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21
이미 초토화된 전장(戰場)은
오로지 회색 대지만이 건조한 눈앞에 뻗어 있다
풀 한 포기조차 숨을 내뱉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피를 뒤집어쓴 한 사내가 어디선가 튀어나와
나를 몰아치듯 밀쳐 단 숨에 제압하고는
내 목 언저리를 날이 선 칼로 겨눈다
오, 하늘이여 당장 답하여 다오!
이 세상 당신만이
색깔을 뒤집어쓴 채 우리 머리 위에 있지 않는가?
순간 그의 목구멍에선
하얀 새가 날개를 펴고 튕겨 나왔다
반짝이는 깃털 사이로 지옥 같은 동공이 요동친다
휘날리는 깃털들이 칼에 매달려 벌겋게 파인 눈을 가려
쉴 새 없이 그의 눈깔을 휘젓는다
곧이어 그는 새를 끌어내리기 위해
내게 겨눈 칼을 거두고
고꾸라져 몸서리치다 도리어 제 눈을 스스로 찌른다
눈앞엔 온통, 붉은색이 차오른다
나는 승리했다.
움직이는 화랑 <비껴서기> 운영 |
코스미안뉴스 인문 칼럼니스트
브런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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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이로 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