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아빤 가장 담배를 많이 태웠던 날들이었다.
우리 가족은 양계장 옆 작은 '창고'에서 살았다. 집이라기보다는 창고에 벽지를 붙이고 장판을 깔아서 만든 공간에 몸을 뉘였다는 말이 맞겠다.
푸드덕 푸드덕- 거리는 닭소리와 퀘퀘한 닭똥냄새가 그 공간에 스며들어 빠지지 않았다.
아빠, 엄마, 나 그리고 남동생이 일자로 누우면 끝나는 작은 공간. 나는 너무나도 어렸고 겁이 많았기에 가족 모두가 한 곳에서 잠을 잔다는 사실이 그저 마냥 좋았다. 옆을 돌면 엄마가 옆을 돌면 동생이 그리고 아빠가 한 곳에 있다는 사실이 어린 나에겐 그렇게나 안심이 됐었다.
그때 아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닭이 살고 있는 양계장보다 더 작은 곳에서 가족을 지내게 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들었을까.
당장 내일은 어떻게 하지라는 고민과 걱정에 매일 밤을 힘들어했을까.
지금의 상황이 너무 힘이 들어 남몰래 혼자 눈물을 훔쳤을까.
아빠는 나와 내 동생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 힘들다는 말도 어깨가 무겁다는 말도. 그때 너무나도 행복해했던 내가 아빠한테 할 수 있었던 건, 그저 동생과 함께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라는 노래를 부르는 것 외엔 없었다.
우리 집엔 초가 많았다. 한 열개쯤 되었을 거다. 집에 초가 많았던 이유는 그 '창고 집'이 비만 오면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하면 엄마는 초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러면 곧 '창고 집'에 하나밖에 없는 형광등이 팟-하고 꺼졌다.
나는 어둠 속에서 촛불을 켜고 있는 게 꼭 불장난하는 것 마냥 재미있어 그 좁은 방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러다 심심해지면 공깃돌을 가져와 엄마랑 공기놀이를 했다. 어둠 속 살짝살짝 촛불 빛에 비치는 공깃돌을 만지작 거리며, 공기놀이가 어찌나 재미있는지 꺄르르- 웃으며 기뻐했다.
그러면 아빠는 아무 말 없이 담배를 가지고 양계장 옆 처마에 서서 행복하게 웃고 있는 나를 바라봤다. 비바람 치는 밖은 언제나 아빠의 몫이었다. 밖에서 담배연기와 함께 한숨이 섞여나오고 있다는 걸 어린 날의 나는 알지 못했다. 만약 그때 내가 좀 더 커서 아빠의 심정을 알았더라면 달랐을까. 아마 내가 아빠의 마음을 알아채 아빠의 눈물을 보았더라도, 아빠는 내게 일렁이는 촛불 때문에 아빠의 눈이 흐릿하게 보이는 거라고 말할 사람이었다.
사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이제는 담배를 더 이상 피지 않는 지금의 아빠도 여전하다. 오늘 하루에 힘들었던 일들도 속상했던 일들도 늘 내게는 표현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이제 너무나 커버린 나는 아빠의 힘듦이, 아빠의 어깨 위에 올려진 짐이 얼마나 무거운지 알고 있다. 아빠를 위로해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나는 어린날의 나보다 못하다. 어릴 땐 그저 행복한 모습만 보여드렸는데 이제는 내 일에 내 삶에 내가 더 힘들어하는 모습만 보이고, 아빠 힘내!라는 응원하나 입 밖으로 꺼내는 게 나이를 먹으면서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제 집에 내려갈 때마다 아빠를 꼭 안고 어린 날에 내가 위로하지 못했던 담배 쟁이 아빠도, 아직도 딸에겐 힘든 일 하나 말하지 않는 지금의 아빠도, 그리고 또 우리 아빠와 비슷한 누군가의 아빠도 위로하고 싶다.
아빠 고마워. 아빠 사랑해. 아빠! 힘내세요! 아빠 딸이 있잖아!라고 글로, 그리고 말로 위로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