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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백수 방쿤 Jan 11. 2023

테메큘라 최고의 와이너리를 찾아서

Wilson Creek에서의 잊을 수 없는 기억들

비 오는 둘쨋날, 윌슨크릭 어게인

    테메큘라 와이너리 투어 둘쨋날. 오늘은 내가 아내를 모시는 날이다. 어제는 날씨가 화창했지만, 오늘은 비가 오고 꿉꿉한 것이 어째 시작부터 살짝 가라앉는 기분. 개의치 않고 즐겨보려 했으나 첫 번째 와이너리가 그닥 매력적이지 않았고, 애매하게 배가 고파 아내와 고민을 했다. 올드타운으로 가서 점심을 먹고 올까, 다른 와이너리에서 식사를 곁들일까. 그러다 아내가 어제 윌슨 크릭이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고, 거기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하면서 식사하면 좋다고 제안했고 그에 맞춰 다시 윌슨 크릭을 방문했다.


윌슨 크릭 와이너리의 지도 - 우리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맑은 어제와 다르게 비가 오는 바람에 야외 공간 대부분이 운영하지 않았고, 실내에서 대부분의 테이스팅이 진행되었다. 원래 식사를 하고 싶었던 야외 휴게식당 역시 운영하지 않아 결국 근사해 보이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메뉴판과 함께, 윌슨 크릭에서 반드시 마셔야 할 Variant Series White Cabernet Sauvignon

    와이너리에 딸린 식당이라 걱정했으나, 재료도 신선하고 가격도 저렴하여 부담없이 즐길 수 있었다. 우리는 오늘의 스프와 비프 립아이 스테이크를 시켰다. 당연히 레드 와인을 시켜야겠지만, 어제 테이스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화이트 카버네 쇼비뇽(이하 VS WCS)을 다시 주문했다. 주문 하면서도 오늘 술이 많이 들어가지 않을것 같고, 어차피 아내가 다 마실거라 조금만 달라고 부탁했는데 유쾌한 서버분이 손이 미끄러졌다며 다 마시라고 거의 반 병 정도를 주더라. 기분 좋은 친절을 거절할 수 없어 결국 다 마시고 왔다는 후문이.


작은 잔도 아닌데...

    함께 제공된 오늘의 스프는 토마토 크림스프였다. 토마토의 감칠맛이 크림과 부드럽게 조화를 이루면서 완벽한 서양식 해장국의 느낌을 받았다. 어제 너무 많이 마셔서 속이 좋지 않았는데, 부드러운 크림 스프 덕분에 상당히 나아질 수 있었다. 립아이 스테이크는 치미추리 소스와 함께 달걀 세 알이 나온다. 달걀은 cage free, 방목하여 기른 닭이 낳은 건강한 달걀이라고 한다. 달걀 노른자의 진한 풍미가 높은 등급의 소고기의 육향에 밀리지 않아 다채로운 맛을 즐길 수 있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음식과 페어링 하는 와인인데, 화이트지만 카버네 쇼비뇽이다. 보통의 미국 로제를 진판델로 만드는것에 비해 약간은 재밌는 조합이다. 화이트 진판델에 비해 당도가 낮고, 일반 레드와인보다 묵직하지 않아 다양한 음식에 적당히 어울리는 팔방미인인듯 하다. 화이트 진판델은 요즘 한국에서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지만, 화이트 카버네 쇼비뇽은 처음 봤는데 테이스팅때도 첫 잔으로 자신있게 추천한걸 보니 역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만약 당신이 짝꿍과 함께 갔는데 화이트와 레드로 격렬히 갈려서 싸우게 된다면, 싸우지 말고 VS WCS를 마시자. 


허니문 스페셜 기프트

    신혼여행을 일반적인 코스가 아닌 곳으로 다니다보니, 허니문이라고 얘기를 해주면 다들 놀라면서 다양한 선물을 제공해준다. 레스토랑에서 초콜릿 라바 케이크와 샴페인 코르크로 만든 귀여운 목걸이를 선물해줬다. 이미 스프와 스테이크로 가득 찬 위장이어도 케이크가 들어갈 자리는 충분히 있었다. 심지어 초콜릿 케익과도 잘 어울리는 마성의 와인, 너 대체 뭐니. 달콤쌉쌀한 케이크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재밌는 풍경을 만났다.


프로포즈의 순간, 이렇게 공개적으로요?

    안그래도 식사하러 들어가는데 로비에 방송 촬영팀이 시끌벅적하게 모여있었다. 그저 지역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왔나보다, 하고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세상에. 프로포즈 하는 순간을 담기 위한 개인 촬영팀이었다. 인생의 멋진 순간을 프로페셔널하게 담아주다니. 게다가 단 둘이 하는게 아니라, 다른 친구들이 현수막도 들어주면서 뭔가 '인싸다운 프로포즈'의 순간을 목격했다. 우리나라의 프로포즈는 서프라이즈가 감동 포인트라면, 미국의 프로포즈는 뭔가 다른 지점이 있는걸까? 공개적으로 많은 이들의 축복 아래에서 예스! 가 떨어졌고 우리도 식사를 하다 말고 함께 축하해주었다.


한국인 손맛에 취한 미국개

    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레스토랑 로비에 큰 개가 있었다. 아니 식당에 왠 개가 들어와? 그것도 이렇게 큰 개가? 하고 만져주니 사람은 또 어찌나 좋아하던지. 아내가 한국인의 손맛을 보여주겠다며 실컷 쓰다듬어 줬는데, 아무래도 저 금빛 개가 여러모로 붙임성이 좋은듯 하다. 다른 개를 쓰다듬으려니 아직 멀었다며 발짓하는걸 보며 우리도 참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알고보니 이 개들의 주인은 따로 있었는데.


Wilson Creek Winery의 설립자, Rosie Wilson과 함께

    Wilson Creek 와이너리의 그 '윌슨' 분이 개들과 함께 산책중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자신도 남편과 함께 한국에 가본 적이 있다며 대단히 반가워 하셨다. 한국으로 돌아와 궁금해서 좀 더 찾아보니 인터뷰가 하나 나왔다. 남편과 함께 평소 좋아하던 테메큘라에 와이너리를 차려서 가족 사업으로 시작했다고. 와이너리 사업 덕분에 뿔뿔이 흩어져서 살던 가족들이 한데 뭉쳐서 지금은 아들 Bill Wilson이 CEO 자리를 맡고 있다고 한다. 미국 서부의 와이너리 단지에서 매년 포도를 기르고 술을 빚는 삶은 어떨까. 어쩌면 이런 삶 자체가 장수의 비결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귀엽고 붙임성 좋은 개들과 함께 와이너리에서 살아가는 삶을 잠시나마 꿈꿀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왼쪽 위 부터 시계방향으로 Wilson Creek, Bottaia, Mount Palomar, Soutn Coast

    테메큘라에서는 Wilson Creek을 포함하여 총 4곳의 와이너리를 방문했지만, 그 어떤 곳도 Wilson Creek 만큼의 만족감을 주지 못했다. 굳이 하나 더 꼽자면 Mount Palomar 정도? South Coast는 특출날 것 없이 그저 리조트가 딸려 있어 숙박이 편할것 같다-가 전부였고, Bottaia는 미 서부에서 기대하던 맛이 아니었다. 물론 Bottaia 만의 다양한 컨텐츠들이 마련되어 있지만, 대부분 멤버십 회원 전용 서비스였기에 우리처럼 여행으로 온 뜨내기 손님들이 즐길 수 있는 장소는 아니었다. Wilson Creek만이 모두에게 열려 있으며, 누구에게나 따스했으며 미 서부의 개척 정신과 도전 욕구가 살아 숨쉬는 다양한 와인 라인업을 갖추고 있었다. 다시 테메큘라를 간대도, 다시 Wilson Creek에 방문하리라.




스페인 셰리보다 더욱 더 맛있었던 크림셰리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에 많은 와인을 사오진 못했지만, 스페인 셰리보다 더욱 더 강렬했던 Wilson Creek의 셰리 와인을 하나 갖고왔다. 주정강화라 변질 될 걱정도 없이, 우리의 Wilson Creek이 정말정말 그리워지는 어느 날 마셔볼까 한다. 달콤했던 그 날의 추억과, 신혼여행 부터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의 사랑을 약속하며, 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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