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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보경 Oct 26. 2020

벌써 일 년

아빠 고마워요. 잘 있지? 


시간이 정말 빠르다. 11월 11일이면 아빠의 첫 기일이 된다. 1년이라는 시간이 이 정도의 길이였구나... 미국에 있을 때는 school calendar에 맞춰 살다가 5월 학기가 끝나는 걸로 1년을 체감했었는데 이제는 11월이 1년을 가늠하는 기준이 될 것 같다. 


1년이 참 스펙터클했다. 당연히 힘들었지만... 시간은 흐르더라. 


은행, 동사무소, 세무서 뛰어다니며 알아듣지 못하겠는 세금 이야기에 눈앞이 캄캄했던 것도 어떻게든 마무리가 되었고, 이사하고 낯설었던 집도 이제는 제법 사람 사는 온기가 돈다. 아빠 없는 엄마랑 나, 둘만의 새로운 관계도 조심스러웠었는데 지금은 투닥거리면서도 사이좋은 룸메이트로 세팅이 잘 되었다. 


'이러다 엄마한테 병수발 시키는 자식이 되는 것인가' 싶게 나빴던 몸 상태도 회복됐고, 앞으로 뭐하고 살아야 하나 막막했었는데 감사하게도 하반기부터는 바쁘게 살고 있다. 아빠한테 보여주려고(내가 아빠를 얼마나 멋있게 생각하는지 말로 고백하기 쑥스러워) 시작했던 블로그를 통해 뜻밖의 좋은 사람들을 여럿 알게 되어 나름 사회생활도 한다 - 아마 아빠가 이걸 제일 기쁘게 생각할 듯. 내가 사람 사귀는 것에 까다로운 걸 유일하게 아쉬운 점으로 꼽으셨었는데. 


쪼끄만 여자들끼리 이제 어쩌냐 하며 안쓰럽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지만, 우리는 아주 잘 지내고 있다. 밝고 활기차게.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아빠가 부럽다. 아빠만큼의 인생을 살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자기가 하는 일에 열정과 자부심이 있었고, 깨끗하게 실력만으로 최고의 위치에 올랐다. 나랑 분야가 전혀 다른데도 아빠가 내게 해주는 조언은 진짜 큰 힘이 됐었다. 어떤 포지션을 획득하고자 전략을 세워서 살았던 적 없고, 그냥 매일매일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는 아빠. 내실 있는 사람은 무게가 있어 철갑선처럼 느리게 수면 위로 떠오른다는 말이 나한테 얼마나 희망을 줬는지 모른다. 아빠로서 뿐 아니라 프로페셔널, 인생의 선배로 되게 멋있었다. 아빠의 태도를 본받아 살려고 노력 중이다. 


만 70에 돌아가신 거니 요즘으로는 너무 이르기는 하지만 우리에겐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있었고, 아빠는 그 시간을 매우 유쾌하면서도 품위 있게 보냈다. 좋아하는 골프와 여행도 많이 하고, 아픈 사람 티 하나도 안 내며 사람들과도 그렇게 잘 지내다가 모임 인수인계까지 끝내놓고 집에서 딱 두 달 있다 가셨다. 집에 계시던 동안에도 얼마나 예뻤는지. 정확히 언제가 끝인지는 모르더라도 가까워진다는 느낌은 있으셨을 텐데... 나라면 집착과 불안을 놓지 못했을 것 같은데 아빠는 진짜 우아했다. 슬퍼 보이긴 했지만... 


원래도 아빠를 인정하고 있었지만 반하게까지 된 건 바로 이 마지막 두 달이었다. 


암 말기에 엄청 고통스럽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아빠는 너무 깨끗하고 편안하게 가셔서 그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하다. 요즘은 코로나 전에 돌아가셔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좋아하는 친구들, 선후배들에게 화려하게 배웅받을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아빠에게는 늙고 초라한 모습이 없는 거다. 활기차고 잘생긴 박광순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아빠 사진을 보면서 엄마랑 이런 얘기를 했었다 : "좀 있으면 아빠가 엄마보다 동생처럼 보이겠네? 나한텐 오빠 같고~" 




엄마랑 나는 이런 농담도 하고 웃으며 잘 지낸다. 집에 방이 하나 남으니 친구들 불러서 에어비앤비 하자는 소리도 한다 ^^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 죽음을 불행하고 우울한 것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다. 우리 집에 이르게 찾아온 것뿐...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하면서 맥빠진 패배자로 사는 것은 아빠도 원치 않을 것이다. 얼마나 허세남이신데 ㅋㅋㅋ 아빠를 위해서도 우리가 폼나게 사는 것이 좋다. 


아빠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뉴욕에서 오래 있었던 것이 아빠 뒷바라지 덕인 줄 아는 것 같다. 남들처럼 부모가 돈 대서 뉴욕에서 소꿉장난하며 살은 줄 아는가 보다. 음악 하는 애들은 다들 그런 줄 아는지 ㅡㅡ;;;  아빠가 든든하기는 했다 - 너는 돈 걱정하지 말고 순수예술을 하라고 큰소리치긴 했으니까. 믿을 구석이 있었으니 잡다한 gig 기웃거리지 않고 제대로 연습할 수 있었고, 그래서 일이 빨리 풀렸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엄청난 버팀목이긴 했지만 남들처럼 돈 부쳐줄 일은 없었다고요! 


나 혼자 독립적으로 살았고 내 실력으로 일했고 나도 아빠 못지않다는 걸 증명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모든 부모가 (음악하는) 애들을 의존적인 멍청이로 키우는 게 아니라는 걸 아빠만 아는 사람들은 모르는 듯. 우리 엄마 아빠가 그런 흔한 부모가 아님을 알려주기 위해서라도 나는 어른으로, 프로페셔널로 제대로 살아줘야겠다. 아빠만큼은 할 거다.(갑자기 아빠가 경쟁자로 둔갑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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