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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몽블 Aug 24. 2016

한잔의 커피만 있으면 시작될 수 있었던 우리의 관계들

늘 가는 카페가 있었다.

집 근처에서 어떤 음식을 먹던 후식으로는 그 카페에 들러 음료를 마셨다. 왜 그곳에서만 먹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음료가 맛있었고, 카페 언니가 친절했으며, 나의 유형이 C형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겠다.


나는 사람들을 크게 A형, B형, C형으로 구분 지었다. 

A형은 트렌드 세터로, 새로운 기기나 유행하는 옷들을 먼저 구입하고 사용하는 사람들로 원하는 것에 돈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다. 


B형은 유행을 따라가지만 이것저것 가격을 비교해 보고 가장 적절한 때에 적당한 가격으로 물건을 구입하고 유행을 따르는 타입이다. 


마지막으로 C형은 늘 같은 곳, 같은 음식을 추구하며 한 번 마음에 들면 웬만에서는 잘 바꾸지 않는 사람들이다.


나는 유형 C형이다.


늘 그 카페에 갔고, 늘 같은 음료를 마셨고, 자리가 허락된다면 늘 같은 자리에 앉았다. 그 카페에는 고등학교 친구와 방문한 적도 있고, 대학 선배와 들렀던 적도 있으며, 남동생을 데리고 갔고, 전 남자 친구와도 갔었고, 회사 동료랑도 가고, 집에 놀러 왔던 친구들을 끌고 갔던 적도 있고, 혼자서도 잘 들렀다. 매일 그 카페 앞을 지나갔고 일주일에 3번 정도는 방문할 정도로 그곳을 애정 했다.


커피를 유난히 좋아하는 나였지만, 그 카페에서는 늘 청포도 주스 아니면 자몽주스를 마셨다. 매번 갈 때마다 청포도와 자몽 사이에서 고민을 했지만 보통 대부분 청포도를 마셨다.


청포도 주스에 물을 섞지 않고 달달구리한 시럽을 조금 넣어 만든 주스는 걸쭉하게 갈려진 포도를 목에서 넘길 때 참 좋았다. 상큼한 맛과 향이 입안으로 들어올 땐 내 기분 또한 상콤해졌다. 


날카롭고 예민한 내가 그 카페에서 좋은 기분으로 좋은 음료와 좋은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 여낙낙해졌다.


그래서 그곳을 사랑했고, 내 앞에 앉은 이들과의 수다를 사랑했다.


어느 날, 갑자기 카페가 사라졌다. 단골이었던 나도 카페가 사라지는 날 딱 하루 전에 그 소식을 들었다. 카페 언니도 갑작스럽게 건물주로 인해 문을 닫는다고 했다. 다른 곳 오픈을 하게 되면 연락을 달라고 연락처를 남겼다. 그렇게 다음날 카페가 없어졌다. 




카페가 있을 땐 시간이 허락될 때마다 지인들을 불러 그곳에 갔었다. 하지만 그렇게 카페가 사라지고 나서 나는 이상하게도 오롯이 누군가와 공유되지 않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졌다. 


아무도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온다. 일상에 지치고 그냥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 일과 사람에 힘들고 지칠 때. 


2년간 내 삶에 스며들었던 집 근처 카페가 사라질 때처럼, 한순간에 먼지처럼 사라지고 싶은 그런 날이 온다.


"그냥 모른 척 지나쳐 주세요" 그렇게 원하다가도 

"나 좀 바라봐 주세요, 나 이렇게 힘들어요" 하는 양쪽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빙빙 도는 안부 전하고, 별 영양가 없는 수다 떨고 집에 돌아오면 기가 빨리고 피곤하기만 한 만남. 그래서 사람 만나는 게 에너지 소모처럼 느껴지고, 예전만큼 재미도 없고. 그러니 외로우면서도 점점 사람을 피하게 되는. 


카페가 사리지고 난 뒤부터 나에게 생긴 

병이자면 병이었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더니 혼자만의 시간을 원하는 나에게 모든 이와의 관계가 조금씩 흐려졌다. 친한 친구들, 사랑하는 남자, 가까웠던 회사 동료, 나를 챙겨주는 모든 이들에게서 나는 흐릿해졌다. 


현재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음에도. 

한편으로는 한순간에 카페가 없어진 것처럼 

내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모든 이들에게서 내 존재가 사라질까 두려웠다.



그 자리에 새로운 카페가 생겼다. 

아직 누군가와 같이 가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곳에서의 커피 한잔은 좋은 사람들과 수다와 함께 했으면 좋겠다. 


다시 수다가 그리워지는 지금, 나에게는 보석 같은 커피 한잔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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