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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으로서의 첫 현장 방문, 인도 마우크독 마을

[우리가 모르는 인도] 14화

by 모험가 콜린

지난 10화에서 소개한 주정부 회의가 진행되는 와중, 직원들 사이에 무서운 (?) 소문이 돌았다. 바로 일부 직원들이 토요일에 근무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대상자에는 당연히 인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토요일 근무가 계획된 것 자체가 새로 온 인턴들을 위해서 생겨난 것이었다. 모든 인턴이 인도에 와서 국장님과 첫 미팅을 할 때, 우리가 수차례 강조했던 것이 바로 “현장에 나갈 기회”를 많이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이미 실롱에서 근무하는 것 역시도 현장에서 근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가 정책을 만들고 돕는다면, 그 정책의 수혜자를 직접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를 많이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회의에서 국장님께서도 거의 일주일에 한 번꼴로, 최대한 많은 현장 방문을 기획해 주겠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렇게 이야기한 것이 불과 며칠 전이었는데, 직원들에게서 금요일에 현장 방문 일정에 대한 공지를 전달받았다. 인턴들이 현장을 처음 방문하는 것이라서, 실롱에서 한 시간 반 정도면 갈 수 있는 마우크독(Mawkdok) 마을을 방문하는 것이 일정이었다. 그날 마을에서는 마을 건강 협의체 (Village Health Council)의 구성원들이 회의하기로 되어있어서, 회의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서 실롱에서 일찍 출발했다. 물론, 인턴들만 간 것은 아니고, 현지 직원들은 우리와 함께 출발했고, 국장님께서도 시간에 맞추어 마우크독 마을로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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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크독 마을으로 가는 길. 확실히 자연이 더 많이 느껴진다. (좌) 노동자들이 트럭에서 떨어진 나무 각목을 줍고 있다. (우)

마을에 도착해서 보니, 실롱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음에도 도시인 실롱과의 차이가 크다. 도로에 지나다니는 차의 숫자도 현저히 적고, 마을의 환경도 시골 느낌이 강하게 났다. 농지도 가득하고, 가는 길에 돌을 채굴하고 있는 곳도 있을 정도로, 도시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차를 타고 꽤 달리고 나니, 마우크독 마을 회관에 도착했다. 마을 회관은 지역 아동 센터와 비슷한 앙간와디 센터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어서, 회의가 마무리된 이후에는 센터에서 지내는 아이들과 잠시 시간을 갖고 놀기도 했다. 마을 회관 안에 이미 협의체 구성원분들은 모두 모여 계셨고, 이스트 카시 힐스 (East Khasi Hills)의 부 행정관 (Deputy Comissioner)님께서 이미 협의체 구성원분들과 피임과 청소년기 임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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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회관 및 앙간와디 센터 건물에 그려져 있는 벽화 포스터 (좌) 회관 옆의 앙간와디 센터의 내부 (우)

이야기의 요지는 아직 피임이나 출산 간격 조절의 중요성을 비롯한 청소년기 임신 등과 같은 성적인 주제에 대한 지식이 마을 구성원들 사이에서 아직은 널리 퍼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피임이나 출산 간격을 마을 구성원이 자신의 파트너에게 요구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 되었다. HIV 검사 역시 매우 중요하지만, 마을 청소년들 사이에 아직 중요성이 잘 알려지지 않았고, 검사를 받으러 가는 것 자체가 긴 여정이 되는 경우도 많아서, 청소년들을 검사에 더 참여하게 하려면, 더 많은 홍보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마을 주민 중 한 분이 하셨다. 들으면서 많은 공감이 갔다. 이미 여러 번 이야기하였지만, 어떠한 정책도 지식도 다른 사람에게 공유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 무용지물이다. 역할을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정책을 만들 때 정책을 어떻게 만들까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이 정책에 대한 사람들의 공감을 어떻게 얻을까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아무리 어려운, 인기가 없는 정책이라도 한 명이라도 더 마음을 얻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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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회관에서 부행정관님이 마을 주민들과 이야기 하는 모습 (좌) 마을 건강 협의체가 지금까지 적어온 회의록. 마우크독 마을이 협의체 운영을 정말 잘 해왔다고 한다. (우)

회의 자체는 국장님의 주도로 진행되었다. 주민분들은 모두 카시어 화자였기에, 우리 직원 중 카시어가 가장 유창한 직원이 번역을 주로 도왔다. (메갈라야 내에서도 모어가 가로어나 자인타어 등 다른 부족 언어인 경우도 있고, 일부러 집안에서 자식이 인도 본토로 넘어가서 사는 것을 염두에 두고 부족 언어보다는 힌디어를 더 써서 부족 언어가 익숙하지 않은 현지인들도 있다) 우리 직원이 10화에서 소개된 주정부 회의에서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를 협의체 구성원분들께 공유한 뒤, 본격적으로 영양 결핍 문제에 대한 토의를 이어 나갔다. 토의에서 놀라웠던 점은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비타민 A와 D 결핍이 유행처럼 나타났는데, 앙간와티 센터의 직원분께서 마을 주민들이 채소를 잘 먹지 않아 버릇해서 그런 것 같다고 설명하셨다. 우리가 편견이라면 편견이라고 할 수 있지만, 주로 개발 현장을 생각하면, 고기나 단백질이 주로 부족한 상황을 가정하기 마련인데, 채소 섭취가 부족해서 영양 결핍이 있는 것은 생각지 못했다. 마을 주민들은 주로 감자와 쌀만 먹지 다른 채소 및 곡류는 익숙하지 않다 보니, 메뉴로 선정되기가 어렵다고 한다. 식단은 결국 육류 아니면 마기 (Maggie)와 같은 라면 위주로 구성이 된다. 당연히 필수 영양소가 모두 이 식단으로는 채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참여자 모두가 공감했던 점은 어렸을 때, 맛을 처음 배우기 시작했을 때, 채소부터 익숙해질 수 있도록 올바른 식단을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IMG_2213.jpeg 국장님과 부행정관님을 비롯해서 마을 주민들이 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이후에는 앙간와디 센터에서 제공되는 현지 생산물 중심의 점심 식사 도시락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나누고, 국장님께서 교육에 관한 이야기로 주제를 바꾸셨다. 국장님께서는 참여자 모두에게 한 명 한 명, 마을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데 있어서 어떠한 목표나 꿈을 가졌는지를 물어보셨다. 마을 이장님께서는 건강하게 좋은 교육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고, 다른 주민들 역시 아이들이 더 나은 삶을 사는 것, 더 좋은 직업을 갖는 것. 어느 나라에서 어느 지역에 가서도 쉽게 들을 수 있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답변을 들으면서 궁금증이 생겼다.


“그렇다면 이 마을 사람들에게 성공은 어떤 의미일까? 좋은 직업은 무엇일까?”


예를 들어, 우리나라도 한 때는 기계공학이나 전자 공학 등 공대를 나오는 것이 좋은 직업이었다가 지금은 의대를 가는 것이 최고의 직업으로 여겨지는 것처럼 시대에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최고 대우를 받는 의사가 중국에서는 선망받는 직업이 아닌 것과 같이 나라에 따라서, 환경에 따라서 “성공”과 “좋은 직업”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기에 궁금했다. 과연 이 마을 사람들은 어떠한 꿈을 아이들에게 심어주고 있을까?


그래서 국장님이 기회를 주셨을 때 바로 손을 들고 질문했는데, 이장님께서는 간단하게 “스스로 먹고살 수 있을 정도면 된다.”라고 답변을 하셨다. 마을에 남아도 좋고, 마을을 떠나도 좋지만, 스스로 먹고살 수 있으면 좋다는 것. 맞는 답변이다. 생활고를 겪기도 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생활고 없이 스스로 잘 먹고사는 자식들은 이미 성공한 것과 다름이 없다. 우리나라도 경제 성장을 할 당시에 부모 세대는 자식 세대가 자신보다는 더 잘 사기만 했으면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것이 부모와 자식 모두에게 삶의 행복을 가져다준다면,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인적 자원을 원동력 삼아서 경제 성장을 이루고자 할 때는 다소 아쉬울 수도 있는 꿈이다. 먹고사는 것은 교육이나 공부가 아니더라고, 채굴하거나, 농사를 짓거나 다양한 방법으로도 가능하다. 즉, 학교나 교육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학교로 학생들이 더 오게 하기 위해서는 큰 꿈을 심어주는 것, 즉 교육이 줄 수 있는 더 많은 기회에 대해서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똑똑하고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많은 학생이 단순히 기회를 몰라서 학교를 가지 않아서 놓치는 기회가 없도록, 교육이 제공할 수 있는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홍보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조심스럽게 고민해 봐야 하는 일이다. 괜히 내가 한국과 세계 각국의 도시에서 자라며 배운 자본주의적인, 경쟁 중심적인 가치를 메갈라야의 마을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나에게는 더 많은 기회가 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행복하지 않은 삶일 수도 있다. 그래서 항상 이러한 생각을 할 때면 나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절대 모두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절대 모든 사람이 나의 가치를 따르기를, 더 많은 꿈을 꾸어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좋겠지만, 결국 선택은 개개인이 하는 것이다. 모두에게 더 많은 기회가 기다리고 있음을 알리지만, 결국은 더 많은 꿈을, 교육을 택한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지원과 도움을 주는 것이 맞다. 이러한 생각을 갖는 데에는 내 개인적인 경험이 영향을 많이 주었다. 기회가 있다는 것 자체를 몰랐을 때 그리고 그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을 때 느끼는 후회를 직접 겪으며 살아왔기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후회를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나의 목표다. 중국에 고등학교 때 넘어가서 모의 유엔이라는 것도 참여해 보고, 한국에서만 공부하던 나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추고 해외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더 일찍 준비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컸었다.


조금이라도 이러한 기회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일찍 알았다면, 다른 친구들처럼 더 일찍 경험을 쌓지 않았을까 후회 아닌 후회를 했었다. 물론, 가정환경을 비롯한 많은 것이 나와는 달랐기에, 나는 그때의 나의 상황을 인정하고, 되돌릴 수 없는 과거를 탓하기보다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 경험을 많이 쌓고자 노력하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에 놓이지 않을 수 있도록 돕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그래서 지금 일을 하면서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고, 알릴 수 있을 거다.


이후 학부를 다니면서, 감사하게도 정말 많은 기회를 알게 되었고, 다채로운 경험을 쌓았기에 이러한 내용은 어디를 가든지 항상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하고자 노력하였다. 브런치 북을 쓰고 있는 이유 중 하나도 인도 메갈라야라는 우리에게는 미지의 땅인 이곳이 줄 수 있는 수많은 기회를 공유하고자 하는 것일 정도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나와 함께 다채로운 경험을 쌓아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 물론, 이야기를 해준 모든 사람이 듣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나와 맞지 않는 일이라고, 누군가는 그냥 재미가 없어서, 다양한 이유로 이야기를 해줘도 듣지 않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래서 깨달았다. 나의 이야기가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구나. 모두의 상황과 삶이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이치지만, 그때 생각했다. 그렇다면 모두를 완벽하게 돕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하고 싶은 열정이 있는, 기회를 찾고 잡고 싶은 사람들을 더 많이 돕자.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마을 회관에서 실롱으로 돌아가기 전에, 잠시 주변 관광지를 직원들과 함께 둘러보았다. 메갈라야 대부분 지역과 같이 마우크독도 빼어난 절경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방문한 날에는 안개가 많이 껴서 그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온전히 즐기지는 못했다. 번지점프와 집라인을 자연 속에서 탈 수 있는 곳이 있는데, 매우 안전하다. 물론, 나는 타지 않았고, 인턴 중 한 명이 집라인을 타고 구경했다. 겁이 많아서 나는 탈 생각조차 안 했는데, 그 친구는 정말 용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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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크독 마을 주변에 있는 산들. 집 라인을 타고 구경하면 아름다울 것 같다. 무서움과는 별개로 (좌). 마우크독 마을에서 실롱으로 가는 길. 자연으로 가득하다. (우)

자연을 구경하고, 돌아가는 길에 지역 상점가에 들러서 채소와 과일을 파는 매대를 구경하고, 직원들이 계속 이야기를 하던 ‘메갈라야식 순대’를 먹었다. 물론, 우리의 순대랑 비슷한 점은 돼지 창자로 만들었다는 점 정도고, 조리하는 방식도 사진에서 보듯이 다르고, 순대 속도 당연히 다르다. 순대 속에는 특이하게 돼지비계가 들어있는데, 먹고 나니 생각보다 쌈장이 당기는 아주 익숙한 맛이었다. 분명히 우리가 아는 순대는 아닌데, 동시에 한국 음식과 중국 음식 사이 어딘가의 되게 익숙한 맛이다. 물론, 향신료의 맛도 조금은 난다. 그래도 만약에 기회가 된다면, 여러분도 먹어보고 이게 정확히 어떠한 맛인지 후기를 남겨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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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크독 마을 주변 상점가에서 먹을 수 있는 메갈라야식 순대가 조리되는 모습 (좌) 순대를 잘라 놓은 모습 (우). 예상 외로 맛있게 먹었다.

실롱으로 돌아와서는 나가랜드 (Nagaland) 주 음식을 먹었다. 메갈라야의 음식과 큰 차이는 없는데, 발효된 죽순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 특징이었다. 발효 죽순이라고 해서 맛이 어떨지 걱정이 앞섰던 것도 사실인데, 생각보다 “발효”의 맛은 강하지 않고 먹을만하다. 사실, 가장 만족했던 부분은 중국의 라오간마 (老干 )와 같은 라조장이 제공된 것이다. 중국에서 볶음밥을 시키면 항상 라조장을 비벼서 같이 먹었는데, 마침 라조장이 있어서 밥에다 비벼서 먹었다. 직원들은 발효 콩이 들어간 현지식 샐러드인 신주(Sinju)를 정말 잘 먹었는데, 내 입맛에는 조금 맞지 않아서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했다.

IMG_2242.jpeg Kai-nung Shillong이라는 식당에서 먹은 나가랜드 음식. 맛있다. 한 번쯤 도전해 볼 만하다.

첫 현장 방문이라서 부서에서도 신경을 많이 썼다. 여정이 너무 길지 않고, 하루 안에 돌아올 수 있는 곳으로 정했다고 한다. 후문으로는 국장님께서도 우리에게 현장 방문이 어떠한지 보여주고 싶어서 급하게 일정이 잡혔다고 한다. 직접 방문해서 마을 주민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더 정확히 어떠한 문제를 내가 해결해야 하는지가 보인다. 서류를 읽어서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제고가 필요함은 알 수 있었지만, 주민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니 어느 정도 선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이 보인다. 이것이 현장에서 일하는 것의 즐거움인 것 같다. 서류에서는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의 생각, 생활 방식, 생활 여건을 볼 수 있다. 내가 쉽게 생각할 수 없는 부분까지도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환경이라서 현장이 즐겁다. 물론, 이 첫 방문을 했을 때는 몰랐다. 내가 얼마나 많은 방문을 하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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