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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백수 방쿤 Jan 09. 2023

소소하지만 가까운 행복을 위하여

산타모니카의 낮과 밤

    신혼여행 첫 목적지이자 첫 구역이었던 산타모니카도 어느덧 마지막 부분이다. 산타모니카에서의 여남은 흔적들은 날짜와 상관 없이 시간의 흐름대로 떠올려볼까 한다. 당신의 몇 번째 미국이 산타모니카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첫 인상으로 남은 미국이므로. 


1. 점심이라면 - 마가리타에 취해서 마트 쇼핑

미 서부에서 먹는 멕시칸은 최고야! - SOL AGAVE

    산타모니카 해변 근처는 관광객용 어중이 떠중이 식당과, 숨은 맛집들이 서로 혼재해 있다. 지갑만을 털어먹기 위한 일회성 식당인지, 다양한 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장소인지는 결국 트립어드바이저나 구글맵 등에서의 리뷰를 통해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솔 아가베는 골드짐에서 아침 운동을 마치고 점심 메뉴를 고민하다가 숙소 근처에서 찾은 멕시코 요리점이었다. 리뷰 사진 중 마가리타 샘플러와 양고기가 너무나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었기에, 3대 영양소인 프로틴과 알코홀을 채우기 위해 적당한 장소라 생각했다.


리뷰에서 보고 반해서 시켰다가, 결국 하나 더 시킨 마가리타 샘플러

    마가리타 샘플러를 시키는데 푸근한 인상의 서버분이 '난 이거 한 번에 세 개씩 시켜 먹어!' 라고 자신있게 권하셔서 당황했다. 아니 아무리 잔이 작아도 그렇지 이걸 어떻게 한 번에 세 개씩, 열두잔을 마셔요? 그러나 각자 두 잔씩 마셔본 우리는 결국 서로 번갈아 다른 종류 두 잔을 마저 마시기 위해 샘플러를 하나 더 시켜버렸다. 보통의 소금으로 마무리하는 마가리타와는 다르게, 매콤한 고춧가루가 함께 뿌려져서 뭐랄까 라임칠리 파우더가 잔뜩 묻은 느낌이다. 맵고 알싸한 가루를 입술에 듬뿍 묻히며 달달한 마가리타를 마시면 보기완 다르게 도수를 잔뜩 높인 알코홀이 몸을 후덥지근하게 데운다. 사실상 입 안에서 느낄 수 있는 오미(五味)가 모두 폭발하는 맛. 메인 요리가 나오기도 전에 마가리타 한 잔씩을 끝내버렸으니. 당신이 칵테일을 좋아하거나, 마가리타를 좋아하거나, 멕시코 요리를 좋아한다면 산타모니카에서 솔 아가베는 한 번 들러봄직 하다. 

대충 오미가 폭발하는 마가리타

    양갈비는 비주얼과는 다르게 살짝 질겼지만, 그래도 육즙이 가득하며 요청한대로의 미디엄 레어 굽기가 잘 완성되어 나왔다. 이미 마가리타 덕분에 적당히 취한 상태였으므로, 모부님도 알아보기 어려운 낮술이었으므로 치즈와 섞은 매시드 포테이토와 함께 잘 먹었다. 옆에 나온 구운 쥬키니도 아주 좋았다. 보통 사진만 보고 시켰다가 실망했던 경우가 많은데, 솔 아가베에서의 양고기와 마가리타 모두 기대 이상은 해 주었다. 


화이타까지 한 상 가득 즐긴 낮술의 향연

    잔뜩 마시고 나니 거의 마가리타 값이 반이다. 그래도 기분 좋게 마셨으면 그걸로 족하다. 여행지에서의 식사는 늘 스스로 검증해보지 않은 새로운 도전을 반복하는 일종의 퀘스트와 같다. 첫 입 부터 놀라웠던 마가리타 플라이트는 대낮부터 우리를 놀라운 경험으로 이끌었고, 그러한 경험을 하는데 이 정도 가치는 충분히 지불할만 했다. 근 몇 년 동안 마셔본 낮술 중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근처 타겟에서 쇼핑하고, 큰 트리 앞에서 사진 찍기

    아직 술이 덜 깬 상태로 소화 겸 술도 깰 겸 산책과 쇼핑을 겸했다. 산타모니카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식료품점이 Target Grocery였기에 다양한 물품도 구경하고 마실 음료와 프로틴바, 비타민 등을 함께 구매했다. 미국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있는 타겟은, 대형 마트는 아니지만 우리나라로 따지면 전철역 출구 바로 앞에 있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같은 느낌이랄까. 거기에 대부분 CVS, 약국까지 붙어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부족한 영양제나 의약품을 살 때도 요긴하게 쓸 수 있다. 바로 옆에 아울렛 같은 상가가 있어서 좀 둘러 보다가 트리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낮술 하고 알딸딸한 상태로 즐기는 쇼핑, 술김에 이상한 것들을 살 수도 있지만 그 또한 추억이리라.


2. 해가 질때 나가보는 산타모니카 피어

일몰 한 시간 전쯤 나가보면 딱 좋다.

    산타모니카 부둣가는 다양한 먹거리와 풍경 그 자체로도 유명하지만, 퍼시픽 파크라는 조그마한 놀이공원도 함께 있어 데이트 코스로 적당하다. 해변 바로 옆의 호텔을 잡았지만, 실상 자주 나가보지는 않은게 조금은 아쉽다. 그래도 자주 가볼 필요 없이, 날 좋을때 하루 정도만 마실 나가듯 가볍게 돌아보면 딱 좋다. 


그 66번 국도가 맞다.

    오기 전엔 몰랐는데, 66번 국도의 종착점이 바로 산타모니카 부두라고 한다. 오버워치 좀 해본 사람들은 누구나 들어봤을 66번 국도, 실제로도 존재하고 그 상징 앞에서 사진도 찍을 수 있으니 코스가 참 괜찮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여기에 사진 찍으려고 줄 서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미리 줄을 서서 앞 사람 사진 찍어주고 뒷 사람한테 부탁하고 서로 인간 삼각대 품앗이를 해주면 좋다. 요즘 폰들은 역광으로도 무척 잘 나오므로, 괜히 어색한 사진 찍지 말고 역광으로 강렬하고 인상적인 사진을 남겨보자. 


저물어가는 햇살과 역광은 못참지
흔한 미국 아저씨한테 사진 부탁하면 이렇게 찍어주심

    한 동안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해 두었던 사진이 여기에서 탄생했다. 가끔 인터넷에 밈으로 올라오는 '서양 사람들 사진 진짜 이상하게 찍음'을 직접 당해보니 놀라웠는데, 여기서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분이 사진을 찍는 감각은 명확하게 존재한다는 점이다. 잘 보면 수평수직도 잘 맞았고, 인물 위에 퍼시픽 파크가 적혀있는 관람차까지 깔끔하게 담았다. 한국에서는 '얼빡샷'이라며 놀림감이 되는 사진이지만, 이들 문화에 있어서는 지극히 자연스럽게 잘 찍은 사진이 아닐까 싶다. 한 동안 이 사진 보면서 '미국 사람이 찍어준 미국 사진'이라며 웃음버튼으로 사용했지만, 그 무엇보다도 '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이 들어간듯 하여 신기했다. 


퍼시픽 파크 이용권과 관람차에서 보는 풍경

    퍼시픽 파크 이용권은 자유이용권과, 개별이용권으로 나누어 파는데 어차피 관람차와 코스터를 빼면 거의 아이들용 놀이기구나 다름없다. 자유이용권은 $40이며, 관람차와 롤러코스터는 각각 $10씩 하므로 2명의 관람차와 롤러코스터 가격 $40을 카드 하나에 충전해서 타고 다녔다. 롤러코스터는 작고 아담하며 약간의 스릴이 느껴지지만 부담스럽지 않게 탑승이 가능하다. 폰을 내려놓고 타서 따로 사진이나 영상은 없지만, 한 번이 아니라 적어도 두 번은 돌려주므로 돈이 아깝지 않았다. 롤러코스터를 먼저 타고 관람차를 탔는데, 마침 해가 지고 환상적인 노을이 펼쳐지는 시간에 타서 운이 좋았다. 관람차의 경우 그렇게 크지 않아 몇 바퀴를 도는지 셀 수 없을 정도로 계속 돌려준다. 실상 대기 인원이 많지 않으면 직원 마음대로 계속 돌려주는 느낌까지 받았다. 각각의 놀이기구 탑승 비용은 다소 비싼듯 하나, 오픈된 관람차에서 바라보는 산타모니카의 노을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듯 하다. 그러니, 해가 질 때의 관람차. 밑줄 쳐 두고 반드시 나중에 타 보자. 이렇게 좋다고 말하지만 올릴 사진이 별로 없는 이유는, 뭐 여러분도 알다시피 공개적인 지면에 올릴 만한 사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아님)


다음에 또 보자 산타모니카 피어


3. 소소하지만 안전한 산타모니카의 밤

    이번 LA에서는 할리우드와 산타모니카 크게 두 곳에서 지냈는데 산타모니카가 할리우드보다 훨씬 더 안전하고 정겨운 느낌이 들었다. 부산 광안리에서 펍과 식당을 다니던 바이브 그대로 즐길 수 있어 매력적이었다. 산타모니카의 선셋을 감상한 뒤, 맛있는 안주와 한 잔 더 하면 하루종일이라도 취할 수 있다.

해피아워 + 굴 = 행복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오이스터바였다. 이름은 Blue Plate Oysterette. Blue Plate가 외식업체 체인 같았고, 굴을 비롯하여 타코 등 다양한 메뉴를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영업하고 있었다. 이 집이 매력적인 포인트는 해피아워로 다양한 굴 요리와 주류를 판매하는 점이었다. 미국 바 호핑의 가장 큰 묘미가 바로 해피아워다. 우리나라는 아직 해피아워가 정착하지 않은듯 한데, 미국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펍이나 바에서는 특정 오후 시간대에 주류와 안주를 저렴하게 제공하므로 계획만 잘 짜면 두 곳 이상의 술집에서 해피아워를 만끽 할 수 있다.

굴 6개에 $18 등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가격이었다

    물론 이후 뉴욕의 진짜배기 오이스터바에서 해피아워로 먹고 나니, 아무래도 이 집은 조금 아쉽긴 했다. 그래도 산타모니카에서 이 정도 가격으로 굴을 먹어볼 수 있는 집은 흔치 않은 만큼 주변에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다면 한 번은 추천해본다. 해피아워 하프더즌 굴은 구운 굴과 생 굴 가격이 동일하므로 둘 다 먹어보고 그 중 더 맛난 쪽으로 집중 공략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구운 굴의 풍미도 나쁘지 않았다. 해피아워를 뜻하는 HH가 마치 한글 ㅎㅎ같아 보여 계산서마저 웃고 있는듯 하다. 굵고 짧게 해피아워 내에서 배부르게 해산물과 술을 즐겼다. 그 즐거움은 표정이 살아있는 사진으로 대신한다.


닉값하는 Stout.

    다음은 가볍게 들러서 생맥주 한 잔 즐기기 좋은 Stout - Santa Monica 지점이다. 산타모니카 여러 펍 중 생맥주 라인업이 가장 화려한 곳 중 하나다. 다른 곳들은 보통 밀러나 쿠어스 정도의 아주 기본적인 생맥주만 제공하는 정도지만, 이 집은 On Tap 갯수만 거의 20여가지에 달한다. 다양한 원산지/주조법에 따른 맥주들을 먹어볼 수 있으므로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부터, 본격적인 해외 생맥주를 접해보고 싶은 초심자 모두에게 추천해볼만 하다. 

Tabs and Tots - 가볍게 두 잔 정도씩

    안주를 시키려다 Tots라는 메뉴가 있어서 뭔지 물어봤더니 꼬마감자튀김이었다. 그, 경양식집에서 두세개 정도 올려주는 그 친구가 Tots구나. 이렇게 음식 표현을 하나 더 알아간다. 한 입에 넣기 좋은 감자 튀김과 함께 다양한 맥주들을 먹어보고 싶었으나 꽤나 취해있던 상태에 곧 바를 마감한다는 소리에 두 잔 정도를 마셨다. 닉값은 하는 곳이므로 흑맥주는 반드시 마셔보자. 그때 그때 들어오는 맥주에 따라 Tab 종류 역시 달라지므로, 매번 방문때 마다 설렐만한 곳. 할리우드를 포함해 LA에 총 다섯 개의 지점이 있는것 같으니 홈페이지를 참고하여 여행지 근처에 있다면 한 번 들러봐도 좋을듯 하다.


그 외, 들러보긴 했지만 딱히 알려주고 싶지는 않은 그저 그랬던 곳들

    좀 더 다양한 바 호핑을 하고 싶었으나 아직 시차적응이 끝나지 않았던 몸인지라 이 정도가 산타모니카의 파편적인 기록들이다. 뒤에서 이야기 할 할리우드에 비하면 산타모니카가 비교적 저녁이나 밤 시간에도 치안이 괜찮았고, 여행자에게도 친숙한 장소같았다. 할리우드에서는 오히려 밤에 나가기 무서웠던 사건들도 있었고, 여러모로 LA 시내에서 어디에 묵을지 고민하는 분들이 있다면 조금 멀더라도 산타모니카를 추천한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펼쳐지는 선셋과 부둣가의 놀이공원은, 비록 작고 소소하더라도 언제든 손에 잡힐듯 가까운 행복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안녕, 산타모니카.

    이렇게 산타모니카에서의 하루를 마무리 하고, 와이너리로 출발할 준비를 마친다. 미국에서의 첫 운전과 첫 렌터카는 잘 끌고 다닐 수 있을까? 오래도록 그리울 산타모니카의 선셋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그럼 여러분, 내일 봐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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