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몽블 Jul 13. 2016

아빠, 때론 누군가를 위로하며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아빤 가장 담배를 많이 태웠던 날들이었다.


우리 가족은 양계장 옆 작은 '창고'에서 살았다. 집이라기보다는 창고에 벽지를 붙이고 장판을 깔아서 만든 공간에 몸을 뉘였다는 말이 맞겠다.


푸드덕 푸드덕- 거리는 닭소리와 퀘퀘한 닭똥냄새가 그 공간에 스며들어 빠지지 않았다.

아빠, 엄마, 나 그리고 남동생이 일자로 누우면 끝나는 작은 공간. 나는 너무나도 어렸고 겁이 많았기에 가족 모두가 한 곳에서 잠을 잔다는 사실이 그저 마냥 좋았다. 옆을 돌면 엄마가 옆을 돌면 동생이 그리고 아빠가 한 곳에 있다는 사실이 어린 나에겐 그렇게나 안심이 됐었다.


그때 아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닭이 살고 있는 양계장보다 더 작은 곳에서 가족을 지내게 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들었을까.

당장 내일은 어떻게 하지라는 고민과 걱정에 매일 밤을 힘들어했을까.

지금의 상황이 너무 힘이 들어 남몰래 혼자 눈물을 훔쳤을까.


아빠는 나와 내 동생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 힘들다는 말도 어깨가 무겁다는 말도. 그때 너무나도 행복해했던 내가 아빠한테 할 수 있었던 건, 그저 동생과 함께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라는 노래를 부르는 것 외엔 없었다.

탄자니아, Zanzibar Urban, 잔지바르 / photographer. 이진혁

우리 집엔 초가 많았다. 한 열개쯤 되었을 거다. 집에 초가 많았던 이유는 그 '창고 집'이 비만 오면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하면 엄마는 초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러면 곧 '창고 집'에 하나밖에 없는 형광등이 팟-하고 꺼졌다.


나는 어둠 속에서 촛불을 켜고 있는 게 꼭 불장난하는 것 마냥 재미있어 그 좁은 방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러다 심심해지면 공깃돌을 가져와 엄마랑 공기놀이를 했다. 어둠 속 살짝살짝 촛불 빛에 비치는 공깃돌을 만지작 거리며, 공기놀이가 어찌나 재미있는지 꺄르르- 웃으며 기뻐했다.


그러면 아빠는 아무 말 없이 담배를 가지고 양계장 옆 처마에 서서 행복하게 웃고 있는 나를 바라봤다. 비바람 치는 밖은 언제나 아빠의 몫이었다. 밖에서 담배연기와 함께 한숨이 섞여나오고 있다는 걸 어린 날의 나는 알지 못했다. 만약 그때 내가 좀 더 커서 아빠의 심정을 알았더라면 달랐을까. 아마 내가 아빠의 마음을 알아채 아빠의 눈물을 보았더라도, 아빠는 내게 일렁이는 촛불 때문에 아빠의 눈이 흐릿하게 보이는 거라고 말할 사람이었다.

탄자니아, Zanzibar Urban, 잔지바르 /  photographer. 이진혁

사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이제는 담배를 더 이상 피지 않는 지금의 아빠도 여전하다. 오늘 하루에 힘들었던 일들도 속상했던 일들도 늘 내게는 표현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이제 너무나 커버린 나는 아빠의 힘듦이, 아빠의 어깨 위에 올려진 짐이 얼마나 무거운지 알고 있다. 아빠를 위로해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나는 어린날의 나보다 못하다. 어릴 땐 그저 행복한 모습만 보여드렸는데 이제는 내 일에 내 삶에 내가 더 힘들어하는 모습만 보이고, 아빠 힘내!라는 응원하나 입 밖으로 꺼내는 게 나이를 먹으면서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제 집에 내려갈 때마다 아빠를 꼭 안고 어린 날에 내가 위로하지 못했던 담배 쟁이 아빠도, 아직도 딸에겐 힘든 일 하나 말하지 않는 지금의 아빠도, 그리고 또 우리 아빠와 비슷한 누군가의 아빠도 위로하고 싶다.


아빠 고마워. 아빠 사랑해. 아빠! 힘내세요! 아빠 딸이 있잖아!라고 글로, 그리고 말로 위로해주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작년에 받았던 커피나무는 잘 자라고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