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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보경 Apr 15. 2021

나에게 음악이란


D-10 


아침에 눈뜨자마자 핸드폰을 보다가 흠칫 놀랐다. 오늘이 벌써 4월 11일?!! 연주가 열흘밖에 안 남았어? 

이불 속에서 열흘이라는 시간이 어느 정도의 길이인지를 가늠해보다가 피식 웃어버렸다. '아놔, 나 또 이러네 ㅋㅋㅋ' 


수업에서 이야기만 할 게 아니라 내가 직접 연주를 보여주면 어떨까 해서 외부 촬영 날짜를 잡은 것이 4월 21일이다. 내가 하고 싶어 계획을 짰으면서 그날이 가까워온다는 것에 긴장하고 있다. 혹시 이런 게 변태? 불편함을 자초한다. 나는 왜 이런 짓을 반복하는 걸까. 내가 직접 연주를 기획하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도전이 되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서 어려운 곡, 남들이 기피하는 곡을 자진해서 맡아놓고 '이거 잘 해낼 수 있을까? 할 수 있겠지?'하며 밤새워 연습하거나, 시세(?)보다 비싼 연주비를 받는 고자세를 취해놓고 못하면 안 되니까 내가 나를 들들 볶는다. '그냥 남들이랑 비슷하게 굴면서 편하게 대충 할 걸 ㅠㅠ'이라는 후회를 한 적도 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 때, 나의 기준은 '이 일이 나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가?'이다.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면 돈이 안돼도 하고, 몸이 고생하더라도 배우는 것이 있으면 기꺼이 맡는다. 여러 번 연주해 본 곡이어도 지난번보다 잘하고 싶으니 새롭게 공부해야 하고, 카네기홀에서 하는 연주나 동네 커뮤니티 센터에서 하는 연주나 나한테는 다 똑같이 중요해서 늘 연주를 앞두고 떨리는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지를 생각해야 된다. 나의 역할이 남의 평생 커리어를 좌우할 수도 있는 부담스러운 국제 콩쿠르 반주도 거절하지 않았다. 어떤 종류의 연주이건 하기 전에 맨날 안달복달하면서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 성격도 이상하지. 왜 사서 고생이냐고.  


직업으로서의 가성비를 따진다면 음악을 하는 이유를 찾기는 더욱 어렵다. IT 직종에 있는 누구네 집 아들이 회사에서 주식을 얼마 받았다느니, 부모님께 통 크게 용돈을 드리고 여행을 보내드렸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드릴 수 있는 건 고작 '음악의 즐거움' 뿐이라는 게 너무너무 죄송하다. 그리고는 결심하는 것이다 - 즐거움이라도 제대로 드리자......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다들 가족들에게 미안함을 갖고 사는 것 같다. 줄리어드 첼로 교수님 중에 Timothy Eddy라는 분을 내가 참 좋아했는데, 그분이 가족 이야기를 하시며 'my poor wife'라고 표현을 하셨었다. 그때는 '줄리어드 교수여도 음악을 하며 먹고살기는 어려운가 보다'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게 꼭 경제적인 벌이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음악 하는 사람들이 자기 일에 집중하는 시간, 에너지가 다른 직업에 비해 크다 보니 가족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의 표현이 아니었나 싶다. 


연습을 하며 너무 즐겁다가도 '이 좋은 걸 취미로 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취미로 음악을 했다면 이만큼 악기를 다루고 즐길 수 없었겠지. 전공을 하고 미친 듯이 몰두를 해봤기 때문에 취미가 될 정도의 수준을 가질 수 있었던 거다. 40년 쳐서 겨우 여기까지 왔어 하하하;;;; 음악 전공의 최대 수혜자는 음악을 하는 사람 본인이다. 나 좋자고 하는 거지 내가 음악을 그만둬도 세상 돌아가는 데는 전혀 지장 없다. 




한 번 사는 인생, 음악 하나만 하다 가기엔 너무 아까울 것 같다. 일로서의 음악은 지금까지 해봤던 것으로 만족하기도 하고, 솔직히 좀 이상한 한국 음악계에 목을 매야 되나 싶기도 해서 다른 일도 도전해보려고 여러 가지 공부를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음악을 완전히 놓고 살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번에 연주를 준비하면서 그동안 답답하던 숨통이 트였다고 해야 하나, 이제야 나다운 에너지를 되찾은 느낌이다. 이렇게 한 학기나 분기별로 한 번씩 내가 하고 싶은 곡으로 연주를 할 수 있으면 평소에 다른 일을 하면서 살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그렇게 하는 편이 내 인생을 더 알뜰하게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재야의 고수를 노려봄이 어떨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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