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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응칠을 위하여. 하얼빈

독후감 #2

by 이로
<칼의 노래>, <하얼빈> 작가 김훈

처음 발간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김훈 작가의 작품을 탐독하며 그 문체에 매료된 상태였다. 작가가 연필로 써 내려간 문장 가닥들이 덕지덕지 엉겨 붙어 내 혼을 쥐어짜는 느낌은 마음 바닥, 그보다 더 낮은 곳에 자리 잡은 어떤 부채감을 수면 위로 계속해서 끌어올렸다. 마주한 내면은 인생이라는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동안에도 뜨겁게 회오리쳤다. 그리고 출간된 <하얼빈>까지 전부 읽었을 때, 나는 마음에 휘몰아치는 파도가 어디로 향하는지 깨달았다. 초가을 날씨였다.


작가는 독립운동가이기 이전에 청년 안중근의 정체성에 집중한다.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서방 유럽 열강에서 시작된 식민주의는 제국주의로 확장되어 그 세력을 동방까지 떨친다. 청의 아편전쟁 패배로 서양 열강이 침략을 시작한 이래, 일본은 탈아입구(脱亜入欧)를 표방하며 동양 평화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동양의 패권을 쥐려는 야욕을 드러낸다. 이에 앞장선 인물이 바로 이토 히로부미(1841~1909)다. 문명개화라고 허울 좋게 포장했지만, 일본이 대륙 진출을 하는 진짜 목적과 이토의 지배 이념은 누가 뭐래도 약육강식이었다.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침략해 착취한 것이 문명국가로 가는 길’이라는 시대 흐름이 바다를 거슬러 비로소 한반도에 발을 들이민 것이다. 약육강식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역사의 블랙홀에 한반도는 그 운명을 내맡기고 있었다.

청년 안중근은 물밀듯 밀려오는 시대 흐름에 홀로 의문을 품었다. 그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 항일 의병 활동에 가담했고, 마침내 해답을 찾았을 때 포수 안중근의 총구가 향하는 곳은 이토 히로부미의 심장이었다. 그래서 안중근이 찾은 곳은 이토를 연료 삼아 굴러가는 시대의 활로를 끊을 마지막 교차로, 바로 하얼빈 역이었다. ‘이토의 작용’이 만든 세상, 즉 야만의 시대에 온몸으로 맞서 거절하기 위해서였다.


정치 인류학자 클라스트르(Pierre Clastres, 1945~1977)

정치 인류학자 클라스트르(Pierre Clastres, 1945~1977)의 연구에 따르면 인디언 어느 부족 사회에선 사람이 일정 나이가 되면 서로 가슴에 흉터를 새기는 ‘성인식’을 행한다고 한다. 함께 고통을 견디는 경험을 통해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고, 그 누구도 지배하지 않는 공동체를 만들어 영속하는 평화와 자유 사회를 실현하자는 의미다.


나는 마찬가지로 향년 30세, 이립(而立)에 든 안중근의 거사는 일종의 성인식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애국심만으로 대의를 이뤘다 생각하지 않는다. 안중근은 한반도에 부는 찬바람을 함께 맞는 동지들을 사랑했고, 민족이라는 공동체를 사랑했다. 나아가 세계 시민의 자유와 인류를 사랑했다. 그렇게 사랑이 가득한 젊은이가 어떻게 같은 고통에 시름하는 한민족, 우리를 기만할 수 있을까? 가당치 않다.

일본 제국주의가 표방한 ‘동양 평화‘와 안중근이 재판에서 화두로 내세운 ‘동양 평화’는 그 뜻이 완전히 다르다. 안중근은 모든 국가가 자주독립을 한 상태를 진정한 평화라고 주장했다. 명백하고 고결한 정치 신념이다.

하기야 아시아의 정체성을 부정한 일본이 어떻게 동양을 평화롭게 한단 말인가. 어불성설이다.


안중근은 당대 누구보다 영민하고, 자주독립에 대한 열망은 그가 겨눈 총구보다 더 뜨거웠다. 마침내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청년 안중근은 ‘이토의 작용’을 멈추고 역사를 관통하는 진정한 성인(成人)이 된 것이다. 그리고 자주와 평화를 향해 먼저 건너간 자의 의거는 우리 민족에게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을 심었다.


한국사에서 독립투사의 대표로 기억되는 도마 안중근(安重根, 1879~1910)의 아명은 안응칠(安應七)이다. 등에 7개의 점이 별처럼 자리 잡고 있어 지어진 이름이란다. 정말 심장에 북극성을 가지고 있던 탓일까? 그토록 시름하던 역사 소용돌이 속에서 그를 꿋꿋이 작용하게 한 강한 몸과 정신, 그리고 영혼은 어디서 온단 말인가?


북두칠성을 가슴에 품고 자라, 홀로 나아가야 했던 안응칠의 어린 혼을 위로하고 싶었다. 그 이름이 주는 천진함이 좋았다. 파란 하늘 아래 그보다 더 푸른 초원에서 아이들이 그저 함께 놀기 위해 놀고 있는 풍경을 떠올린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풀 위를 뒹굴며 동네 친구들과 눈 맞추고, 뛰노는 천진한 한 아이의 모습. 아이가 올려다본 해질녘 하늘에는 7개 별이 반짝이고 있다.

훗날, 이 아이는 누구보다 크게 자라 민족의 한을 기꺼이 짊어지는 고매한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스무 살이 된 후, 인간의 존엄은 자유에서 온다고 배웠기 때문에 남 눈치 보지 않고 나만의 진정한 욕망을 찾기 위해 충실히 살았다. 따라서 수많은 경쟁을 했고, 하고 싶으면 했고 가고 싶으면 갔다. 허세를 부리고 끊임없이 소비했다. 필요가 마땅치 않으면 거침없이 끊어 냈으며, 홀로 가는 인생에 거침없고 즐거웠다. 그러나 어쩐지 구슬펐다.


불현듯 세계에 대한 물음과 자신만의 답을 찾아 투쟁하는 안중근의 모습을 보니 이런 내 존재가 지나치게 가볍게 느껴졌다. 인생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시기가 어김없이 찾아온 것이다. 내 구슬픈 욕망 끝에 남은 것은 공허뿐이라. 나 홀로 자유로운 게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책을 읽는 내내 느낀 부채감이 무언지 깨달았다. 한번 깨치고 나니 얼마나 외로운지. 안응칠도 그랬을까. 가을장마처럼 며칠 내내 울었다. 울다 보니 계속해서 울었다. 책을 통해 만난 안중근의 찬란한 청춘을 마주하며. 내 비루한 젊음을 직면하며.


내가 자유롭다 배운 것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에 몸을 싣고, 가속해서 계속 달리는 공포에서 느끼는 저열한 쾌감과 맞닿아 있었다. 밤에 불을 켠 집어등을 향해 내달리는 오징어 같은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우습다. 부끄럽다.


이윽고 비 온 뒤 하늘처럼, 흐리멍덩한 머리는 개운해졌다. 몇 가지 물음만이 남았다. 안중근이 온몸으로 거부한 시대를 살고 있는 내가 진정 자유로운가?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내 안에 이토는 죽었는가.


처음부터 줄곧 소용돌이치는 파도 같은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겠다.

이제야 바로 뜬 눈앞에 놓인, 실낱같은 희망 빛을 느낀다. 안중근에게 밝아오던 영혼의 새벽이 뭔지 알 것만도 같았다. 내내 밀려온 먹먹한 감정의 정체는 약육강식 세계를 살아가며 들들 볶이던 내 청춘의 울부짖음 이리라.


어쩌면 그동안 나는 갈 곳 없는 분노에 시달리는 응석받이였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할 꿈은 껍데기뿐이다. 내 안에 최소한의 야만만 남기고 싶었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 가는 공동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 나는 스스로 어른이 되기로 했다. 다시 살기로 했다.


안중근이 거부했던 지금의 약육강식 세계에선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 약한 자는 스스로 지배에 복속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갈수록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승자독식 세상이 되어가는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의 20퍼센트가 생산을 독점하여 나머지 80퍼센트는 빈곤에 시달리고 있으니 이 얼마나 공허하기 그지없나.


현재 지구는 무리한 세계화로 인해 이상기후와 오염, 그리고 전염병과 전쟁을 겪으며 우리에게 이전과 다르게 살기를 권고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정신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그에 앞서 우리는 절망과 파괴의 역사 속, 끊임없이 함께 의지하고 저항했던 우리 조상들의 선명한 의지를 등불처럼 이어받을 필요가 있다. 이 꺼지지 않는 불꽃에 반드시 대안이 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이 안중근 의사를, 청년 안응칠을 한낱 한 나라의 독립투사로만 한정 짓지 않기를 바란다. 약육강식과 야만의 시대가 아니라 누구도 지배당하지 않고, 지배하지도 않는 진정한 자유와 평화의 시대를 꿈꾼 안중근은, 우리 인류가 나아갈 방향을 누구보다 먼저 알고 신호탄을 당긴 사람이다. 밤하늘에 빛나는 북극성처럼, 훗날 인류가 올바르게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좇아야 할 이름이다.


지금도 안중근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 안에 이토는 죽었는가? 이토는 죽었는가.


안중근(안응칠) (1879~1910)



움직이는 화랑 <비껴서기> 운영 |

코스미안뉴스 인문 칼럼니스트

브런치 작가

bkksg.com

bkksg.studio@gmail.com

_이로 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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