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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백수 방쿤 Jan 03. 2018

올해는 건강한 개인주의자가 되자.

건강한 개인주의자로 자리잡는 다섯 가지 규칙

- 새해 다짐이 차고도 넘치는 1월 2일이다. 대개 신년 다짐은 특정 수치와 목적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 살을 몇 kg 빼겠다거나, 몇 개의 도시와 나라를 여행하겠다거나. 혹은 명확한 금전적 수입이나 커리어적 성과를 포함 할 때도 있다. 그러한 신년 다짐들은 점과 점으로 표현되는 피상적인 목표들이다. 현재의 상태가 이러하고 목표하는 지점이 저러하니 이러한 부분에서 저러한 부분으로 넘어가고 싶다는 욕망을 적어두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지점에서 목표하는 지점으로 이동 하는 경로까지 설정하는 경우는 드물다. 방법론적인 부분을 고민하지 않고 으레 거창한 목표만 세우니 결국 현재에서 다음 지점으로 이동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욕망을 현실의 단계로 이끌어오기 위해서는 지리멸렬한 계획과 일정을 한데 모아서 하나의 경로와 확정적 실행으로 만들어 나가는 끈기와 노력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목표가 생겼다면 그 목표까지 움직이는 시간과 노력을 이겨 낼 만한 삶의 태도가 훨씬 중요하다.

- 올해에는 건강한 개인주의자가 되기로 다짐했다. 구체적인 신년 목표 대신 향후 10년을 일궈나갈 삶의 태도를 정의 하고, 그에 따른 삶의 규칙을 정하기로 했다. 크게 다섯 가지 규칙을 생각 해 봤는데, 사람에 따라 다를 수도 있고 더 나은 규칙이 있을 수 있는 만큼 댓글을 통해 활발히 소통해보면 좋을듯 하다. 




하나. 확고한 나만의 취향을 갖는다.

유행을 타되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취향이 중요하다.

- 취향(趣向)이란 뜻이 향하는 방향이다. 내 뜻이 향하는 방향을 명확히 정하고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취향을 갖고 사는 길이다.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선택적 상황에 맞닥뜨리고 그러한 선택 속에서 어떠한 선택이 의미 있는 선택일까 고민하곤 한다. 확고한 나만의 취향을 가진다는 것은 그러한 선택적 상황에서 고민을 덜고 보다 큰 행복을 얻는 첫 번째 지침이다. 남들이 선택하는 것을 믿고 곧이 곧대로 따르는 것은 심적으로 편할 수 있지만 그러한 선택이 반복 될 수록 진정한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 갈 기회를 하나 둘 잃는 것이다. 일상 속에서 나 만의 색을 찾는 소재가 있다면 바로 음식이다. 무얼 먹을지 선택하는 것은 삶을 유지하는데 있어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직장 속에서 나 만의 메뉴를 먹는 것은 힘들 수 있지만, 적어도 퇴근 후나 주말의 식사 정도는 타인들의 입맛을 따라가지 말고 내 스스로의 입맛과 촉을 시험해보는 한 끼에 투자해본다. 혹은 유명한 식당에 한 번 가서 유명한 메뉴를 먹어 보고 나 만의 평가를 내려 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같은 식당에 간다면 먹어보지 않은 새로운 메뉴에 도전 해 보고, 예전에 미처 알지 못했던 나의 새로운 취향을 깨닫는 것도 작은 즐거움이다. 타인 속에서 나의 색깔을 빛내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하게 주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 만큼이나 확고하고도 명료한 취향이다. 


- 2013년 부터 운영하던 식문화 페이지 '내가 지금 먹고 있는것들 - Eat Now'에서 얻은 것이 있다면 모든 이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되, 내 방향은 스스로 정할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또한 객관적이며 포괄적으로 표현 될 수 있는 맛과, 주관적으로 서술 할 수 있는 맛이 분리 가능하다는 점도 알았으며 그 만큼 개인적 취향과 더불어 집단적 취향 역시 존재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다만, 주관적 취향이 명확한 상태에서 만나는 집단적 취향에는 확신을 갖고 거절하거나 따르는 것이 가능했지만, 내 주관이 없는 상황에서 만나는 집단적 취향에는 거의 무조건적으로 따를 수 밖에 없는 수동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그렇다. 유행이랍시고 무작정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내 취향과 부합되는 유행의 흐름이 있다면 그를 따라 더욱 넓고도 깊은 주관을 키우는 기회로 삼는 것이다. 지금의 흐름이 내 방향과 맞는 흐름인지 아닌지 명확하게 알고 택하기 위해서는 그 만큼 나의 확고한 취향이 중요하다. 집단적 흐름에 함께 한다는 작은 안도감이 아니라, 그러한 흐름 속에서도 명확한 나만의 배를 타고 스스로의 선택적 발자취가 빛날 수 있도록 탄탄한 취향을 기르는 연습을 해 보자. 


둘. 나의 영역을 명확히 긋고 지킨다.

내가 나로서 존재 할 수 있는 영역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 영역은 크게 물리적 영역과 심리적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물리적 영역이란 실제의 육신이 향유하는 시공간적 영역을 뜻하며 심리적 영역은 사회적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이루는 경계선 내부의 영역을 의미한다. 두 부분에서 모두 나만의 영역이 필요하다. 


- 물리적 영역을 명확히 긋고 지키기 위해서는 일정 시간동안 나만이 존재하는 영역에서 나만의 일을 해 나가야 한다. 일이란 딱히 거창할 것이 없다. 게임을 할 수도 있고 지금처럼 글을 쓸 수도 있다. 그간 관심도 없던 주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웹서핑을 해 나간다거나 쇼핑을 해도 좋다. 하루 중 특정 시간을 특정 공간에서 보내는 것을 습관화한다. 직장에서도 잠깐의 혼자 됨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것이 좋다. 만약 집 안에서라면 내 방이 있는 것이 가장 좋고, 원룸이라고 해도 잠시 전등을 끄고 촛불을 켠다든가 해서 조금이나마 더 '특별한 나 만의 공간적 분위기'를 연출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시간에,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공간에서의 사유를 만끽해 본다. 러닝타임이 일정한 음악 플레이 리스트를 만들어 이 시간에 틀어 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정녕 물리적인 공간을 뽑아낼 수 없는 이가 있다면 코인노래방을 추천한다. 단돈 천 원이면 20여분동안 나 만의 방에서 마음껏 소리지르며 놀 수 있다. 

- 사실 개인주의자는 심리적 영역을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심리적 영역은 '여기까진 괜찮아.' 라는 양보선이 아니라, '여기서 부터는 출입 금지.' 라는 데드 라인 이다. 양보선으로 그어 놓으면 한 걸음 두 걸음 자꾸만 양보하게 되기에, 만약 심리적 영역에 있어서 명확한 경계를 긋고 싶다면 허용이 되는 범위가 아니라, 허용 할 수 없는 범위를 긋자.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관계가 형성 되고, 그러한 관계를 맺고 유지하다보면 불현듯 데드 라인을 치고 들어오는 무례한 사람이 존재한다. 대개 이러한 무례함은 질문으로 포장되어 그럴싸하게 배달된다. "왜 혼자 밥을 먹어요? 친구가 없어요?" 사실 이렇게 치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저러한 질문이 무례한 질문이라는 것 자체를 잘 모른다. 가장 좋은 방법은 비슷한 수준의 충격을 담아 고스란히 반송 시키는 것이다. "혼자 먹는게 더 즐겁고, 딱히 친구랑 먹는대도 당신이랑은 먹고 싶지 않아요." 정도면 적당하다. 여기에 조금 더 공격적으로 되돌려 준다면 "혼자서는 밥도 못먹어요? 혼자서 할 줄 아는게 있긴 있어요?" 정도를 얹어 줘도 좋다. 무례함에는 무례함으로 딱, 받은 만큼 되돌려주자. 이유도 없이 기분 나빴던 많은 순간들이 사실은 스스로의 심리적 영역을 침략 당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잘 깨닫자.


- 그러나 무례한 이들 중에는 직간접적으로 맞받아치기 힘든 존재들도 적잖이 많다. 지도교수 라거나 직속 상사 라거나. 심리적 영역을 침범당하고 마구 유린 당하는데도 불구하고 가해자에게 직접적으로 되돌려 줄 수 없어서 속을 끙끙 앓는 경우가 참 많다. 이럴 때는 아쉽지만 물리적 영역을 이용하여 심리적 영역에 쌓인 상처를 풀어야 한다. 스스로만 존재하는 스스로의 시간 속에서 타인에게 침범 당한 내 마음을 어루만지고 회복 해야 한다. 이럴 때 만큼은 비슷하게 상처 입은 동료와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뒷담화를 까도 돌아오는건 두려운 내일 뿐이다. 그렇기에 보다 근본적으로, 언제든지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스스로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혼자만의 시간을 소중히 사용한다.


셋. 혼자 노는 즐거움을 키워 나간다.

타인 속에 파묻히지 않으면, 스스로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 물론 친구들과 함께 노는 것은 무척 즐겁다. 보다 많은 안주와 술을 해치워 나가며 보다 많은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친구들과 놀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혼자 놀 때도 친구들과 놀 때 만큼의 즐거움을 느껴보자는 것이다. 먹고 듣고 보는 모든 행복을 혼자 즐길 수 있지만, 아직 제대로 혼자 놀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꼭 한 번 경험해보라 추천하는 것이 홀로 여행이다. 

- 경험상 함께 할 때 보다 혼자 할 때 훨씬 즐거웠던 것은 여행이다. 일단 여행을 혼자 가게 되면 모든 일정과 계획을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타인과 여행을 갔다가 망쳤던 경험이 있는 이라면 잠시 눈을 감고 상상해보자. 기껏 짠 계획에 태클 걸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징징대는 친구가 없었다면, 현지 맛집이랍시고 들어갔던 식당에서 자기 입맛과 맞지 않는다며 징징대는 친구가 없었다면, 나보다 30분 늦게 일어나고 1시간 늦게 준비해서 결국 계획의 절반도 소화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날이 없었다면. 여행이 훨씬 재밌지 않았을까? 올해 한 번 정도는 내가 그린 지도 위에 내가 세운 계획을 펼치며 정면으로 낯선 환경에 스스로를 던져 넣어 보자. 그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일련의 경로를 따라가면서 홀로서기의 즐거운 감각을 모든 세포와 신경 속에 새겨 넣어보자.

- 여행이 어렵다면 극장을 가도 좋다.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싶은 시간에 느끼고 싶은 대로 느끼면서 마음껏 볼 수 있다. 눈물이 나면 흘리면 되고, 팝콘이 땡기면 먹으면 된다. 재미 없으면 재미 없었다고, 재미 있으면 재미 있다고 마음껏 말할 수 있다. 식당은 또 어떤가. 혼자 먹기 가장 좋은 메뉴는 국밥이나 라멘 등 한 그릇 음식들이 가장 좋다. 혼술도 혼밥 만큼이나 즐겁다. 테이블 좌석이 아닌 바 좌석에 앉아 책을 읽으며 위스키나 칵테일을 한 잔 기울이다 보면 혼자라서 더욱 즐거운 시간이 된다. 익숙해지면 혼자 고기판 하나를 차지 하고 고기를 구워먹을수도 있지만, 쉬이 추천하긴 힘들다. 어설프게 지인들 속에 묻혀서 스스로가 외로워지던 순간들을 잠시 접어 두자. 내 몸과 마음을 스스로 사용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오롯이 내 존재를 받아들이고 나와 친해지는 연습을 해 보자. 


넷. 손해를 보지 않는 선에서 타인을 존중하고 돕는다.

내가 나로서 존재 할 수 있어야 타인을 오롯이 도울 수 있다.

- 흔히들 착각하는 것이 '개인주의자는 이기적이다.'라는 말이다. 그러나 개인주의자는 결코 이기적일 수 없다. 왜냐하면 개인주의자들은 타인의 영역을 내 영역 만큼이나 존중하기 때문이다. 만약 나의 개인주의가 타인의 개인주의와 충돌 할 경우(이런 가정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이다, 세상은 넓고 피할 곳은 많기에) 서로의 의견 교환과 절충을 통해 충분히 충격을 최소화 할 준비가 되어 있는게 개인주의자다. 만약 개인주의를 표방하며 이기적인 인간이 있다면, 보다 구체적으로는 개인주의를 그저 핑곗거리로 사용하는 이기주의자가 있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인간의 성품이 문제 되는 것이지 결코 개인주의가 원인은 아니다. 


- 나의 개인주의가 건강한지 살펴보기 위해서는 타인을 돕는 연습을 해 보면 도움이 된다. 개인주의는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되, 타인과의 관계를 일정하게 유지하며 또한 나의 경계를 잘 지켜야 하는 삶의 태도다. 타인을 돕는 행위로 개인주의 성향을 테스트 해본다면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되(도움받는 사람이 불쾌하지 않되), 타인과의 관계를 일정하게 유지하며(도움 이후에도 지속적인 관계가 형성 되며) 또한 나의 경계를 잘 지켜야 하는(손해보지 않는) 삶의 태도를 시험 해보기 좋은 셈이다. 어찌보면 이렇게 '타인에게 주는 도움을 이용'하는 행위 자체가 달갑지 않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행위를 통해 손해보는 누구도 없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행동이 아닐까.

- 타인을 존중하고 돕는 연습은 크게 어렵지 않다. 또한 손해의 범위를 어디까지 상정하느냐에 따라 이타적인 요소는 더욱 키울 수도 있다. 가령 한 달 지출에 비해 소득이 과하게 크다면 일정 수준의 소득을 타인을 위해 기부 하는 것도 어찌보면 손해가 아니다. 그러한 기부를 통해 이익을 얻는 타인에게 선한 영향을 주었다는 뿌듯함이랄까. 그런데에서 기쁨을 찾는다면 충분히 개인주의적인 도움이라고 볼 수 있다. 개인주의자가 이타적인 행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주체적인 행복'이다. 타인과의 긍정적 관계 형성이나 평판의 상승 등은 부수적으로 따라 올 뿐이다. 손해를 보지 않는 선에서 타인을 돕는 과정 자체를 즐기고 그러한 결과에서 얻어내는 행복을 나만의 것으로 맛보고 즐기자. 


다섯. 나만의 일기를 쓴다.

개인의 모든 발자취는 역사가 된다.

- 매일매일 일기를 쓰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 일기는 SNS에 공유 하는 내용이 아니라 진솔하게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쓰는 편지이자 반성문이며, 결과 보고서이자 역사서이다. SNS에 공유하는 내용들은 비록 그 내용이 개인적일지라도 이미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태도가 섞여있기에 개인주의자의 기록이라기엔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개인주의적으로 SNS를 운영하는 스타들도 있지만, 그 사람들 역시 타인에게는 결코 보여줄 수 없는 개인적 영역이 존재한다. 말하자면, SNS는 태생적으로 타인과의 관계 구축과 유지를 목적으로 하고 있기에 개인주의자의 유일한 기록으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이다.


- 일기장은 책으로 된 형태가 좋고 줄은 있는 편이 좋다. 펜과 샤프는 종이에 번지지 않고 손에 묻지 않는 선에서만 고른다면 크게 상관이 없다. 매일 쓰는 것이 가장 좋지만 여의치 않을 때는 쓰고 싶은 이벤트나 생각이 떠오를때마다 적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래도 가급적 하루를 마무리하고 내일을 계획하는 일부 시간을 투자하여 일기를 써 보자.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나 만의 일기를 작성하다보면 생각보다 더 솔직해질 수 있다. 타인이 모르는 나에 대해 작성하다 보면, 나도 모르던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쓰면서 떠오르는 생각과 느낌을 자유롭게 작성하되, 오늘 먹은 음식이나 들은 음악들. 지나갔던 장소 등에 대해 특징적으로 서술해도 좋다. 특히 나 같은 경우는 'AP(Alone Point)'를 적립하여 스티커를 붙인다. 혼자 했는데 좋았던 모든 것을 떠올려 적어본다. 대개 혼밥이 좋았을 때 가장 많은 AP를 획득한다. 혼자 여행이나 혼자 코인노래방에서 부른 노래가 잘 불렸을때도 점수를 준다. 일정 수준의 AP가 모이면 홀로 여행을 계획하거나 새로운 책을 구입하는 등 스스로에게 지속적인 '홀로 놀이'를 할 수 있도록 보상을 준다.

- 개인주의자만 일기를 쓰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일기를 쓰는 행위가 개인주의자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남다르다. 저자와 독자가 모두 나 뿐인 책은 오직 일기 뿐이기에 더욱 그렇다. 쓰고 기록하는 행위 자체가 과정이자 목적이 되기에. 혹시나 자신의 개인주의를 조금 더 굳게 다지고 싶거나, 개인주의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일기 쓰기를 먼저 시작해봐도 좋을 것이다.




- 이상 2018년의 개인주의자 선언이었다. 아마 이렇게 1년 정도 살아보면 2019년에는 더 나은 버전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건강한 개인주의자로서 자리잡을 수 있도록 1년 동안 지금 세운 다섯 가지 규칙을 지속적으로 행하고 내년에 다시금 다섯 가지 규칙을 정해봐야겠다. 앞으로도 종종, 내가 생각하는 개인주의와 개인주의자에 대한 글을 작성 할 계획이다. '내가'를 많이 붙이는 이유는 결국에는 어쩔 수 없는 개인주의자이기에 '내가 생각하는' 개인주의와 '당신이 생각하는' 개인주의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인정한다는 의미다. 다양한 틀에서 최대한 벗어나되, 타인의 틀을 부수지 않고 영역을 침범하지 않겠다 다짐하며 글을 닫는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 역시 행복한 개인주의자로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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