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1 . 아빠의 길

by 김노리

본 소설은 인공지능 AI와 함께 작성되었습니다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고 아빠의 차에 올라탄 것은 밤 10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갓 글로벌 제약사에 이직해 MDS(골수형성이상증후군)라는 생소한 질병을 신입사원 교육으로 익혔던 나는, 내 담당 병원이 될 고신대병원이 할머니의 목적지가 된 것이 기묘한 운명처럼 느껴졌다. 무균병실과 주치의, 항암제... 내가 배운 화려한 의학 용어들이 할머니를 지켜줄 수 있을 거라는 서투른 자신감이 수치심과 뒤섞여 뒷좌석 할머니의 거친 숨소리에 얹혔다.


"아빠, 남해고속도로 타고 가다가 서부산 낙동강교 건너서 가실 거죠?"


창원에서 부산 송도로 향하는 가장 익숙하고 빠른 길. 나는 내 지리가 얼마나 빠삭한지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나즈막이 물었다. 하지만 아빠는 대답 대신 핸들을 꺾었다.


"새로 난 길 있다. 그 길로 가야 빠르다."


아빠는 평생 핸들을 잡고 전국을 누빈 트럭 운전사였다. 내비게이션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는 부산항 근처의 갓 뚫린 해안도로나 거가대교 근처의 우회로를 아빠는 손바닥 보듯 꿰고 있었다. 확실히 그 길은 이상할 정도로 차가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가로등 불빛만 점멸하는 새 도로는 오직 우리 차만을 위해 준비된 활주로 같았다.


하지만 이상했다. 차가 없으면 더 속도를 높여야 할 텐데, 아빠의 운전은 긴박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치 퇴근길 드라이브를 즐기는 사람처럼, 혹은 목적지에 너무 빨리 도착하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아빠의 발끝은 신중하다 못해 느긋했다.


'내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 그래. 아빠는 지금 뒤에 계신 할머니가 흔들릴까 봐 조심하시는 거야.'


애써 자책하며 창밖을 보았지만, 적막한 새 길 위로 흐르는 공기는 쎄한 냉기만을 머금고 있었다. 응급실에 도착해 인턴인지 레지던트인지 모를 젊은 의사가 할머니의 연명 치료를 권했을 때, 아빠의 선생님의 뜻을 잘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셨고 말로써 본인의 의사를 밝히셨다.


"됐습니다. 됐습니다.. 안 하셔도 됩니다."


평소 산에 누우나 병원에 누우나 똑같다던 아빠의 지론대로였다. 할머니는 그렇게 덤덤하게, 혹은 너무나 순식간에 세상을 떠났다. 훗날 이 결정은 아빠를 형제들 사이에서 '천인공노할 놈'으로 몰아넣는 시발점이 되었지만, 나를 끝까지 괴롭힌 건 그 비난이 아니었다.


차 하나 없던 그 한적한 새 길. 아빠가 굳이 그 길을 선택했던 이유. 긴박한 응급 상황에서 딸의 지리 지식을 누르고 굳이 '길부심'을 부리며 보여주려 했던 그 한적한 풍경.


그 길 위에서 아빠는 정말 할머니가 살기를 바랐을까. 아니면, 할머니가 조용히 잦아들 수 있는 가장 고요한 시간을 벌어준 것일까. 나는 지금도 그 밤 아빠가 선택한 그 길이, 할머니를 위한 마지막 배려였는지 아니면 침묵의 방조였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그날 밤, 내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던 그 텅 빈 도로의 서늘함만이 내 기억 속에 화인처럼 남아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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