수업하는 것을 정했다. 이후에 한동안 우리의 채팅방에 정적이 흐르다, 다시 한번 재단 측에 물어보니 장소가 정해졌다. 바로 실롱 라반 (Laban) 지역에 있는 상카대브 대학 (Sankardev College)였다. 상카대브 대학은 요새처럼 높은 언덕 위에 지어져 있는데, 생각보다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가면 이동이 쉽지는 않다. 첫 수업을 하기 전에 재단 측 담당자에게 왜 이 대학을 고르게 되었는지를 물어봤는데, 재단에 이 대학 출신의 인턴들이 많은 것도 한몫했지만, 대학이 저소득층 학생들이 대학 교육을 받을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저소득층 학생들이 많기도 해서, 더 많은 실롱의 학생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자는 나의 취지와도 부합했다.


수업은 내가 강의 계획안을 보낸 시점에서 2주 정도 뒤에 진행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고, 수업 인원은 20명에서 30명 정도 규모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물론, 학생 모집에 관한 부분은 전적으로 재단 측에 맡겼기에, 나는 첫 수업만 잘 준비하면 되었다. 첫 수업에서 학생들의 반응이 좋지 못하면, 그 학생들이 다음 수업에 오는 것을 장담할 수 없어지기에, 첫 수업 준비를 더 했다. 어떤 이야기를 해주어야 학생들이 모의 유엔을 하고자 하는 의지와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길까 고민이 많았는데, 결론은 나의 이야기에서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나는 왜 모의 유엔을 했고 이런 경험이 결국은 어떠한 도움을 주었는지, 학생들의 관점에서 공감하기 쉬운 이야기들로 정리해 보았다.

Screenshot 2025-08-13 at 5.20.04 AM.png 첫 수업을 위해서 준비했던 수업 자료의 일부. UNA-USA 규칙에 대한 파트라서, 어떠한 내용을 수업에서 다룰지 개요를 보여주고 있다.

첫 수업 준비는 단순히 수업을 진행하는 것만 준비하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진행되던 과거와는 다르게 대면 수업에서는 학생들에게 제공할 프린트물이나 기타 활동 교구도 모두 고려해야 했다. 특히, 전기가 언제 대학에서 끊길지 모르고, 일부 학생들은 스마트폰을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거나 아예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는 경우도 있어서, 실물 자료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첫 수업에서는 모의 유엔의 규칙과 자료 조사하는 방법 등과 같은 기초적인 내용을 다루는데, 동시에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기에 실물 자료를 제공해서 학생들이 수업 내내 참고하고, 집에 가서 복습할 방법을 제공하고 싶었다. 물론, 첫 수업 이후에는 모든 학생이 왓츠앱 그룹 채팅방에 들어와 있어서 온라인으로 모든 자료를 공유해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첫 수업 전에는 이런 사실을 몰랐고, 알 수도 없었기에, 자료를 만들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한국이나 미국이었으면 자료집을 워드로 작성하고 집이나 학교에 있는 인쇄기로 뽑아보려고 했을 텐데, 당연히 인도 에어비앤비에 사는 나에게 해당 사항은 없다. 학생 수가 확정이 되기 전이어서 넉넉하게 40부를 뽑아서 가려고 했는데, 도대체 어디서 뽑아야 하는지 알 길이 없다. 구글 지도를 검색해 보니 라잇움크라의 한참 아래쪽에 전문 프린트샵으로 보이는 곳이 있어서 그곳으로 걸어가 보고자 했다. 실롱에서의 장당 복사 가격도 모르기에 챗지피티에 얼마나 정도 내는 것을 생각해야 하는지도 물어보고, 비가 와서 우산도 챙겨 나갔는데, 비가 오니 거기까지 가는 길이 참 멀어 보인다.


그래서 다음날 프린트하는 것이 나을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라잇움크라 시장길을 걷던 중 눈에 간판이 하나 들어왔다. ‘스튜디오 에로스 (제록스 문서 출력).’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실롱에 온 이후에 알게 된 점 중 하나는 프린트가 가능한 가게들은 ‘제록스’라고 간판에 적어둔다는 것이다. 즉, 프린트 회사 이름은 ‘제록스’가 아예 복사를 뜻하는 고유명사화 돼버렸다.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스튜디오 사장님께 내가 필요한 부수를 말씀드리니, 가능하다고 하며 가격을 알려주셨다. 장당 3루피 정도였는데, 챗지피티에서 이야기해 준 가격과 큰 차이가 없어서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물어보니 꽤 걸릴 것이라고 하는데, 프린트하는 내부를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업무용 프린터기가 아니라 가정용 프린터기를 가지고 한 장씩 뽑아준다. 내 자료는 양면이었는데, 양면 복사가 안 되는 모델이라서 한쪽 면을 뽑고, 뒤집어서 반대쪽을 다 뽑아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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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잇움크라의 스튜디오 에로스 외관 (좌) 스튜디오 내부 사진. 사진관답게 액자에 사진이 많이 걸려있다. (우)

이러한 현실을 보고 마냥 기다렸다가는 답이 없겠다 싶어, 사장님께 저녁을 먹고 오겠다고 하고 스튜디오를 빠져나왔다. 저녁은 스튜디오 주변의 버거킹에서 햄버거를 시켜서 먹고, 저녁보다 사실 더 중요한 현금을 찾으러 돌아다녔다. 스튜디오에서는 현금만 받아서 가장 가까운 현금 인출기에 가보니 내 미국 카드를 읽지 못한다. 한 군데를 더 가도 안 된다. 그래서 라잇움크라에서 가장 큰 인도 중앙은행 (State Bank of India) 지점으로 가서 ATM기를 써보니, 구형 현금인출기는 나의 카드를 받아주고, 새롭게 도입된 현금인출기는 카드를 자꾸 받아낸다. 생각을 해보니, 내가 집 주변에서 쓰는 현금인출기도 구형 모델이 있었는데, 오히려 구형 모델들이 더 잘 작동하는 진귀한 순간이었다.


어찌하여 돈을 찾고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갔다. 당연히 복사는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고, 직원 한 명이 전담해서 내 유인물을 복사하고 있다. 인쇄기가 머리 위쪽에 있어서 계속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셨는데, 그게 이미 마음이 안 좋았다. 그래서 왓츠앱 사용 유무를 논하기 전임에도 다음 주부터는 다른 방법으로 유인물을 제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께서는 30분이면 프린트가 마무리될 것 같다고 하셨는데, 아니다. 절대 시간 안에 끝날 수 없다. 실제로도 한참이 걸렸다. 2시간 정도를 기다렸을까 드디어 모든 복사가 끝났다. 무슨 대장정이 마무리된 것처럼 뿌듯했다. 복사된 유인물들은 보니, 그래도 뽑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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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출력된 유인물. 한 세트에 양면 10페이지나 되어서 생각보다 두껍다. (좌) 학생들에게 그냥 유인물을 줄 수 없기에 파일도 주변 문구점에서 구매해서 유인물을 넣었다. (우)

모든 준비가 끝나고 그 주 토요일에 드디어 첫 수업을 시작했다. 수업이나 강연은 다양한 곳에서 해왔고, 연설이나 발표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해왔지만, 시작 전에는 항상 긴장된다. 이야기를 잘 풀어나갈 수 있을지, 학생들의 반응은 어떠할지, 특히 이 수업은 3시간짜리이기에 이 많은 시간을 어떻게 채울지까지.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그래도 첫 수업이라 재단 측에서도 커뮤니케이션 총괄이 왔었는데, 그 친구와 이야기하다 보니 조금 긴장이 풀린다. 그 친구도 이곳 학생들에게는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하다며, 이번 수업이 그런 기회를 주는 것은 당연하고, 앞으로도 더 많은 기회가 학생들에게 제공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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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카대브 대학 본관 정문에서 찍은 사진 (좌) 상카대브 대학 본관 앞의 운동장 겸 농구장 및 기타 건물. 마지막 수업은 왼쪽 건물에서 모의 유엔 회의를 진행했다. (우)

첫 수업은 나에 대한 소개를 시작으로, 모의 유엔 규칙 중 미국 대학들이 많이 사용하는 미국 유엔 협회 방식 (UNA-USA)의 토론 구조 및 세부 규칙을 설명해 주고, 학생들이 토론 준비를 위한 자료 조사를 어떻게 진행할지를 논의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그리고 항상 첫 수업에는 간단한 게임을 준비하는데, 이번에도 모의 유엔 토론 규칙과 다양한 국가의 정보를 바탕으로 제퍼디 (jeopardy) 게임을 준비해 갔다. 나는 고등학생이 더 많을 것 같아서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릴 때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게임 진행을 생각해 두었는데, 수업을 가보니 대학생이 고등학생보다 많아서 조금은 당황했다. 그래도 빠르게 머릿속에서 게임과 수업 진행의 톤을 바꿔서 너무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이미 어느 정도 사회 경험이 있는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틀어서 수업을 진행했다.

d119f21c-1385-48c3-b1bb-1414473396d1.jpeg 첫 수업을 마치고 참여한 모든 학생들과 다 같이 찍은 단체 사진. 참여해 준 모든 학생들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

수업을 진행하는 동안, 학생들이 질문도 생각보다는 많이 해주고, 내가 현지의 규칙과 다르게 설명하는 부분이 있으면 이야기도 해줘서 수업이 잘 진행되었다. 물론, 학생들이 수업에 30분 정도 늦게 와 수업이 전반적으로 지연되고, 그로 인해서 수업 내용 일부를 간략하게만 훑고 간 것은 아쉬운 부분이지만, 모든 것이 항상 계획대로만 가지도 않고, 완벽할 수도 없다. 그래도 재단 측 직원들도 모두 너무 좋은 수업이었다고 이야기해 줘서 한숨 돌렸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서 재단 인스타그램을 보니, 재단에서 학생을 인터뷰한 인스타그램 스토리가 올라와 있었는데, 학생들이 많은 것을 배웠고, 나에게 배울 점이 많다는 등의 칭찬을 해줘서 그래도 내가 수업을 잘 진행했다고 생각했다.


첫 수업 이후 두 번의 수업 동안, 학생들은 항상 질문을 부끄러워했다. 나는 잘못된 질문은 없으니, 항상 편안하게 질문하라고, 나를 최대한 활용해 달라고 이야기했지만, 아쉽게도 그렇지 못한 학생들이 여전히 많았다. 어쩔 수 없다. 문화적으로 선생님과의 관계가 우리나라와 비슷해서, 학생들이 선생님께 질문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게다가 선생님을 Sir (경)이나 Ma’am으로 부르는 습관이 있다 보니, 나에게도 이름만 부르기보다는 자꾸 Sir Colin이라고 부르려고 한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첫 수업부터 Sir을 떼고, 이름만 부르라고 했는데, 그렇게 하는 학생도 있고, 여전히 어려워해서 그냥 Sir로 부르는 애들도 있다. 더 고쳐볼지 생각도 했지만, 이곳 문화이니 마음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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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시간 활동을 위해서 학생들이 실롱에 유엔 본부가 옮겨야하는지에 대해서 논의하는 모습 (좌) 실롱에 유엔이 왜 와야하는지 등에 대한 대중 연설을 해보는 학생의 모습 (우)

수업하면서 숙제를 학생들에게 내준 적이 있다. 한 국가에 대한 자료 조사를 하고, 그 국가의 관점에서 우리가 토론할 주제에 대한 조사를 해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숙제를 제출한 학생은 꽤 많았는데, 그 상당수가 챗지피티나 다른 AI를 활용해서 작성했다는 것이었다. 참 운명의 장난이라고, NEHU 학회에서 내가 발표한 연구 내용이 AI로 작성된 댓글을 잡아내는 방법에 관한 내용이었기에, 학생들의 보고서를 읽다 보니 AI의 향기가 강하게 났다. 그래서 온라인 Detection 도구들을 활용해서 분석해 보니, 그래도 가져온 경우도 있고, 아니더라도 70% 이상을 AI가 작성한 경우가 꽤 많았다. 그래서 그 학생들에게는 피드백을 주지 않고, AI 분석 보고서만 첨부해서 다시 숙제를 돌려보냈다. 학생들도 다음 수업에서 미안하다고 한 친구들도 있었고, 결국은 다시 직접 작성해서 낸 친구들도 있었다. 아쉬운 마음도 당연히 있었지만, 사실 알려주지 않으면 모른다. AI를 공부하면서, 숙제하면서 어느 정도만 써야 하는지 누군가 설명해 주지 않으면, 오히려 AI를 활용해서 다 쓰는 것이 더 현명하고 효과적인 선택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무작정 혼을 내기보다는, 숙제를 내준 다음 수업 시간의 일부를 할애해서 AI 활용에 대해 이야기했다. 제아무리 우리 대학원에 날고 긴다고 하는 친구들이 모여있다고 하더라도, 그 친구들조차 AI를 사용하지 않고 공부를 하기는 어렵다. 물론, 나는 아직도 정공법을 고수해서 AI 활용을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AI를 똑똑하게 활용하는 법은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학생들에게도 전해줬다. “AI를 활용해서 자료 조사를 하고, 새로운 정보를 찾는 것은 좋지만, 결국 글을 쓰는 것은 네가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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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는 모습. 너무 다들 주의 깊게 잘 들어준다. (좌) 3주차 숙제를 설명하는 장면. 이 날 HDMI 케이블이 잘 안되서 다른 학생 노트북을 썼다. (우)

제아무리 수업하는 것을 좋아하더라도, 나에게도 인턴십이라는 본업이 있었기에, 모든 수업 준비가 쉬웠던 것은 아니다. 게다가 학회 준비도 해야 했고, 현장 방문과 가까이 붙어있던 두 수업은 정신없이 수업 자료를 준비해서 갔다. 그래도 학생들이 한국 전쟁 시뮬레이션 활동에 정규 수업 종료 시각인 4시를 훌쩍 넘겨서 5시에서 5시 반까지 남아서 열정적으로 토론하며 참여하고, 결의안 작성 연습 활동에도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참여하는 모습을 볼 때면 에너지가 다시 솟아난다. 학생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웃고, 자신감 있게 연설하고,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을 볼 때면 뿌듯함에 미소를 참기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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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한 활동을 진행하는 모습. 각 팀의 수장들과 팀원들이 승리를 위해서 어떠한 전략을 세울지 회의를 열심히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는 미국팀이 승리했다.

마지막 수업은 모의 유엔 토론을 짧게 직접 해보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배운 모든 내용을 토대로, 진짜 모의 유엔 회의에 가기 전에 실전 연습을 해볼 기회를 주고 싶었다. 차라리 실수할 것이면, 이곳에서 하라는 마음으로. 게다가 그날은 우리 부서 직원 중 일부도 수업 참관을 해보고 싶다고 해서, 조금 더 긴장하며 수업을 준비했다. 다행히 지금까지 내가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연설도 잘하고, 심지어는 아예 첫 수업 때는 질문도, 대답도 어려워했던 친구가 무려 연설을 두 개나, 그중 하나는 즉석에서 준비해서 한 것을 보고 약간 감동받았다. 그 친구는 상카대브 대학의 학생이었는데, 그 발전 모습이 너무 멋있어서 “가장 발전한 학생”으로 선정해서 수업 마무리 전에 선물을 줬다. 나머지 두 개의 선물은 가장 잘한 학생들 두 명에게 주었는데, 이 친구들은 이미 자신감 있게 적극적으로 토론을 해 온 친구들이라서 내일이 기대되는 마음에 선물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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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직접 모의 유엔 결의안의 일부를 써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좌) 서로 결의안에 대한 피드백을 작성한 이후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우)

4주 동안 수업은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매번 3시간이 이렇게 짧은 시간이었나 싶을 정도로 순식간에 시간은 지나갔다. 수업마다 갈 때는 주말인데 출근하는 기분이라서, 힘들고 사실 집에 돌아와서도 수업 내내 에너지를 너무 서서 뻗은 날들도 많았다. 특히, 수업할 때 내가 처지면 학생들은 더 쳐지기에 평소보다 더 에너지를 써서 수업을 진행하는데, 그래서 집에 와서 옷도 못 갈아입고 잔 날도 있다. 몸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수업을 계속 가고 싶었던 이유는 학생들이었다. 그래도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은 것이 느껴져서, 잘은 못하지만 해보고 싶어 하는 모습이 눈에 보여서, 그게 너무 뿌듯해서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 특히, 쉬어도 되었을 주말 오후의 시간을 반납하고 온 학생들의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경험을 전수해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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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4회의 수업에 모두 참여한 학생들에게 수료증을 주고 있다. 30여명의 학생들을 한 명 한 명 볼 때마다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 참 아쉬웠다.

학생들에게 수업을 마무리하면서도 이야기했다. “지금 당장은 내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필요한 날이 있다면, 언제든지 연락해라. 이 수업을 들은 모두는 나의 네트워크에 있고, 가족들과 같다.” 나는 모든 인연을 믿는다. 이 수업을 통해 만나게 된 모든 학생도 만약 수업하지 않았다면, 이 친구들이 수업에 신청하지 않았다면 실롱에 같이 살았어도 아예 모르는 관계였을 것이다. 하지만 수업이 우리를 이어주었기에, 그리고 그 수업을 마지막 날까지 열심히 참여했기에 이 인연은 이어졌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언제든지 돕고 싶다. 단순히 수업을 잘 들어준 학생들이 아닌, 이 모든 친구는 나의 여름에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겨주었기에 정말 고맙다. 나도 수업하면서 어떻게 말할 때 전달이 더 잘되고, 다양한 수준의 학생들을 통합해서 가르칠 때 어떠한 점을 더 주의해야 하는지도 배웠다.

6E2EFBF0-967D-4595-B393-06BB096EFA4A.png 마지막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기 직전에 찍힌 모습. 꼭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내가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는 친구로 생각되었으면 한다고.

집에 와보니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우리 재단이 태그 되어 있다. 한 학생이 올린 이야기였는데, 나의 수업에 참여한 것이 이번 여름에 한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는, 수업에 참여한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너무나도 고마웠다. 그래도 내 수업이 도움이 되었다니, 기쁜 마음도 컸다. 이래서 계속 수업을 하는 것 같다. 친구 중에서는 아직도 모의 유엔을 하냐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여전히 모의 유엔을 가르친다. 나의 삶에서 모의 유엔이 준 변화를 기억하고 있기에, 그리고 나의 수업이, 모의 유엔에 또 다른 누군가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기에, 그 가능성을 믿고 또 수업하고, 모의 유엔을 가르친다.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 새로운 곳에 방문하면, 실롱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또 현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모의 유엔 수업을 하고 싶다. 또 다른 누군가도 나와 같은 꿈을 꿀 수 있다면, 언제든지 수업할 자신이 있다.


지난주에 본업의 일이 예상 밖으로 많아지고, 중간에 쓰고 있던 글의 초안이 사라져서 결국 한 주 동안 연재를 못하게 되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꾸준하게 마지막 화까지 업로드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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