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보경 Jul 19. 2020

장벽, 넘을까 말까

한국에서 음악 하기


마음이 복잡하다. 나는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해야 할까...

음악의 본질 vs. 한국의 현실. 갭이 너무 크다.


어떤 느낌인지 영어에 빗대 설명해 보겠다.

나는 뉴욕에서 standard, universal English를 배워왔는데 한국에서는 Korean English를 쓰고 있는 것이다. 문법 위주, 암기식 영어, 꼬고 또 꼰 지문.


지금껏 세계 어느 나라 사람과도 영어로 자유롭게 소통하고 살았는데 한국 사람들이 쓰는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겠다. 내가 보기에는 이상한 영어지만 한국에서는  모두 그런 영어를 쓰고, 자기네끼리는 문제도 풀고 매뉴얼도 있고 이걸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하지만 한국 밖에서는 쓸모없을 영어니까 할 필요 없다고 내가 말려도 될까? 그럴 자격은 없는 것 같다. 난 학생들의 장래를 책임질 수 없으니까. 모든 사람들이 외국에 나갈 기회가 있는 것이 아니다. 혹시 유학을 간다 하더라도 졸업 후에 비자 문제로 돌아와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차피 한국에 살 거라면 학벌이 필요한데, 시험에 나오는 영어가 이런 식이라면 Korean English를 엄연한 dialect(지역 언어)로 인정해 줘야 하는 것은 아닌지. 철저히 국내용이더라도 말이다.


나도 이제는 한국에 사니까 Korean English를 익혀야 하는 걸까? 그리고 그걸 영어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되나? 그게 고민이다.


지금까지 갈고닦아온 언어 덕분에 소중한 인연을 많이 만났다. 나이, 인종, 국경을 뛰어넘어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성장했다. 언젠가 그 친구들, 동료들, 학생들을 다시 만났을 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나이를 먹은 만큼 멋있어지고 더 깊이 있게,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그러려면 universal language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 어쩌면 한국에 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더 노력해야만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온라인 음악캠프 통역을 하면서 Steve Tenebom 레슨에 울컥했던 것은 오랜만에 내가 아는 언어를 쓰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말이 통하는 것이 너무 기뻤었다.


하지만 내가 사는 곳은 한국이다. 여기서 나를 고립시키면서 오리지널을 유지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만약 타협을 한다면 얼마만큼 해도 될지. 후회하지는 않으려나.






작가의 이전글 미용실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