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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백수 방쿤 Apr 07. 2019

F=m·a

삶이 무거우면 노력해도 굴러갈 수 없다.

나의 20대는 팽이 같았다. 잠깐은 열심히 일하는 것 같아도 대부분 제자리였으며, 노력 하는 것 같지만 좌표이동은 크게 없었다. 스스로는 분주하게 이겨내고 버텼다고 생각했으나 실상은 넘어지지 않는 것이 전부였다. 이동하기는 커녕, 쓰러지지 않는데에 전부를 바쳤다.


그 당시 삶을 가장 무겁게 짓누르던 것은 대학과 졸업이었다. 졸업만 하면 취업 할 수 있고, 취업이 되면 남들만큼은 살 수 있어. 몇 년 늦어졌어도 괜찮아. 라며 끝끝내 벗어던지지 않았다. 2009년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휴학을 할 때도, 2011년 말 사진으로 뛰어들겠다 다짐 했을 때에도 휴학이 아닌 자퇴를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다. 

대학은 10대를 다 바쳐서 얻어낸 훈장이라 믿었다. 특별한 고액 과외 없이 학원 하나 다니면서 과학고에 들어갔었고, 과정은 힘들었으나 한양대 공대에 장학금을 받으면서 들어갔던 과거는 포기하기 힘든 찬란한 순간이었다. 아마도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때가 아닐까. 수시 면접이 끝나고 1공학관 문을 박차고 나가면서 어쩐지 붙을거 같아 기쁘게 어머니께 말했던 그 순간. 동대문에서 프라다 원단이라는 까만 자켓을 사고, 고양이가 박혀 있는 빨간 넥타이를 샀던 반나절의 서울 나들이. 

그렇게 빛나는 순간이 다시 오리라 믿고 7년을 넘게 버텼다. 힘들고 괴롭지만 언젠가 졸업은 할 수 있으리라 믿고 버텼다. 사실은, 1학년 1학기에 장학금을 놓쳤을때 깨달았어야 했는데. 너무나 오랫동안 인정하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했다. 기계공학은, 아니 공학 자체가 나랑은 맞지 않았다. 직접 선택한 대학 전공이지만, 삶의 전공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데에 7년을 썼다.

2016년 10월에 미등록 제적으로 학적을 멈춰뒀다. 4학년은 자퇴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기도 했고, 딱히 자퇴까지 할 만큼 용기가 있지도 않았기에. 그렇게 학업을 멈추고 내려놓으니 삶이 참 가벼워졌다. 예전에는 생각만 갖고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면, 이제는 가벼워진 만큼, 같은 노력을 갖고도 훨씬 더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하는 기분이다. 움직여보기 전에, 내가 가능한 노력의 총량이 어느정돈지를 알고 그러한 힘으로 내 삶을 밀어대면 언제쯤 결과가 나올지 슬슬 보인다. 

사람이 쓸 수 있는 노력의 총량은 제각기 다르다. 스스로가 노력부자다, 라고 생각한다면 자신의 삶이 무겁더라도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노력의 총량이 타인보다 적다면 어쩔 수 없이 욕심을 덜어내어 삶을 가볍게 만든 후 움직이거나, 바라는 것 없이 현재를 버텨내는 방법 밖에는 없다.

7년을 간신히 버텨내다가, 고등학교까지 포함하면 10년치의 미련을 벗어던졌던 삶은 채 3년도 되지 않아 꽤나 먼 곳까지 나를 끌고 왔다. 아직 가속은 붙는 상태다. 난 노력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생각했는데, 나의 노력에 비해 삶이 턱없이 무거웠을 뿐이었다. 

단순히 노력만 갖고 삶은 굴러가지 않는다. 내 삶이 얼마나 무거운지, 내 노력의 총량이 어느정도인지 깨달은 후 적절히 비워내고 굴려나가야 원하는 방향으로 굴러 갈 수 있다. 방향은 나중의 문제. 일단은 굴러갈 수 있을 만큼 본인의 삶을 명확히 재어보고 나의 노력을 충분히 바라보면 좋겠지. 부끄럽고 실망스럽고 죽고 싶을때도 종종 있지만, 지금보다 더 나아지기 위한 과정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여기까지 왔다.

누군가에게 대학은 가속도로 작동할 수 있겠으나, 적어도 나에게 대학과 학벌, 학위와 졸업은 그저 묵직한 질량으로 나를 눌러대던 방해물일 뿐이었다. 스스로의 삶을 해석 해보고, 혹시나 내가 바라고 원하던 것들이 사실 나를 짓누르고 있는 것들은 아닌지 돌아보는 주말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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