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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대학원생인데, 인도 대학에서 강연을 해달라고요?

[우리가 모르는 인도] 19화

by 모험가 콜린

18화에서 소개한 투라로 가는 차 안, 왓츠앱에 장문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내가 4주 동안 가르쳤던 Access Delegates Summer Programme에 참여했던 대학생 아니시 (Anish)가 준 연락이었다. 아니시는 실롱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 중 하나인 세인트 앤서니 대학 (St Anthony’s College)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인데, 4주 동안 가장 열심히 수업에 참여한 친구 중의 하나였어서, 수업 마지막 날에 최우수 학생 중 한 명으로 선정하여 한국에서 가져온 특별 선물을 주기도 하였다. 그렇기에 아니시의 연락은 내게 아주 반가운 연락이었다. 문자는 내가 한 수업에 감사하다는 내용과 수업을 통해서 자신감을 더 얻었다는 내용으로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 문자에서 더 중요한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제가 학교 교수님들께 프로그램에 관해서 이야기하니, 정말 좋아하시며 우리 대학으로도 초대하고자 하십니다. 혹시 대학으로 오셔서 국제 관계에 대한 작은 세미나를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니시를 비롯해서 세인트 앤서니 대학에서 온 학생들이 두 명 더 있었는데, 셋이 모두 자신이 다니는 대학교 교수님들께 여름에 들은 나의 모의 유엔 수업에 대해서 좋은 말들을 전해준 것 같다. 문자를 보는 순간, 고민할 것도 없었다. 당연히 가야 했다. 더 많은 학생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나눌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물론, 시간이 조금 빠듯했다. 투라에서 실롱으로 돌아간 이후 다시 16화에서 소개한 라니코르 현장방문이 계획되어 있었고, 그 이후에는 내가 실롱에서 보내는 마지막 주라서 국장님과의 미팅, 송별회 등 수많은 계획이 산적해 있었다. 원래 대학 측에서는 8월 이후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가 8월에는 인도에 없다 보니 학생들이 총장님과 이야기해서 7월 30일에 강연을 하는 것으로 날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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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르친 수업에서 발표를 하는 아니시의 모습. 저 날도 연설을 참 잘했다. (좌) 아니시가 수업을 마치고 수료증을 받는 모습. 성실하게 참여해준 친구라서 더욱 고마웠다. (우)

공식적으로는 세인트 앤서니 대학 정치학과와 대학 모의 유엔 동아리 (SACMUN)이 주최하는 강연에 강사로 초대가 되었다. 아니시가 올해 동아리의 회장을 맡고 있고, 내가 가르친 다른 두 친구도 운영진으로서 역할하고 있다. 초대를 받고 나서도 모든 것이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16화에서 이야기했듯이 애초에 라니코르에서의 일정이 너무 힘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7월 30일에 내가 시간을 낼 수 있을지도 확신이 없었다. 팀 회의를 하다가 개발 국장님께 우리의 인턴십 마무리에 대해서 발표해야 하는데, 이 발표가 잠정적으로 수요일에 잡혔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심지어 수업하기로 한 수요일 오후에 딱 겹쳐서, 혹시 학교 측에 수업 날짜를 바꿀 수 있는지 물어봤는데, 이미 강연 홍보도 했고, 다른 날짜들에는 학교 행사가 있어서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특히, 목요일에는 개교기념일과 같은 행사가 있어서 수요일 이후에는 매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로 강연 홍보가 이미 많이 되었는지, 부서 직원 중 한 명이 세인트 앤서니 대학에 다니는 타 부서 직원한테서 나의 강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며 이야기해 주기도 하였다.)

Screenshot 2025-08-19 at 6.41.09 AM.png 세인트 앤서니 대학 모의유엔팀에서 보내온 공식 초청 이메일. 이미 이야기를 아니시와 충분히 해서 간단하게 작성되었다.

물론, 국장님께서 항상 일과 회의가 많으셔서 발표 시간이 결국에는 조금 늦어질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선은 원래 시간인 수요일 4시에 강연을 시작하는 것으로 확정했다. 세인트 앤서니 대학이 우리 청사에서 15분 정도밖에 안 떨어진 곳에 있기에, 수업하고 돌아와도 충분히 발표할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다른 인턴들에게 양해를 구해서 나의 발표 순서를 제일 뒤로 빼고, 강연을 다녀와서 발표하는 것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물론, 마음이 아주 편하지는 않았다. 혹시나 발표에 늦지는 않을까, 이번 기회를 놓쳐서 다음 주에 온라인으로 발표해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은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수요일에 내가 강연하고 돌아와서도 아직 첫 번째 발표가 끝나지 않은 상태였고, 내 발표는 아주 문제없이 마지막 순서에 진행되었다. 오히려 내가 학생들하고 조금 더 시간을 내서 이야기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정도로 시간이 여유로웠다.


강연 날짜와 시간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니, 다음으로 생각해야 할 점은 무슨 내용을 강연에서 이야기할까였다. 아니시는 나에게 국제 관계와 유엔에서 일하는 방법 등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는데, 어디에서부터 시작할지, 어떠한 이야기가 가장 도움이 될지 고민을 많이 해야 했다. 괜히 학생들에게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면 도움이 아예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아이들에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지도 않았다. 물론, 유엔과 유엔 산하 기구에서 인턴을 구하고, 일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학부만 졸업한 이후에 인턴을 하는 것도 근래에서나 가능해진 것이지, 이전에는 석사 이상을 가진 사람만이 유엔에서 “인턴”을 할 수 있었다. 애초에 내가 이탈리아 로마 세계식량계획 본부에서 인턴을 할 때도, 다른 인턴들은 대부분 석사를 가지고 있었고, 나의 후임으로 뽑힌 인턴도 석사를 2개나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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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식량계획 본부에서 인턴을 하던 2022년에 찍었던 사진들. 나의 직속 상사와 함께 본부 건물 앞에서 찍은 사진 (좌) 세계식량계획 로고 앞에서도 한 장 찍었다. (우)

하지만 절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학생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었던 내용도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충분히 학부 이후에 유엔 산하 기구에서 인턴을 할 수 있다. 단지 그를 위해서 충분한 준비가 필요할 뿐이다. 대학 내내 직무와 관련된 경험을 쌓고, 심지어는 동아리에서도 운영진을 하는 등 경험을 다양하게 쌓으면서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 안에서 경험도 당연히 좋지만, 세계적인 경험이 있다면 당연히 좋다. 결국은 내가 왜 일하고자 하는 기관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 즉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자신의 이야기를 더 잘 풀어나갈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전달해 줘야겠다는 큰 틀은 잡았다.


하지만 자칫하면 이상주의적인 방법론만 이야기하고 올 것 같았다. 학생들에게 이러한 이야기가 공감을 쌓기 어려울뿐더러, “에이 저 사람이나 가능하지. 내가 어떻게 해.”라는 생각이 들게 하여 오히려 위축되게 할 수도 있다. 또 일부 학생들은 "아, 저 사람은 선진국에서 잘 살아서 가능한 이야기 아닐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모든 반응은 내가 전에 비슷한 이야기를 했을 때, 들었던 일부 사람들의 반응이기에, 이번 강연에서도 나의 메시지가 잘못 전달되지 않도록 고민을 많이 해야 했다. 게다가 나도 아직 대학원생이기에 부족한 점도, 배워야 하는 점도, 경험해야 하는 것도 세상에 너무 많다. 내가 강사로서 초대받은 일은 감사하지만, 경험이 많은 다른 강사분들에 비해서, 아니면 현직에서 지금 일하고 계신 분들보다는 한참 부족한 사람이기에 내가 마치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강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강연의 방향을 다시 잡았다.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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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학 강연에서 내가 사용했던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의 일부. 내 원래 발표 스타일에 맞춰서 한 슬라이드에 최소한의 단어나 그림만 넣고자 노력하였다.

나의 강연을 세 파트로 나누고, 내가 삶을 살아오면서 지켜온 세 가지의 가치를 소개하고 싶었다. 첫 번째 가치는 “세상에서 최고가 되자.”이다. 물론, 이 가치가 단순히 경쟁에서 승리하자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대한민국 내에서 내가 잘 나가거나 잘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글로벌 무대에서도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기왕이면 우리나라에서만 최고가 아니라, 세계에서 최고가 되는 것을 목표로 노력하고자 한다. 이러한 가치는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가졌는데, 한국의 중학교에서 중국의 국제학교로 처음 옮겼을 때만 해도, 한국에 있는 최고 대학으로 돌아가는 것이 목표였다. 이미 한국에 있을 때도 충분히 공부를 잘했고, 삶이 편안했기에 돌아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학교생활을 하면서 한국 밖의 전 세계를 무대로 해도, 내가 충분히 경쟁력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부터는 한국인 중에서, 한국에서 최고가 아니라 전 세계에서 경쟁력 있는 사람이 되고자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이 선택은 내가 전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편하게 사람들과 교류하고, 토론하고, 일할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다른 사람들이 하기 힘든 수많은 독특한 경험을 쌓게 해 주었다.


두 번째 가치는 “인생은 모험”이다. 이미 1화에서 소개한 적이 있기에, 간략히 덧붙이자면, 무언가를 했을 때 일어날 일을 걱정하기보다는, 우선 행동을 하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행동하고 나서는 수습이나 고쳐나갈 수 있지만, 아예 행동하지 않고 나중에 “아 그때 그것을 해볼걸” 하고 후회할 때는 아무것도 바꿀 수가 없다. 그래서 기회가 왔다면,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생들에게도 대학 생활 중에 “이게 과연 나의 미래에 도움이 될까?”하는 고민을 너무 많이 하지 말고, 대학 생활 중 할 수 있는 모든 경험은 최대한 많이 해보는 것을 추천해 주고 싶었다. 물론, 학생들에게 실제 강연에서는 덧붙였다.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모두에게 맞는 조언은 아니고, 개인의 상황에 따라서 대학 생활은 다르게 보낼 수 있다. 그렇기에 나의 가치가 모두에게 맞지 않고, 이러한 방법으로도 살 수 있구나 참고하는 정도로만 생각해 주기를 바랐다.


마지막 삶의 가치는 우리 대학원의 신조이기도 한, “네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라 (Ask what you can do)”이다. 다른 두 가치보다도 이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었다. 단순히 삶을 주어진 그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내가 만들어 나가는 것의 중요성. 항상 어느 조직에서 일을 하게 되든, 나는 일을 계속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주어진 일도 착실히 하지만, 일의 전반적인 흐름을 공부해서 내가 이 조직에서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어떠한 프로젝트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먼저 생각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늘려나간다. 물론, 일이 많아지면 체력적으로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한 번도 나의 이러한 가치를 후회한 적은 없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했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독특한 경험도 많이 쌓았고, 상사분들께서도 더 많은 기회를 주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일이 무엇인지, 내가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고민을 한 결과를 바탕으로 일을 하는 것이라서 나의 업무 효율이나 성과도 매우 높았다. 그렇기에 업무를 마냥 주어진 대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나만의 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의 힘을 무수히 많은 곳에서 느꼈다.

IMG_3564.jpeg 우리 대학원의 정식 명칭은 존 F. 케네디 공공정책대학원이다. 그래서 학교의 신조 역시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문에서 발췌하였다. 위 연설문 사진은 보스턴의 JFK 기념관에서 찍었다

학생들이 당장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의 유엔과 같은 동아리 활동이나 대외 활동에서도 이러한 점을 고민했으면 했다. 단순히 모의 유엔에 참가하는 것이 아니라, 동아리에 내가 어떠한 점을 이바지할 수 있을까도 생각해 봤으면 했다. 그리고 동아리를 운영하더라도, 그냥 주어진 동아리를 그대로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학생이 즐길 수 있게 하려면 어떠한 변화를 내가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으면 했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삶을 내가 만들어 나가게 되면,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매우 길게 남아있지만, 최소한 나의 대학 생활을 돌아보면 이러한 가치를 지킨 것이 나의 대학 이야기가 남들과는 조금 다른 특이한 경험으로 가득 찬 이야기가 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이 세 가지의 가치를 중심으로 나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강연의 내용이었다. 물론, 각 가치를 소개할 때마다, 이를 어떻게 학생들이 삶에 적용할 수 있을지 실천할 수 있는 활동에 관해서도 소개했다. 단순히 런던에서, 보스턴에서 공부한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실롱에 있는 학생들도 충분히 실천할 수 있는 가치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이렇게 강연 준비를 마치고 강연 당일이 왔다.


강연이 열리는 세인트 앤서니 대학교까지는 아니시가 직접 스쿠터를 타고 나를 데리러 왔다. 내가 있던 자이카 건물에서 대학까지 5분 내로 이동할 수 있기에,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고 안전하게 도착했다. 다만, 아니시가 주로 나처럼 덩치가 큰 사람을 태우는 경우는 없었다며, 무게 중심을 위해서 최대한 앞쪽으로 앉아달라는 이야기는 했다. 세인트 앤서니 대학의 건물은 우리 정부 청사와 비슷하게 분홍색으로 색이 칠해진 건물이 많았는데, 여전히 이 분홍색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는 알지 못한다. 분홍색이 정말 이곳저곳에 많이 쓰인다. 대학을 자세하게 둘러볼 시간은 없었지만, 아니시가 이동하면서 각 건물이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설명은 해주었다. 우리가 강연하는 건물은 인문대생들이 주로 쓰는 곳으로, 들어가면 입구에 큰 지구본이 자리 잡고 있다. 시간이 촉박해서 바로 교실로 갔는데, 이미 30여 명의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앉아 있다. (세인트 앤서니 대학은 실롱에서 거의 처음으로 학생들에게 교복을 입도록 한 대학 중 하나이다) 내가 들어서는 순간 다들 주섬주섬 일어나길래 당장 앉으라고 학생들에게 손짓했다. 예의를 차려주는 것은 고맙지만, 나도 아직 어린 학생으로서, 빨리 앉혀야 했다. 정부 청사에서는 더워서 다른 옷을 입고 있었기에, 옷을 잠시 갈아입고, 아니시의 소개를 시작으로 강연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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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앤서니 대학의 외부 전경. 모의 유엔팀 운영진인 걸어가고 있다. (좌) 대학 내부의 모습. 상경대의 포스터가 줄을 지어 서있다. (우)

지금 생각해 봐도 강연 내용은 잘 전달한 것 같다. 학생들도 중간중간 내 농담에 잘 반응해 주고, 최대한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려고 노력한 것이 잘 통했다. 학생들에게 나도 그렇게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사람이 아니니, 편하게 이야기하고, 편하게 질문하고, 편하게 연락하라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나의 나이를 알기 전에 나의 경험을 먼저 들으면, 거의 내가 28살이나 29살 정도로 느껴졌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게 나이가 많은 사람이 아니고 친구처럼 대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몇 번이고 강조했다. 인도는 학교 내에서 선생님과의 위계질서가 강하게 유지되고 있는 곳이기에, 내가 학생들에게 "선생님"이 아니라, 친구와 같이 느껴지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실롱에서 수업할 때도, 학생들이 선생님들이나 윗사람에게 질문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학생들이 질문을 못 했던 적이 있어서, 우리 대학원에 대해 농담하면서 학생들과의 거리를 줄이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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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앤서니 대학교 학생들에게 강연을 하고 있는 모습. 수 많은 발표를 살면서 해왔지만, 학생들에게 하는 강연은 여전히 느낌이 조금 다르다.

그래서 그런지 강연을 마치고 학생들 역시 질문을 많이 했다. 대학원 준비에 대해서, 국제관계학 경력에 대해서, 내가 경연에서 미처 설명하지 못한 부분까지 잘 짚어서 질문을 잘해줬다. 물론, 강연에 대한 후기는 질문 시간이 끝난 이후에 받았다. 교실을 빠져나가기 전에 많은 학생들이 따로 나에게 와서 정말 좋은 강연이었다고 이야기를 해주기도 하고, 정말 인상 깊었다며 추가 질문을 해준 친구들도 있었다. 이렇게까지 학생들이 잘 강연을 들어줘서 강연을 열심히 준비한 보람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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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시가 강연을 마친 나에게 세인트 앤서니 대학 스카프를 비롯한 선물을 주고 있다. (좌) 선물 증정식이 끝나고, 학생들과 다 같이 단체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우)

강연을 마치고는 세인트 앤서니 대학교 모의 유엔 동아리 운영진들과 간단히 차 한잔을 했다. 운영진들로부터 모의 유엔 동아리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듣고, 전반적으로 대학에서의 생활에 대해서도 들었다.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는 대학 내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 학교에서 정해진 일부 구역에서 통화를 하는 것을 제외하고, 휴대전화를 쓰는 것 자체가 금지되어있다고 한다. 오히려 노트북이나 태블릿은 수업 시간에 쓸 수 있는데, ㅎ대 전화는 안 된다고. 우리 학교에서도 노트북을 수업 시간에 쓰는 것을 지양하고 있기는 하지만, 노트북은 되지만 휴대전화는 안 되는 대학의 규정에 놀랐다. 그래서 친구끼리 모일 때도 고등학교와 같이 직접 이야기해야 한다고 한다.

IMG_4980.jpeg 세인트 앤서니 대학교 모의 유엔팀 운영진과 찻집에서 찍은 사진. 청사로 돌아가야 하는 게 아쉬울 정도로, 간식을 너무 많이 준비해 줬다.

차 마시는 시간을 마치고 나서도 아니시가 친절하게 인턴십 마무리 발표가 진행될 정부 청사 별관까지 태워줬다. 도로에서 잠시 내려주는 것이라서 자세한 인사는 깊게 인사는 못했지만, (나중에 영어로 이 글을 번역할 것을 염두에 두고) 이 자리를 빌려서 아니시와 세인트 앤서니 대학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덕분에 실롱에서 마지막까지 특별한 경험을 쌓았다. 올해는 짧은 강연이었지만, 미래에 다시 실롱에 돌아오게 된다면 또다시 대학에 가서 나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때가 온다면 최대한 하루를 통으로 비워서 학생들과도 운영진과도 더 길게 이야기하고, 대학도 조금 더 구경하고 싶다. 그날이 반드시 오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8월 17일에 아니시가 좋은 소식을 전해왔다. 8월 15일에서 17일 사이에 개최된 메갈라야 모의 유엔 회의 (Meghalaya Model UN Conference)에서 아니시가 이끄는 세인트 앤서니 대학교의 모의 유엔팀이 최우수 대표단(Best Delegation)으로 선정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니시에게 축하 문자를 보냈더니, 오히려 아니시가 여름 동안에 들었던 수업을 통해서 모의 유엔에 대해서 이해도가 훨씬 높아진 것과 대학의 학생들을 잘 가르쳐줘서 감사하다는 답을 보내왔다. 내가 한 역할은 매우 작은 부분이다. 나도 대학 모의 유엔팀을 이끌어 본 경험이 있기에, 얼마나 큰 노력을 쏟아부었을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모의 유엔에 썼을지 상상이 갔다. 그렇기에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 매우 기뻤다.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을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역할을 했다면, 세인트 앤서니 대학에서 나의 역할은 충분히 한 것 같다.

IMG_3918.PNG 나의 마지막 수업에서 세인트 앤서니 대학 학생들과 찍은 사진. 인연이라는 것은 참 흥미롭다. 7월 중순에 이 사진을 찍었을 때 내가 이들의 대학에 가서 강연할 것은 상상이나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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