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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보경 Nov 25. 2021

다 나쁜 것은 없다

목요일은 내가 성당 오전 미사에서 반주를 하는 날이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반주 봉사지만 사실 격주로 화를 내게 되는데, 주임 신부님이 미사를 하실 때마다 미사가 너어--- 길기 때문이다. 일반 사람들의 0.3배속으로 말씀을 하시는데다 별로 효과도 없는 침묵이 쓸데없이 많다. 그래서 오늘도 끓어오르는 울화통을 참고 미사를 마치고 성당 근처에 있는 커피숍에 왔는데, 평소엔 내가 너무 아침 일찍 와서 먹을  없었던 스콘이  따끈따끈하게 나와있는 거다. 미사가 일찍 끝났으면 오늘도 스콘은  먹었을 텐데! 세상에  나쁜 일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다. 나쁘기만  일은 없는  같다. 싫은 가운데도 좋은 점들이 분명히 있다. 나한테는 한국의 절망적인 시스템이 그렇다. 시스템은 정말 구린데 그래도 열심히 찾아보면 내가   틈은 찾을  있는  같다. ​


내가 한국에   미국에서 놓고 오기 가장 아쉬웠던 것이 학생들이었다. 나는 가르치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나에게 교육이란 선생과 학생이 상하관계없이 배움의 즐거움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인데, 한국은 교육 시스템이랑 내용이 엉망이라 여기에선  신념대로 학생을 가르칠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한국에선 호기심 있고 자발적으로 공부하는(self-motivated) 애들은 만나지 못할 거고, 나처럼 가르치는 선생은 기대하지도 않을 텐데 앞으로 이걸(teaching) 못하는  너무너무 아쉽겠다고 생각했다. ​


그런데!


의외로 한국에도 예쁜 학생들이 있고, 실제로 같이 즐겁게 레슨을 하고 있다. 물론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한국의 입시를 목표로 하는 어린 학생들은 아니다. 이미 한국의 교육 시스템을 다 경험하고 여기의 한계와 갈증을 느껴 유학을 생각하는 대학생 이상 성인들인데, 자기네들 스스로 발전하고자 하는 욕심이 있고, 캐릭터가 있고(마냥 말 잘 듣는 착한 스타일은 아니다. 자기 의견이 있음), 무엇보다 내가 높이 사는 건 유학의 목적이 '학위의 수집'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 넓은 세상에 대한 궁금함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시스템에 굴복해 찌들지 않고 (20살이어도 찌들려면 충분히 찌들 수 있다)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이 기쁘고, 또 그런 아이들을 만나게 된 것에 감사하다. 어쩌면 걔네들이나 나나 다들 한국이 답답한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서로 숨통이 트이는 게 아닐까.

선생으로서 말고, 연주자로서도 비슷하다.


미국에서는 주변 사람들도 다들 나랑 비슷한 '결벽증' 같은 것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연주를 준비하는 것은 원래 그렇게 치열하고 까다로운 일인 줄로만 알고  연주마다 나를 갈아 넣었다. 그런데 한국에 오니 음악 하는 사람들에게 '음악 작업' 자체는 그렇게 중요한  아니고, 여기저기 얼굴 비추는 '활동'  집중하는 듯하다. 처음에 한국에 와서 만났던 사람들은  그런 가벼운 사람들이라 같이  하는  너무 괴로웠다. 근데  그런 사람들이 연주랍시고 여기저기  나오니까 나도 연주를 해보려면 엮이지 않을 수가 없고... 너무 괴로워서 ' 아무래도 그만둬야 되겠다'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 연주 기회는 내가 만들자' 하고 시작하게   세시반 콘서트이다.


내가 기획자가 되어서 음악회 시리즈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했었다. 한국에는 음악회를 하면 연습보다 드레스, 헤어 메이크업에 더 신경을 쓰는 분위기이고, 진짜 음악 애호가들이 들을만한 연주는 많지 않다. 그리고 내가 외국에서 만난 실력 있는 한국인(or 한국계) 연주자들이 여럿 있는데, 그들이 한국에서 바삐 지내는 웬만한 사람들보다 훨씬 뛰어나지만 한국에서는 연주를 할 기회가 전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사람들이 한국의 관객들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기회를 내가 마련하면 어떨까 하는 의도도 있고, 또 유학을 나가서 기껏 좋은 경험하고 돌아오는 젊은 연주자들이 또다시 한국의 틀에 박힌 분위기에 절망하지 않도록 내가 진짜 코딱지만큼 작은 부분이라도 '여기만은 그렇지 않다'라고 희망을 주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귀찮아서 시작 못할 수도 있었는데 '도저히 남들 하는 데 껴서는 못하겠다' 싶었던 것이 내가 세시반 콘서트를 저지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찾아보면 수도 없이 많다. 안 좋은 상황이기 때문에 돌파구도 있고, 좋은 줄 알았더니 청천벽력 같은 일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화를 낼 일도 없고 우쭐할 일도 없다. (그런데도 말씀 느린 신부님 생각하면 여전히 화가 나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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