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감을 극복하는 법

by 박보경

재작년부터 아마추어 연주자들로 구성된 실내악 그룹을 지도하고 있다. 그냥 레슨으로만 만나는 것보다 연주회라는 목표를 갖고 준비하면 학생분들 실력 향상에 크게 도움이 되니 해보시겠냐고 제안했는데 흔쾌히 동의하셔서 엊그제인 1월 4일 실내악 리싸이틀을 열었었다. 여러 그룹이 짧게 짧게 share하는 공연이 아니라 실내악 그룹 한 팀의 온전한 리싸이틀로. 공연이 토요일이었고 마지막 레슨을 목요일에 했는데, 그날 학생분들이 어쩐지 평소와 다른 어색한 모습을 보이시길래 '평소 토요일에 만나다가 출근 복장으로 평일에 만나니까 어색하신가?'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연주를 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오늘부터 떨리기 시작한다."라고 하셨다.


'아 맞다, 이거 떨리는 일이었지...'


아차 싶었다. 사회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이고 직업적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이자 중견 이상의 선배님들이시라 남 앞에 나서는 일이 아무렇지 않으실 거라 생각해 버린 거다. 악기 연주는 그분들의 전문 분야가 아닌데 왜 나는 똑같은 'presentation'의 일종이니 익숙하실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그러고 보니 11월에 했던 공연에 도와주러 왔던 내 학생이 나한테 "교수님도 연주 전에 떨리세요?"라고 물어봤던 것도 기억이 났다. 맞아, 연주를 하는 한다는 것은 악기를 연마하는 것뿐 아니라 무대에서 내 실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건데 내가 이분들의 떨리는 마음을 미리 살피지 못한 것이 죄송했다.




나도 떨린다. 특히 어렸을 때 떨리던 생각이 나니 학생분들에 대한 마음이 더 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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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요즘 내가 느끼는 떨림은 이런() 느낌의 패닉 상태 떨림은 아니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한 기대감 섞인 떨림이라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홀에서 연주하는 것은 방에서 연습하는 것과 공간감이 완전히 다른 데다가, 관객을 두고 연주를 한다는 것은 사실 관객이 발산하는 에너지를 이용하여 연주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관객석 제일 끝 줄까지 소리가 또렷이 들릴 것인지, 겨울이라 관객의 옷이 두꺼우면 소리를 많이 흡수하기 때문에 그것을 감안해서 연주를 해야 한다든지 등등. 타이밍이나 터치는 연주를 하면서 그 상황(어쿠스틱)에 맞게 적응해야 해서 사실 연주를 하기 전에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이다.


무대 경험이 많이 쌓인 지금은 연주홀에 적응하는 시간이 빨라지고, 다양한 종류의 피아노를 접하다 보니 어떤 감각으로 터치해야 하는지 감이 생겼기 때문에 연주가 기대가 되지만, 어렸을 때는 어쩔 줄을 모르다가 말아먹은 적이 정말 많았다. 레슨 받을 때는 잘하는데 콩쿨에 나가면 딴짓을 해서 선생님께서 "어째서 그렇게 다른 사람이 되는 거니?"라고 하신 적도 있다... 그땐 나도 정말 속상했는데 이제 와 돌이켜보면 내가 악기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없이 음악적인 부분만 신경 썼었기 때문인 걸 알겠다. 나는 악기의 생리를 몰랐다. 피아노라는 악기가 내 터치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 감각을 익혔어야 했다. 그리고 음악적인 부분도 선생님 레슨을 무조건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컬러흐름에 대해 이해를 하고 그걸 매번 다른 상황에서도 비슷하게 구현할 줄 아는 방법을 익혔으면 됐을 텐데 어릴 때는 나도 한국적인 모범생이라 그랬는지 무작정 선생님 레슨을 카피해서 외우려고 했었던 것 같다(그놈의 암기식 학습;;;). 연주를 할 때는 '잘하고 싶다'는 간절함만 있었지 무대에 올라가서 뭘 어떻게 해야겠다는 구체적 전략 따윈 없었으니 사실 그렇게 딴 사람이 되어서 연주를 망치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이상한 것도 아니다.




수많은 좌절, 실패를 겪은 후 미국에 가서 피아노 말고 다른 악기들의 레슨을 접하고, 반주를 하면서 수많은 무대 경험을 하게 되면서 이런 부분들에 깨우침을 얻을 수 있었고, 그러면서 연주가 공포(fright)가 아닌 기대감(excitement)으로 변하게 된 것 같다. 지금은 연주를 할 때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에만은 집중하자'라는 목표를 확실히 두는데 그건 미국에서 공부하면서부터 생긴 습성(?)이다. 연주(performance)는 내가 일정 기간 동안 연습한 것을 보여주는 자리이기는 하지만 내 음악 여정에 있어서는 앞으로 계속 나아갈 과정 중의 한 스텝일 뿐이다. 내가 그동안 집중적으로 훈련했던 부분을 실전에서 실험해 볼 기회로 삼아야 한다. 무대에서 한 가지 포인트에 집중해서 훈련을 하면 적어도 그것만큼은 내 것이 된다. 그저 '잘하고 싶다'는 마음은 욕심일 뿐이고 무대를 통해 얻는 배움의 기회를 낭비하는 꼴이다.


웃긴 게, 한 가지에 집중해서 - 예를 들면 '음 다 틀려도 리듬감만큼은 죽어라 살리겠다'라든지 '내꺼는 다 틀리더라도 상대방 파트를 미친 듯이 들어보자' 같은 목표를 갖고 - 연주했을 때가 틀리는 것도 훨씬 덜 틀린다는 사실이다. 연주를 하며 집중하는 포인트가 확실히 있으면 전체적인 집중력 레벨이 올라가서 그런 건지 이것저것 다 잘하려고 할 때보다 실수 확률이 적다. 내가 내 학생들에게 항상 말하는 게 이거다. "진짜 한 번만 믿어 보라니까? 그걸 믿고 해보는 게 정말 무서운 일인 건 나도 아는데, 무대에서 한 번 해보면 내 말이 뭔지 알 거야. 다 잘하려고 하지 말고 한 가지에 집중해 봐."


근데 또 그걸 해내는 학생들을 보면 신기하다. 나는 너희 나이 때 그렇게 담대하지 못했는데 니네는 그걸 해내네?!!




연주를 앞두고 더 차분한 날도 있고, 이번엔 좀 부담이 된다 싶은 날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연주를 통해서 '나를 발견하는 기회'로 생각하려고 한다. 만약 실수가 있더라도 어떤 상황에서, 무슨 연유에서 실수가 나온 건지 알게 된다면 그것으로 이득인 것이다. 이번 연주가 내 인생의 마지막 연주가 아니니까. 전에 자신의 졸업 연주를 너무 잘하고 싶어 했던 첼로 하는 학생이 있었다. 내가 정말 존경하는 Julia Lichten 선생님 제자였는데, 선생님께서 학생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Paul, this is not THE recital. This is only A recital."


인생에 한 번뿐인 '그(the)' 리싸이틀이 아니고, 하나의(a) 리싸이틀이라는 것이다. 너무 맞는 말이다. 물론 연주 하나하나를 인생에 다시없는 연주로 생각하는 마음으로부터 감동이 나오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번 연주 하나가 end of one's life인 것은 아니다. 나를 증명하고 칭찬받고 싶다는 마음을 내려놓고, 연주를 통해 내가 배울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 무대 공포증은 해결될 수 있는 것 같다.




나도 말은 이렇게 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이번에 서울대 입시 반주할 때는 긴장됐다. 연주가 아닌 (무려) 대한민국의 입시인데다, 남의 인생이 달려있는 일이라 생각하니 떨리더라. 그래도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집중할 방법을 장착하고 들어가서 무사히 끝낸 것 같다. 근데 놀라운 건 입시생 당사자인 학생이 정말정말 침착하더라는 것. 어쩜 그래? 멋있더라고... 보통의 한국 학생들보다 무대 연주 경험(콩쿨, 입시평가회처럼 곡 끄트머리만 하는 거 말고 entire piece, full recital 경험)이 많은 것이 실력뿐 아니라 긴장된 상황에서 집중하게 하는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것을 학생을 보면서도 다시 확인하였다.



P.S. 내가 좋아하는 Jonathan Pryce, 영화랑 드라마에도 많이 나오지만 원래 영국에서 셰익스피어 연극배우로 매우 유명한데 이 사람이 무대 공포증은 이기적인 것이라고 좀 쎄게 표현하였다. 잘하려고 하지 말고, 해야 할 일을 하라고 이야기하는데 무척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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