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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보경 Mar 28. 2020

듣는 것의 힘

손보다 귀가 우선이다


아름다운 연주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완벽하게 연마한 기술? 멋들어진 표현력? 나는 듣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나를 내려놓고 상대방을 들을 수 있는가.


음악에서의 모든 것은 "관계"의 문제로 수렴된다.

작곡가와 해석하는 연주자의 관계, 악기와 연주자, 관객과 연주자, 연주자와 연주자... 모든 것이 관계이다.


작곡가가 연주자들을 위해 정성스레 악보에 기록해놓은 디테일을 하나라도 더 발견해서 원곡의 의도를 표현해주는 것이 연주자의 의무이다. 악기도 내가 힘이 세다고 있는 대로 두들기기만 할 수 없다. 악기의 용량, 가능성, 한계를 알고 나를 잘 따라와 주도록 구슬려야지 무조건 윽박질러서는 되지 않는다. 내가 연주하는 것이 듣는 사람에게 어떻게 전달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점에서 나는 종종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mirror writing을 떠올린다. 내 귀에 들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어쩌면 모든 것을 뒤집어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함께 연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이것에 대해서는 Joseph Gordon-Levitt이 훌륭한 강연을 해주었다.


공연을 하는 사람들은 관객의 주의(attention)를 받는다. 그런데 그것을 의식하고 나를 잘 보여주려 할수록 좋은 연기에서 멀어진다. 다른 배우들을 협력자(collaborator)로 생각하고, 상대방의 연기에 집중하여 그들이 하는 것에 반응하고 그들은 내가 하는 것에 반응하는 것이면 된다. 상대방이 아닌 나 자신에게 집중하여 드러나고자 하면 I probably suck in that scene (열라 못함 정도의 의미 ㅋㅋ)이라 하였다.



자신의 역할에만 집중하는 연기자가 나쁜 것은 아니다. 책임을 다하려고 하는 것임을 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인 것도 알고. 하지만 훌륭한 연기는 보여주기 어렵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연주자끼리 진심으로 듣고 소통할 때에만 감동이 있다. Ego를 버리고 상대방을 배려한다는 것은 내가 모자라서 남에게 묻어간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에게 자신이 있고 품이 넓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를 내려놓고 진심으로 상대방을 들을 수 있어야 아름다움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 Joseph Alessi(그를 그저 뉴욕필 트럼본 수석으로 표현하기는 아깝다. 그는 매우 훌륭한 뮤지션이고 아티스트이다). 그도 인터뷰에서 같은 이야기를 한다.

You get that feeling with great musicians that they not only play but listen.

훌륭한 음악가들의 연주를 들으면 그들이 그저 악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듣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그가 속한 Aries 트럼본 퀄텟을 설명할 때도 그들이 "들을 줄 아는" 연주자인 것을 우선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음감과 리듬감은 듣는 것 다음이다.


듣는 것은 능력이다.  내 기술에 대한 확신과, 내가 드러나지 않아도 스스로를 믿을 수 있는 자존감, 그리고 배려심이 있어야만 들을 수 있다. 약속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진심으로 들으며 자유롭게 연주하는 것은 연주자에게도 관객에게도 더할 수 없는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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