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여행에서도 마주했던 미국의 마약 문제
미국으로 신혼여행을 가기 전 가장 무서운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총기, 하나는 마약. 그보다 조금 덜 무서웠지만 역시나 두려웠던 존재는 노숙자였다. 미국에서 3주 정도 있을 예정이라면 어쩐지 총을 맞는다거나 마약에 노출 된다거나, 혹은 마약에 취한 노숙자가 총기를 들고 있지는 않을까 싶은 걱정이 한 번쯤은 들게 된다. 신행 첫 번째 도시였던 LA의 마지막 일정은 할리우드였고, 관광지로 유명한 동네였음에도 우리는 이틀 동안 숙소 근처를 벗어나지 않았다.
렌터카 대여와 반납을 다른 곳으로 지정했는데, 할리우드 숙소로 예약한 로우스 호텔 할리우드에서 AVIS 렌터카 반납이 가능했다. 할리우드에 다른 숙소들도 있겠지만, 로우스가 건물도 크고 아울렛에 붙어 있어서 비교적 안전한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렌터카를 반납하고 근처 식당에서 가볍게 점심 식사를 했다.
루즈벨트 호텔 옆에 딸려있는 버거집이다. 25 degrees. 접객도 나쁘지 않았는데, 화장실이 호텔 지하에 딸려있는 형태라 다소 불편한 곳이었다. 맛이야 뭐 관광지 한 복판에 있는 식당에서 많은 것을 기대할 수는 없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뭔가 할리우드에 도착하면서 부터 우리의 불안함이 급격하게 커지기 시작했고, 일단 배부터 채운 다음에 간단하게 손바닥 사인쪽으로 이동했다.
시대별로, 장르별로 다양한 배우와 감독 등의 사인이 바닥에 널려있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를 찾아보는것도 재미 중 하나. 남들이 다 알고 다 좋아하는 배우들이야 당연히 있었는데, 퀸 라티파도 있는걸 보니 내심 반가웠다. 안성기 분과 이병헌 분의 손바닥 싸인은 차이니즈 극장을 바라보는 방향에서 왼쪽 구석에 있으니 잘 찾아보면 좋다.
그런데 이 극장 앞에서 싸인을 찾으러 돌아다니다가 일련의 껄렁이 무리들을 만났다. 따로 직접적인 교류가 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게서 미국에 온 이래로 가장 짙고 무거운 대마냄새를 맡아서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였다. 산타모니카 길거리에서도 가끔 맡기는 했지만 '아, 이게 대마 냄새구나' 라는 생각만 하고 지나칠 수준이었는데 할리우드에서 맡은 냄새는 정말 대마즙을 스킨로션에 넣었나 싶을 정도로 짙고 묵직한 냄새라 간신히 먹은 점심마저 올라올 수준이었다. 대마 냄새를 어떻게 아냐고 물을 수 있는데, 생전 처음 맡아보는 풀을 태우는 냄새가 꼬릿꼬릿하게 진동하면 아 이거구나 하면 된다. 그 비슷한 냄새조차 일상 생활 속에서는 마주하기가 어려우므로 무엇에 빗대어 표현하기 조차 힘들다. 참고로 산타모니카, 할리우드, 뉴욕 맨해튼 이 세 곳에서 어딜 가거나 누군가와 스쳐 지나가면 꽤나 자주 접해볼 수 있는 냄새다. 위 영상에서 나오는 펜타닐 종류의 진짜배기 마약이야 티가 안나겠지만, 대마 만큼은 그 향의 존재감이 너무나 고약해서 모를래야 모를수가 없으니 늘 조심하길 바란다.
다행히 방도 잘 잡아서 할리우드 사인과 그리피스 천문대를 방에서 볼 수 있었고, 내심 가보고 싶긴 했지만 창 밖에서 만난 풍경을 보고 마음을 싹 접어버렸다. 길 건너에 세븐일레븐 편의점이 있어서 이따 간식거리좀 사러 나가야지, 하고 보고 있는데 왠 후드티를 입은 사람이 비틀대며 이상한 동작을 취하고 있었다. 마치 위에서 봤던 필라델피아 마약 중독자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정신이 이상한 사람인건지, 마약을 한건지,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마약을 한건지 알 수는 없지만. 거의 8시간을 넘게 춤을 추듯 비틀대면서 바닥을 관찰하고 좀비처럼 휘적휘적 저 근처를 계속 배회하고 있었다. 물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달려들지는 않는것 같았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건 없으니. 결국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편의점에 가는 것은 실패했다. 사실 영상에도 조금 나오지만, 저렇게 뭔가에 취해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할리우드 한복판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가는 시민 중 누구도 그를 의식하거나 어딘가에 신고하지도 않았다. 그냥 없는 존재마냥 무심히 지나가는 모습을 보며, 아 여기 사람들은 이제 저 정도 취해있는건 일도 아니겠구나 싶었다.
숙소에서 보이는 노숙자만 서너명에, 마약 청년까지 마주하니 밖에 나가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졌다. 미국인들에게야 아무렇지도 않은 풍경이겠지만, 기댈곳 없는 미국에서 행여나 무슨 일이라도 당하면 어쩌겠나. 여행 오기 직전에 마트에서 승무원이 피습당한 사건도 있었고, 최근 한인타운에서도 노숙자가 총을 쏴서 60대 한국인이 숨지기도 했다고 한다. LA에서는 이미 노숙자에 대한 비상사태를 선포한 상태이니 만큼, LA는, 특히 할리우드와 다운타운은 더 이상 마음 놓고 다니기는 어려운 곳인듯 하다.
우리끼리는 노숙자에서 노를 빼고 '숙자'라고 부르면서 서로 경고해주고 조심하면서 다녔다. 홈리스라는 영어 단어로 칭했다가 행여나 들으면 큰일날 수 있으니까. 다행히 숙소가 아울렛에 붙어 있어서 술집 정도는 갈 수 있었고, 배달 음식이 가능해서 배달로 외식을 해결하긴 했지만 정말 다시는 할리우드에 가고 싶지 않은 최악의 시간이었다.
그 동네가 치안이 어떤지 확인하려면, 호텔 로비의 보안 시스템을 확인하면 된다. 단적인 예로 산타모니카에 있는 쇼어호텔은 24시간 자동문이 열려있었지만, 이번에 묵은 로우스 할리우드는 특정 시간이 지나면 카드키를 긁어야 로비가 열리는 방식으로 전환된다. 카드키가 없으면 아예 로비 출입 자체가 불가하게끔 막아두는 것이다. 뉴욕 맨해튼에서 묵었던 힐튼 가든인에서도 밤이 되면 카드키를 직원에게 보여주어야 인사를 받으며 들어갈 수 있었다. 맨해튼이야 길 바로 옆에 입구가 있으니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할리우드의 로우스 호텔은 나름 규모도 크고 진입로가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철통보안을 지키는걸 보면서 새삼 동네 자체가 안전한 곳은 아니구나 싶었다. 아마 부푼 마음을 안고 미국 여행을 준비하며 이 글을 보는 분들도 있을듯 한데, 너무 들뜨지만 말고 미국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대마냄새를 맡거나, 마약중독자를 만날 수도 있다는 점을 다시금 상기하면서 조금 더 조심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