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또는 에세이 #11
내가 글 쓸 때 최대한 신경 쓰는 부분은 쓸 거보다 쓰지 말아야 할 말을 안 쓰는 일이다. 불필요한 품사 지우기로 시작해 동어 반복이나 분명하지 않은 표현을 제거하는 등, 방식은 때에 따라 다양하고 변화무쌍하다. 글에서 풍기는 맵시와 여운을 만들기 위함인데, 이야기 흐름에 따라 조명을 인물에게 비추는 연극 연출과도 비슷하다. 괜히 쓰는 일은 글 내에 소음을 만든다.
생략과 호흡이 중요한 시(時)를 쓰다 보니 생긴 버릇이지만 다른 형식으로 쓸 때도, 글이 뻗어나가는 모양새를 깔끔히 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이러한 ‘글 고치기’ 과정에서 가장 고려해야 할 점은 읽는 이에 대한, 그러니까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다. 형식을 넘어 글은 결국 사람과 사람을 잇는 매체이자, 나와 또 다른 사람을 만나러 가는 산책길이니까. 그리고 여전히 사람과 사람 사이에 중요한 건 결국 신뢰다.
그래서 글쓴이는 읽는 사람을 먼저 믿고 써야 한다. 추상적 표현과 주관적인 감정을 쓸 때조차, ‘이해 못 하면 어쩌지.’라는 노심초사 때문에 구구절절 말을 늘리는 것보다, 읽는 이를 믿고 쓸 말만 남기고 세련되게 비워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흔히 알려진 동양화의 '여백의 미'도 같은 이치다. 그림에서 구도를 짤 때, 일부러 한쪽을 비워 보는 이로 하여금 제 생각과 감정을 채울 수 있는 시공간을 마련하는 일.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다. 드럼 박자를 일부러 비워내 선율에 긴장과 이완을 만들어 다른 악기와 소리가 섞일 수 있도록 해야 그 음악의 맛이 사는 법.
그렇게 서로를 생각하는 배려와 마음씨가 작품에 녹아들어 여유와 풍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물론 호흡이 긴 글을 폄훼하는 건 아니다. 쓰는 목적에 부합한다면 그 역시 중요한 ‘신뢰 쌓기’다.
예로부터 매체가 발달하면 그에 따라 내용을 만드는 방식도 달라지기 마련인데, 최근 디지털 기술이 발달해 매체에 노출이 많아진 만큼, 디지털 읽기 능력보다 쓰기의 중요성은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고로 기존 글쓰기에 대한 형식과 내용도, 디지털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독자들과 신뢰를 쌓기 위한 새로운 접근 방식과 실험이 필요해 보인다.
그래서 나도 최근에 X(구 트위터)라는 SNS를 시작했다. 이 서비스는 한 게시물을 300자 이내로 써야 한다는 재미있는 특징을 가졌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최대한 줄여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그런데 이게 오히려 디지털 매체에 맞는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 또한 글을 올리는 대로 바로 반응을 알 수 있는 시스템을 통해 글 쓴 사람과 읽는 사람의 심리적 거리가 그만큼 가까워졌다. 정확한 정보 전달과 분명한 의미를 전달하는 것 이외에도, 적절한 어휘 선택과 생략을 활용해 독자를 배려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이렇게 독자와 신뢰를 쌓고 호흡을 맞추어 나가다 보면, 글에선 내 특유의 필체와 맵시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 자신감으로 또 다른 넓은 세상을 글로 엮는 원동력을 얻을 수도 있다. 그때부터 내 글에선 읽고 쓰는 이가 모두, 함께 길을 나서는 동무가 된다. 최근엔 글과 이미지를 적절히 활용한 멀티미디어 콘텐츠들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결국 모든 게 사람이 하는 일이다. 인간에 대한 배려와 성찰, 그리고 신뢰 없이는 그 무엇도 해낼 수 없다.
움직이는 화랑 <비껴서기> 운영 |
코스미안뉴스 인문 칼럼니스트
브런치 작가
bkksg.com
bkksg.studio@gmail.com
_이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