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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보경 Oct 01. 2020

음악성의 증명


미국에서 영주권을 준비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 오늘 아침 뉴스에서 앞으로 비자 발급이 더 까다로워질 거라는 기사를 읽었는데 친구는 진행 상태가 어떤가 하고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순조롭지가 않다고 했다. 이민국에서 자꾸 시비를 건다는 것이다. 음악적 능력을 증명해 보이라며 tangible work를 요구한단다. 


Tangible : 만질 수 있는, 실재하는.


친구는 지금 미국 유명한 음대의 faculty이고 연주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미국에서 손꼽히는 음악제에 아티스트로 10년 동안 초대됐다. 그런 프로필이면 음악 하는 사람으로 탑 급이다. (음악도 사람도 훌륭해서 내가 뉴욕에서 마음 터놓고 지낸 몇 안 되는 한국인이었다.) 그런데 그건 경력이고 니 예술성을 판단할 수 없으니 구체적인 증거를 가져오라고 했단다. 


야 이 C!!!! 공기를 포장해서 눈에 볼 수 있게 만들어 오라는 거랑 똑같은 말이잖아! 그게 말이냐 방구냐 ㅡㅡ;;; 자기가 직접 블루밍턴에 와서 연주를 듣고 감동의 눈물을 흘릴 거 아니면 이건 증명할 방법이 없는 일이다. 이민국 사람들이 작정을 하고 퇴짜를 놓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음악을 잘한다는 것은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마침 지금 엄마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틀어놓으셨다. 교수님이라는 사람은 레슨 시간 내내 핸드폰만 보고, 제자 모임 회비 걷어라 하는 이야기를 하고 계시다. 교수실에는 상장이 즐비하다. 내가 지금 이 글 쓰고 있는 거 알았나 봐 ㅋㅋㅋ


음악 실력, 예술성을 tangible 하게 보여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랬더라면 우리나라에  과거의 영광만 믿고 행세하는 '마에스트로'나 들을 거 없이 연주만 많이 하면서 아티스트인 척하는 사람들이 많이 정리가 되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소리는 공기와 같다. 향기가 될 수도 있고 악취가 될 수도 있지만 어쨌든 흔적이 남지 않는다. 순간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녹음을 하더라도 지나가고 나면 같은 느낌은 절대 되돌아오지 않는다. 


뭐 꼭 음악만 그런 건 아니다. 포장과 내실이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은 어디에나 있다. 유명 셰프의 청담동 레스토랑보다 숨은 우리 동네 피자가게가 더 맛있는 경우가 어디 한둘인가. 소리, 맛 같은 감각은 수치화가 불가능하다. 그래도 음식은 누구나 먹는 것이라서 맛이 없으면 "생각보다 별론데?"라고 솔직하게 비판할 수 있지만 음악은 괜히 어려워 보이고 "내가 음악을 잘 몰라서..." 하면서 의견 말하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다시는 클래식 공연장을 찾지 않겠지. 


나는 장금이가 아니어서 음식 분석은 못해도 맛이 좋고 나쁘고는 안다. 음악도 그 정도만 알아도 된다. 연주자가 잘하면 음악을 몰라도 신기하고 재밌고, 못하면 지루하고 시끄럽다. 나는 클래식 음악 하는 사람들이 고상한 척, 예술적인 척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겠다. 가식적인 행동으로 실력을 감춘다. 입으로는 굉장히 이상적인 말을 읊지만  실제 연주는 엉망이거나, 엉망까지는 아니더라도 맹- 하게 아무 감흥도 없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다. 대중들이 좀 더 자신 있게 자신의 감상을 이야기하고, 연주자들이 냉정한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 


음악에서 tangible evidence를 요구하는 미국 이민국 사람이 정말 무식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진짜 그런 게 가능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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