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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 없어서 직접 만들었다.

'스마트폰 사진 강사'로서 살아온 3년

by 청년백수 방쿤

1. 스물에서 스물여덟 - 무작정 제적 당하다

학적변동.PNG 인서울 사립대 공대 미등록제적 - 현재의 학력

- 2008년에 대학을 입학 할 때 까지만 해도 선배들처럼 졸업해서 취업 할 줄 알았다. 취업 아니면 대학원 이라는 명쾌한 문제에서 다른 선택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렇게 부푼 마음으로 대학 1년을 보냈고 돌아온 2009년,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식당이 망했다. 덕분에 반강제적으로 휴학을 했고 남들 다 다니는 2학년을 꽁으로 날리며 고향에 유배당했다. 이미 늦어진 1년, 시간을 더 허비하지 않고 바로 군대에 가려 했으나 논산 입대 1주일 전, 인생 세 번째의 기흉을 맞이하며 1년 뒤 복학. 여기까지가 스물 둘.


- 그러다가 돌연 '하고 싶은 일을 해 보자' 라며 2010년 2학기 중간에 휴학. 단편여행전문가, 라는 소규모 여행 컨텐츠를 보급하는 일을 진행하고 싶었으나 의지 박약에 빈털터리였던지라 여행 반의 반도 제대로 못 하고 조기 종료. 창직의 의지를 보였던 첫 시도는 지극히 당연하게 실패로 끝났고 복학은 두려웠던지라 2년간 공익근무를 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스물 다섯.


- 정규 복학 이후로 당연히 졸업이 가능 할 줄 알았으나 연이은 전공 과목에서의 F 학점과 점차 수렁으로 빠져드는 학업에 대한 성취도, 이미 졸업해버린 친구들과 후배들에게서 느껴지는 상대적 박탈감과 패배 의식으로 인해 정상적으로 공부를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결국 스물 여덟, 미등록 제적 이후로 학교에 더는 가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 분할 납부 3회 중 1회를 내서 70만원 그냥 날린건 비밀) 그렇게 영영 고졸로 남게 되었고 더는 취업과 대학원중 그 어떤 것도 선택 할 수 없는 입장이 되었다. 뭐 해서 먹고 살지?


2. 스물 둘 여름 - 무작정 강사를 꿈꾸다

강사메일.PNG 2010년 봄, 무작정 현역 강사님께 메일을 보냈다

- 취직이나 대학원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대학 졸업'에 따르는 테크트리에 불과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어떤 경로를 밟았다 해도 최종적으로 내가 원하던 직업은 강사 였다. 그렇기에 어떻게 하면 강사가 될 수 있을지 막연하게 궁금했고, 그걸 알고 있던 아버지가 본인이 들으셨던 강의가 정말 좋았다며 강사님 명함을 받아오셨다. 무작정 적혀 있는 이메일로 연락을 드렸다. 그렇게 기말고사를 준비하던 중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온다.


"혹시 방쿤 군인가요? 저 OOO 강사입니다. 시험이 끝나면 한 번 만나요."


- 시험이 끝난 후 잠실 롯데호텔 로비에서 강사님과 1:1로 만나서는 두 시간 정도 강사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강사로서의 멘탈 부터 실질적인 소득까지 자신이 밟아 오신 발자취와 현재의 위상을 가감없이 말씀해주시는 모습을 직접 겪으니 정말 놀라웠다. 두어번 메일을 주고 받았던 사이 치고는 너무나 많은 것을 배웠고, 대학에서 3학기를 다니는 동안 느낄 수 없던 지적 충만감을 사실상 처음 느꼈기에 울 뻔했다. 이렇게까지 해 주시는 이유가 너무 궁금하여 여쭤보니 다음과 같이 답해주셨다.


"강사가 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더불어 현재 본인의 강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동영상까지 보내준 데에서 정말 하고 싶어 한다는게 느껴졌어요."


- 무엇보다 그 분과 함께 이야기 하면서 놀라웠던 점은 두 시간 내내 내게 집중해 주시며 모든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시고, 눈과 눈을 마주치며 존댓말을 써 주셨다는 것이다. 못해도 아들 뻘인 청년과 동등한 자세로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대화 해 낸다는게 쉬운 일은 아닐텐데도 핸드폰은 무음 모드로 아예 넣어 두신 상태로 두 시간을 내게 모두 집중하여 사용 해 주셨다. 프리랜서가 된 입장에서 평일 낮 두 시간의 모든 연락을 차단한다는 것은 어쩌면 받을 수도 있던 일을 받지 못한 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그 만큼 큰 투자를 내게 해 주셨다는걸 다시금 깨닫는다.


- 그저 두 시간일 뿐이었지만, 그 두 시간 덕분에 인생의 목표는 확실해졌다. 내가 언제 어디에서 어떤 길을 밟아 나갈지라도 결국에 나는 강사로 살아 갈 것이라고.


3. 스물 일곱 여름 - 무작정 강의를 열다

첫 프립.PNG 2015년 7월 26일 - 첫 스마트폰 사진 강의 신청 페이지

- 2015년 여름, 고등학교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새로운 플랫폼 하나를 런칭 했는데 야외 액티비티가 아닌 실내 강의를 열고 싶다는 것이었다. 마침 스마트폰으로 사진 잘 담는 법을 강의 해 줄 수 있는지 물어왔고 지금껏 담아 온 스마트폰 여행 사진으로 두 시간 짜리 강의를 오픈했다. 12명 정원에 11명 신청. 여기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 그리고 첫 강의 당일. 프로젝터와 스크린을 설치 하기로 했던 분은 어디론가 가서 연락 두절. (이후 알아보니 그대로 잠적 퇴사 하셨다고....) 카페에는 프로젝터도, 스크린도 없었고 동원 가능한 화면이라고는 카페 노트북 하나와 내 노트북, 그리고 혹시 몰라 함께 와주신 선배님이 조달해온 노트북 하나. 스크린도 프로젝터도 없이 세 대의 노트북을 놓고 강의를 시작했다. 사실 열악한 환경 탓에 강의를 할 마음도 들지 않았고, 예상 만큼의 강의를 진행 할 수도 없었지만 오신 분들을 그냥 돌려 보낼 수 없으니 막무가내로 시작 한 것이었다. 이제와서 생각 해 보건데 정말 잘 했다고 느낀다.


- 그렇게 Frientrip( Frip) 에서의 스마트폰 사진 강의를 시작했다. 사진 학위도 없고, 그렇다할 사진 강의 경력도 없었다. 그저 예쁘게 담은 여행 사진 샘플과, 실제 그 사진을 담고 보정하는 방법을 공유할 뿐이었다. 단지 내가 가진 능력이라고는 남들보다 조금 더 강의를 잘 하고, 그 만큼 소통하며 알려주는 능력이 있다는것 뿐. 중간 중간 다양한 이슈들이 있었다. 한 번은 규모를 키워보겠다고 20인으로 규모를 늘려 오전 오후 두 타임을 진행하기로 했다. 공간중개업체를 통해 선릉역에 있는 강의장을 일일대여 하여 사용하려 했으나 그 빌딩에 당일 가 보니 빌딩 자체가 부도가 나 있어 사용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결국 근처 스터디룸 회의실을 빌려 사용했고 강의 수익은 고스란히 공간 대여 비용으로 다 지불 할 수 밖에 없었다. 다른 한 번은 새로운 정규 대여 강의장을 사용하려 했으나 역시 공사 문제로 사용 할 수 없어 강의 직전에 서울역 지하 강의장을 빌려 진행하기도 했다.

- 어찌되었건 원데이 클래스를 지속적으로 운영 했고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4. 서른살 여름 - 그렇게 먹고 사는 중

2018 8월 매출.PNG 2018년 8월 프립 운영 내역 - 한 달 동안 180명이 신청하여 171명이 듣고 갔다

- 이제는 월 평균 150명 이상이 내 강의를 듣고 간다. 명실상부 '스마트폰 사진 강사'로서 살아가는 중. 그저 부업 정도로 생각하고 시작했던 일이 대학 제적과 맞물려서 배수진을 친 나머지 본업이 되었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강의를 하기 위해서는 특정 전문성을 나타낼 책을 출판하거나, 최소한 학사나 석사 학위 정도는 필요했다. 혹은 모 협회에 가입 하여 강의를 꽂아달라며 연회비를 지불하고 영업을 하는 등 상당히 고된 초기 작업이 필요했다. 그러나 요즘은 전문화 된 원데이 클래스 플랫폼이 생긴 덕분에 가르칠 컨텐츠와 역량만 있다면 누구라도 강사로서 활약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임원 강의.PNG 8월 중순에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전략마케팅실 임원 분들께 스마트폰 사진 강의를 진행

- 그리고 이번 8월에는 드디어 삼성전자 임원 분들께도 강의를 진행 했다. 스마트폰 사진 강의를 하면서 꼭 한 번 강의 하고 싶던 곳이 두 군데 있었다. 하나는 삼성이나 LG, 애플 등 스마트폰 제조 업체. 다른 하나는 Snapseed를 배포 중인 구글이다. 강사 생활 3년 차에 꿈 하나는 이룬 셈이다. 대학 졸업도 하지 않고, 마땅한 사진적 전문성을 보여 줄 지표 없이 그저 '좋은 컨텐츠와 강의력' 하나 만으로 스마트폰 사진 강사로서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Frip에 차곡 차곡 쌓인 350여개의 좋은 후기 자체가 하나의 경력이 되었다.


5. 그래서 앞으로

그림1.jpg 모든 취미는 돈이 들고, 돈이 된다

- 향후 스마트폰 사진 강의는 지속적으로 발전 시켜 나갈 것이다. 이미 중급 과정 오픈을 눈 앞에 두고 있고, 보다 다양한 외부 강의도 진행 중이니. 현재는 Frip 에서의 원데이 클래스 만큼 공공기관/기업 워크샵 등도 적잖이 들어오고 있다. 교육 과정을 들어가 보면 강사진 대부분이 대학 교수분들이나 고위 공무원 분들인데, 어쩌다보니 나만 그렇다할 학위도 없는 프리랜서 강사다. 뭐 어때. 재밌고 즐거우면 됐지. 우연히 시작 한 강의 하나를 포기하지 않고 성립 시킨 결과 여기까지 왔다. 지난 10여년의 방황, 특히 대학 생활에 쏟아부은 시간과 돈은 말 그대로 똥이 되었다. 다만 그걸 똥통으로 여기지 않고 거름으로 삼아 오롯이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고, 잘 하는 분야에 집중한지 딱 3년. 이제는 몸이 간신히 따라 갈 만큼의 스케쥴을 소화 하고 있다.

- 그 밖에는 교재를 보다 깊고도 넓게 만들어 최종적으로는 단행본 출판을 하는 것도 목표. 또한 강의 만이 아니라 유튜브 채널을 통해 보다 세부적이고도 재미있는 보정/촬영 테크닉을 널리 알리기. 사진 만이 아니라 스마트폰 여행 영상도 제작하여 영상 강의도 오픈 하는 것도 목표. 스마트폰 사진/영상이 아닌 다른 분야의 강의를 진행 하는 것도 재밌을듯 하다. '스마트폰 사진 강의'로 강사가 되었으니 거꾸로 '강사'로서 어떠한 컨텐츠를 공급 할 수 있을까 생각 하는 중이다.


-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어차피 세상에 존재하는 일자리는 갯수가 정해져 있고, 등수대로 나누는 세상 속에서 나눠 갖다가는 내 차례는 영영 오지 않을수도 있다. 단순히 먹고 사는 것 자체가 걱정이라면, 오히려 지금이라도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투자 해 보는 것은 어떨까. 내가 좋아하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나만이 알 수 있다. 누구보다도 또렷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야말로 평생 직장의 첫 걸음, 창직의 시작이다. 어떤 일이든지 가치를 실현하고 수입이 따라오면 그 자체는 노동으로 성립 할 수 있다.

- 만약 강사를 하고 싶다는 마음에 대학 졸업에 목숨 걸고 덤볐다면, 여전히 나는 수천만원의 학자금 대출을 껴안고 있는 빚쟁이 대학생이었을지도 모른다. 강사를 하고 싶어서 강의를 열었던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요즘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바로 실행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걸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 고민하지 말고, 지금의 내가 그 일을 하기 위해선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먼저 고민 하는 것이 낫다. 시작은 가볍게, '안 되면 말고.' 정도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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