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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보경 Feb 26. 2021

어떻게 죽을 것인가 (2)

죽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책들


아빠가 치료를 중단한 후, 가족한테도 내색 안 하는 두려움이 있는 게 아닐까, 혼자 외로움을 떠안고 지내는 건 아닐까... 아빠가 어떤 생각을 하고 지내는지 정말 알고 싶었다. 우리한테는 여전히 씩씩하게 괜찮다고만 했기 때문이다. 아빠가 원래 감성이 풍부하고 sensitive한 스타일은 아니니까 여자인 나나 엄마가 상상하는 것처럼 복잡한 마음이 아니기를 바랐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표현하지 않는 뭔가가 있을 것 같아서 걱정이 됐다.



그때 읽은 책이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와 최인호의 '눈물'이다.


대부분의 책들은 안 아픈 작가가 안 아픈 독자를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이야기한다.  고전문학에서부터 자기 계발서까지 메세지는 거의 다 비슷하다. 부귀영화보다 소중한 건 따로 있다, 인생 한 번뿐이다 etc. etc... 녜녜, 알았고요~ 그런 건 건강하게 살아갈 사람들을 위한 건설적인 이야기이고, 나는 정말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심정적으로 어떤 변화를 겪는지를 알고 싶었다.



서평을 쓰려는 게 아니니까 내가 궁금했던 문제에 대한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in my humble opinion,) 건강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환자들이 슬퍼하고 절망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두 책 모두 뒷마무리가 허술하다. 작가들이 집필을 시작하던 시기에는 환자여도 비교적 체력이 있었지만 뒤로 갈수록 기력이 떨어졌다는 뜻이다.



'숨결이 바람 될 때'의 후반부는 칼라니티가 점차 잠을 자는 시간이 길어져서 부인이 그의 모습을 관찰한 기록을 적은 것으로 대체되었고, 최인호 님은 본인이 끝까지 집필하시긴 했지만 솔직히 책의 전반부보다 글의 집중력이 많이 떨어진다. 나는 그게 참 다행스러웠다. 몸만 약해지고 정신은 계속 또렷하다면 환자 본인이 얼마나 무력하겠는가. 잠이 많아지고, 복잡한 생각을 할 기운이 없어진다면 쓸쓸함도 덜 느끼지 않을까? 실제로 아빠가 마지막 한 달은 신생아처럼 주무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인간은 아기로 태어나 살다가 다시 아기 상태로 돌아가는 것 같다.





'바람이 숨결 될 때'에서 칼라니티가 언급한 선배 의사가 쓴 책이다. (나는 내가 좋게 읽은 책에 나오는 다른 작가들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책을 고른다.) 셔윈 눌랜드 박사가 다양한 원인에 의한 죽음의 과정과 현상을 서술한 의학서이자, 의료 현장에서 수많은 죽음을 겪으며 생각한 바를 적은 수상록이다.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병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고 인간 수명을 연장시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병리의사들과 다른 입장을 보인다. 길이보다 삶의 질이 중요하다, 즉 인간이 자립적이고 존엄한 삶을 누릴 수 있을 때까지는 누리도록 돕고, 수명이 다해지기 시작할 때는 죽음을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이고 편안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의사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환자를 고통스럽게 하는 연명치료는 물론 반대한다.



현대 의학 기기들은 환자들이 누려야 할 정당한 권리인 희망을 앗아가는 무기들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인류에게 희망을 준다고 알려진 것들이 희망을 빼앗기도 하는 것이다. 생색을 내며 삶을 좀 더 연장시켜줄 순 있어도 그것과는 견줄 수 없을 정도의 큰 대가를 치르도록 강요해, 환자들로 하여금 마지막 몸부림을 치게 만든다.



사람은 죽을 때가 되어 죽는다. 하지만 죽음은 패배나 공포가 아니라, 영원의 세계로 이어진 '각자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생을 연장시킬 수 있다는 그들(병리의사들)의 믿음과 노력, 관점을 무시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생’이라는 것이 원래 그 속성상 유한할 수밖에 없다는 명백한 증거들이 발견되고 있다. 삶이 한계점에 이르면 특별한 질환이나 사고를 당하지 않아도 그냥 흩어져 버리게 마련인 것이다.



죽음은 젊었을 때, 건강할 때 미리 생각해야 할 문제이다. 나중에 급해져서 생각하면 늦는다. 그래서 이 책은 젊은 사람들이 읽어보길 추천한다. (어르신들께서 읽으실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좀 무거울지도...)






마지막 책은 솔제니친의 차가버섯, 아니 암 병동 ㅋㅋㅋ(부끄럽지만 솔제니친이란 작가를 홈쇼핑 차가버섯 선전을 보고 알았다;;;)


이 소설은 사실 나한테 그리 특별하진 않았다. 아빠가 호스피스 계실 때 생각해 봤던 이야기이고, 굳이 다시 복기하고 싶진 않아서 1권만 읽고 말았다. 배경도 우울하고 말이야 ㅡㅡ;; (여름방학쯤 되어서 2권도 마저 끝내긴 하려 한다.) 러시아 소설들은 등장인물 이름이 너무 헷갈려서 그렇지 내용은 그렇게 어렵지 않은 것 같다. 러시아 음악이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데 좀 얕은 느낌? 읽어볼 만은 한 책이다. 아, 웃긴 구절이 하나 있었다.




누구나 자신이 죽는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지금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





이 드라마도 추천.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달린다는 대사가 정말 와닿았던. 청년성 알츠하이머라는 건 우리나라에서는 들어본 적 없는데 일본 드라마에 간혹 등장하는 걸 보면 없는 병은 아닌 것 같다.





오늘 글 길다~ 진짜 마지막으로 내가 자주 방문하는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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