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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로 Mar 19. 2024

[칼럼] 우연한 세계

칼럼 또는 에세이 #12

저명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 1934~1996)은 '우리는 모두 별의 아이들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은 참 낭만적이면서 동시에 과학적으로 사실이다. 지구에 존재하는 광물과 생물은 모두 우주 별의 폭발로 인한 성분에 기원하기 때문이다. 그런 지구에선 판게아가 쪼개져 우연히 5개의 대륙과 6개의 대양을 이뤘고 판과 판이 움직여 산맥을 만들고, 강이 흐르도록 했다. 그런 산맥과 강을 기점으로 우연히 인류가 정착해 문명이 발생했고 국경이 그어졌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아주 먼 옛날 우연히 바다에 살던 한 생물이 뭍으로 올라왔으며 진화를 거듭해 인류를 이뤘고, 그들은 우연히 나무에 열린 열매를 먹고 생존했으며 오랜 시간이 지나 그 열매가 우연히 떨어진 것을 본 한 인간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해 지금까지에 이르렀다. 놀랍지만 이 모든 게 우연의 결과다.


현대를 대표하는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는 이러한 우연의 현상을 ‘주름’이라고 얘기한 바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개체는 주름으로 이뤄진 다중체(multiplicity)이며, 이 주름은 하나같이 모양이 다르고 배치가 다른 상태, 즉 아장스망(agencement)이라 정의한다. 산과 계곡을 예를 들면 쉽다. 세계 어디를 가도 그 지역 땅이 융기하고 침강해 만들어낸 산과 계곡의 배치는 모두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들뢰즈는 이 세계에 일어나는 모든 창조와 생성을 주름의 작용이라 정의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이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나이를 들면 얼굴에 주름이 지곤 하는데, 그 사람이 주로 짓던 표정과 자주 사용한 얼굴 근육에 따라 모양 짓는 주름의 배치가 각기 다르다. 그래서 작가 발자크(Honore de Balzac, 1799~1850)는 ‘사람의 얼굴은 풍경’이라는 재밌는 말을 남겼는지도 모르겠다.


이는 물질에만 제한된 관점이 아니다. 우연히 사건과 사건이 만나 생각지도 못한 것을 우연히 마주할 때, 그러니까 우연히 들른 빵집에서 산 크림빵과 타르트가 우연히도 정말 달콤하고 맛있을 때 밀려오는 기쁨과 상쾌함도 들뢰즈가 말한 창조적 활동이자 생성 작용이라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창조와 생성을 몸소 경험하고 스스로를 새롭게 배치하고 있다.


봄은 ‘찾아온다.’라고 표현하곤 한다. 겨울같이 정체된 내 삶에, 우연히 찾아오는 새싹 같은 손님을 떠올리며 그리는 설렘 때문 아니겠는가. 물론 살면서 예상하고 가늠하는 일도 필요하다. 인간은 알지 못하면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는 존재니까. 불안한 미래, 불안한 상대의 속마음을 가늠하기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나아가 무기력과 우울함에 시달리곤 한다. 그러나 우연히 다가오는 타인과 사건에 너무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애초에 우린 모두 여기 우연히 왔다 가는 존재니까.


그러니 좀 더 가볍고 유쾌하게 마음을 먹어보는 게 어떨까. 우리에게 설렘과 새로움은 모두 봄처럼 우연히 찾아오는 것이다. 예측할 수 있는 운명은 사후확증 편향적 관념일지 모른다. 그러니 당장에 답을 알 수 없고, 당장 확실하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해보는 것이다. 지나간 일에 대한 자책과 후회는 잠시 가슴에 묻어두자. 그러면 어느 날 새바람 불어오듯 우연이, 뜻밖에 내게 찾아와 새로운 계절로 가는 길을 열어 줄지 모르니.


이 우연한 세계에 우리는 오늘도 별처럼 살아있다. 그렇게 살아남아 당신에게 이 글을 보내는 일조차 빛나는 일이다. 그래서 이 하루가 더 소중하다. 세상은 정말 기적으로 가득 차 있지 않은가? 이 얼마나 찬란한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저 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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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미안뉴스 인문 칼럼니스트

브런치 작가

bkksg.com

bkksg.studi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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