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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백수 방쿤 Sep 26. 2018

술 마시러 니가타에 갔다

111종의 술을 골라 마실 수 있는 '폰슈칸(ぽんしゅ館)' 탐방기

※ 2018년 9월 19일 탐방기로 방문 시기에 따라 내용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본 탐방기는 미성년자에게는 적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술 먹기 딱 좋은 아침이라 숙소에서 한 잔 하고 나섰다.

- 니가타는 쌀로 유명한 고장이다. 그 때문인지 우리나라의 쌀 명산지인 경기도 여주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곳이기도 하다. 쌀이 유명하면 밥도 맛있지만, 그 쌀로 빚은 술 역시도 맛난 법. 그렇기에 니가타는 예로부터 맛있는 술을 빚는 양조장으로도 유명한 지역이다. 간밤에 타레카츠/특제돈카츠에 이어 이자카야에서 한 잔 하고 온 바람에 숙취와 포만감으로 더부룩했지만, 오타이산을 털어 넣고 미리 시동을 건다. 숙소는 니가타역 바로 앞의 라마다 호텔로, 타 지역의 라마다 호텔의 반의 반값 정도에 불과했다. 시골의 장점이 이런건가 싶다.

- 체크아웃 시간은 11시, 도쿄로 떠나는 기차는 11:19. 부지런히 다녀오면 가볍게 술 마시고 올 수 있겠다, 싶은 마음으로 호텔에서 폰슈칸으로 나섰다. 폰슈칸은 지역특성화 시설 답게 니가타역사와 붙어 있는 쇼핑몰 3층에 마련되어 있었다. 지도를 보면서 찾아도 다소 헷갈릴 수 있어서 가는 길의 사진을 몇 장 담아왔다.

라마다 호텔이 있는 '반다이 출구'쪽 계단으로 올라가서 왼쪽으로 직진하면 왼쪽에 있다.
이 아저씨를 만나면 성공! (오른쪽 아저씨)

- 지도만 보고 찾아가기에는 다소 난해해서 직접 가본 경로와 확인 된 위치 지도를 첨부했다. 반다이 출구 오른편에 나 있는 계단을 올라 > 왼편 통로를 따라 직진 > 쭉 가다가 왼편에 술 취한 아저씨 상이 서 있는 가게를 찾으면 된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벌써부터 범상찮은 기운이 물씬.

저 자판기 하나하나가 모두 니가타의 명주를 담고 있는 술통인 셈
현재 놓여진 모든 술들이 니가타에서만 나온다는 지도

- 폰슈칸을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풍경은 넓게 펼쳐진 철제 자판기들이다. 3개씩 37열, 총 111종의 니가타 명주들이 각각의 통에 들어 있다. 그럼 술이 이렇게 많은데 안주는 무엇으로 마시느냐? 술 고유의 맛을 즐기기 위해 폰슈칸에서는 특이한 안주를 내세우는데, 바로 오이소금이다. 

니가타에서 직접 키운 오이는 100엔, 여러종의 소금은 무료로 즐길 수 있다
오이에 소금을 가볍게 쳐서 조금씩 먹어가며 맛을 즐겼다.

- 오이는 작지만 실하며 잡맛이 전혀 없다. 가끔 오이를 먹다보면 쓴맛이 진하게 올라와 식욕을 증발 시키는 종류가 왕왕 있는데, 이 오이는 맑은 수분과 약간의 고소함이 아삭한 식감 안에 어우러져 술맛을 해치지 않고 기분 좋게 씻어 내려줬다. 술의 종류 만큼이나 소금의 종류 역시 다양하여 놀랐다. 소금의 입자감/풍미/색 등 다양한 종류를 고려 해 가면서 폰슈칸의 111종 니혼슈와 페어링 하면 사실상 무한대의 즐거움을 만끽 할 수 있을듯 하다. 오이를 드시지 못하는 분들은 물 한 병 정도를 챙기심을 권장한다. 폰슈칸 안에도 식수는 마련되어 있다.

 

- 각각의 술이 엄밀히 따지면 가격과 특성이 모두 다를텐데, 다행히 폰슈칸에서는 그러한 선택적 고민을 없앨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다. 바로 환전이다.

500엔 = 잔 렌탈 + 코인 5개

- 폰슈칸의 환율은 매우 심플하다. 다섯 잔에 500엔이다. 잔이 예뻐서 같이 주나 싶었지만 렌탈 방식이라 다 마시면 놓고 가야 하는 부분은 아쉽다. 이 시스템에 대해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한데 명확히 룰을 짚고 넘어가자면 다음과 같다.


1. 500엔을 잔 하나와 코인 다섯개로 바꿔 줄 뿐이다.

2. 100엔으로 코인 하나 교환은 불가능. 500엔과 다섯개가 유일한 교환 방식.

3. 한 번 바꾼 코인은 폰슈칸에서 쓰고 나가지 않으면 재환전 불가.


- 한 잔에는 25cc 정도가 나오며, 500엔으로 다섯 잔이니 500엔으로 술을 125ml 정도 즐길 수 있는 셈이다. 주종과는 무관하므로 폰슈칸을 즐기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미리 밖에서 비싼 술이 뭔지 체크 한 후, 그 술만 주구장창 마셔대는 것이다. 어쩌면 사 마시는 것 보다는 쌀 수 있으니까. 다른 하나는 하나 하나 수치를 메모 해 가면서 내게 맞는 사케의 특성은 무엇인지 알아가는 것이다. 나는 후자 쪽으로 즐겨 보았다.


방쿤이 맛본 10종의 니가타 니혼슈
코인을 넣고 노란 버튼을 나오면 한 잔이 나온다

- 자판기 밑에 홈이 파여져 있어서 잔을 정확한 위치에 놓을 수 있다. 행여 잘못 따를까 걱정 할 필요는 없다. 처음에는 서너잔 정도 마셔보는데, 그 취향을 명확하게 맞춰 나갈 필요가 있다. 총을 쏘기 전에 영점 조절을 하듯, 내가 원하는 맛의 방향이 어느쪽인지 미리 짚어보는 셈이다. 자판기에 붙어 있는 표를 찍어서 간단하게 어떤 것을 다루는지 적어보았는데, 모두를 알 필요도 없다. 사진과 함께 설명을 드린다.

사실 스스로가 일본어/한자를 잘 못해서 필요한 부분만 읽었다

- 무엇보다 중요한, 숫자만 보고도 맛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은 니혼슈도/산도 두 가지다. 니혼슈도가 높을수록 드라이/날카로운 맛이 강하며 니혼슈도가 낮을수록 소프트함/단맛이 강하다. 그렇기에 일단 산도가 일정한 두 잔의 술을 기준으로 니혼슈도가 +/-로 명확한 두 잔의 술을 구분하면 내가 원하는 방향이 니혼슈도 +인지 -인지가 가늠이 될 것이다. 내 기준에서는 명확히 -, 소프트한 쪽이 마음에 들었다. 


- 본인이 원하는 니혼슈도 측정이 끝나면 다음으로는 산도 측정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새콤달콤한 술이 좋은지, 아니면 달달하면서도 스무스하게 들어가는 술이 좋은지 가르는 기준이다. 그 다음으로 봐야 할 것이 정미율과 사용한 쌀의 종류인데, 사실 이 정도까지 가려가며 마시기에는 만만찮은 혀가 필요하다. 대여섯잔 마시다 보면 혀까지 취하는 바람에, 미묘한 차이를 구분짓기는 힘들 수 있으므로 니혼슈도와 산도를 기준으로 골라 마셔봄을 추천한다. 그렇게 취향을 조절해가며 마신 끝에 결정한 두 개의 베스트 니혼슈는 다음과 같다.

글 쓰다보니 쌀 종류가 같은걸 이제 알았다 (.....)

- IMA는 첫 잔으로, NOPA는 마지막 잔으로 마신 술인데 공교롭게도 둘이 가장 맛있는 술이었다. 중간의 8잔 동안 방황했던 가장 큰 이유는 IMA의 니혼슈도/산도 수치가 모두 비공개다. 콧대가 높은건지 비밀이 많은건지 여러모로 궁금한 술. 그랬기에 '어, 맛있다!' 느낀 이후로 꽤나 많은 삽질을 반복, 간신히 찾아낸 NOPA에서 내 취향의 단서를 어느정도 얻어낸 셈이다. 나는 '니혼슈도가 상당히 낮은 / 산도가 약간 있는' 술을 좋아함이 드러났다. NOPA에서 니혼슈도 -25.3을 확인 했고, 산도야 마셔보면 새콤한지 아닌지 알 수 있으니. 말하자면, 식초가 되기 직전의 술이랄까. 음. 까다롭다. 

NOPA는 큰 병 밖에 없어서 사온 IMA. 근데 NOPA 사올걸 그랬어 흑흑.

- 시음 후 샵을 둘러보며 NOPA와 IMA를 확인했더니 의외로 가격이 저렴하다. 방쿤의 니혼슈 취향은 꽤나 저렴이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겠구나, 싶다. 

1200엔 투자해서 오이 두 개와 술 열 잔으로 적당-히 취했다.

- 폰슈칸 탐방을 하면서 느낀 점은, 세상에 하나 쯤은 내 입맛에 맞는 인생 사케가 있구나-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다양한 사케들을 마셔봐도 어딘지 모르게 불만스럽고, 맛이 없다고 느꼈기에 내 삶에서 니혼슈=쇼츄 종류가 많았다. 이번에 마음 먹고 니가타에 온 것도 내 입맛에 맞는 사케를 하나쯤 알아가자는 목적도 있었고. 폰슈칸 덕분에 매우 저렴한 비용과, 약간의 간 건강을 투자하여 인생 사케를 찾았다. 물론 아직 맛보지 못한 101종의 사케가 남아있으니 몇 번이고 재방문하여 명확하게 내 취향에 맞는 단 한 병을 찾아내는 미션은 유효하다. 


- 와인과 사케가 다르지 않은듯 싶다. 쌀이냐 포도냐의 차이일 뿐, 한 병의 만족스러운 술을 빚어내기 위해 들이는 정성과 그를 즐기는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IMA 라벨에 붙어 있는 'JAPANESE PURE RICE SAKE'라는 문장이 묵직-하게 다가오는 공간이었다. 사케는 SAKE로 통하는 세상이다. 쌀로 빚은 술에 'RICE WINE'이라고 붙여 놓는 해괴망측한 짓을 얼마나 많이 봤던가. 아직도 사케가, 니혼슈가 내 입맛에 맞지 않는 술이라고 단언하는 이가 있다면 니가타역에 가볼 것을 권한다. 설국의 고장, 에치고-유자와 역에도 폰슈칸은 있다. 111종의 술 속에서 내 입맛에 맞는 취향적 도전 속에서 스스로가 또렷해지는 한 잔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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