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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인분공부 Jun 15. 2020

오래 다닐 만한 회사는 없을까

전국언론노동조합 출판노동조합협의회의 <2015 출판노동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출판사 종사자들은 평균 근속기간은 3.1년, 그중에서도 편집과 기획 인력은 2.9년이었다. 내 경우는 평균 4.5년이었고 업계 평균보다는 훨씬 길지만 정말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기에는 불충분한 기간이었다. 트렌드가 빨리 바뀌는 문화산업의 이직률이 높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지만, 책 한 종을 기획하고 출간하는 데 1년 넘게 걸리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출판계의 이직률은 일을 제대로 하기에는 턱없이 짧은 기간이다.      


부서나 개인차에 따라 큰 차이가 있지만, 평균 재직기간이 비교적 긴 출판사들도 있다. 그 회사들은 뭐가 다를까?     


확실한 수익 기반을 갖춘 출판사     


장기간 판매되는 스테디셀러들을 다수 보유한 출판사는 매출을 예측하기도 쉽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으므로 안정적으로 회사를 운영하며 다양한 사업 기회를 탐색할 수 있다. 직원들 역시 단기 매출 실적을 위한 소모적인 작업에 덜 동원되고, 기획안과 사업 아이템을 제안하여 뜻을 펼칠 기회를 얻기 쉽다.     

 

국내 저자들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 장기적인 수익 기반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대형 출판사가 아니면 어려운 일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저자들은 대개 여러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하고 요즘에는 스스로 출판사를 창업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대형 출판사라도 부단히 노력해야 유망한 저자들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한때 잘나가던 곳들도 주요 저자들과 실력 있는 편집자들이 빠져나가면 유명무실해지는 경우가 많다.      



출판사에서 가장 확실한 수익 기반은 저작권을 자체 보유한 콘텐츠이다. 영국의 어린이책 출판사 어스본(Usborne)은 모든 콘텐츠를 자체 제작한다고 한다. 유명 아동작가를 섭외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이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을 해서 저작권을 자체 보유한 책들을 전 세계에 수출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교재 출판사나 유아동 도서 출판사, 실용 출판사들은 직원들이 작업한 자체 콘텐츠들을 확보하고 있다. 외부 필진과 협업하더라도 그들이 100% 저작권을 지니지 못하고 공동 저작권을 지니고 있거나 시리즈로서 의미를 지니거나 정교한 편집이 관건이라 편집 저작권이 저술 이상으로 중요성이 있는 도서들은 콘텐츠 활용과 관련된 의사결정에 출판사의 합의가 필수다. 이렇게 직접 개발한 창작물을 국내에서 많이 판매하는 한편 세계 각국에 수출하고 만화, 애니메이션 등 다양하게 응용하여 지속적으로 엄청난 매출을 올리는 출판사들이 있다. 성인 단행본 출판사도 일부 도서들을 내부에서 직접 개발해서 스스로 저작권을 보유하거나 공을 많이 들인 독창적인 편집으로 저술과 동등한 가치를 지니는 편집 저작권을 보유할 수 있다.      


한편 외서 스테디셀러들을 보유하는 것도 출판사의 확실한 수익 기반이 된다. 아주 많이 팔리는 책은 재계약할 때 과도한 선인세를 요구하고 협상이 결렬되면 출판사를 옮기기도 하지만 대체로 재계약할 때의 선인세는 그렇게 부담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그래서 외서 스테디셀러들을 다수 보유한 회사들은 인세 보고 잘하고 5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면 장기적인 수익 기반을 갖게 된다. 이 분야에서도 명작 그림책과 아동도서들을 선점한 유아동 출판사들이 막강한 시장 지배력을 갖고 있다. 유아동 출판사들만큼은 아니더라도 해외 고전들을 선점한 성인 단행본 출판사들은 그로 인한 상당한 이점을 누리고 있다. 각 분야의 고전들과 스테디셀러, 세계문학전집 같은 콘텐츠는 개발할 때는 많은 비용과 시간이 투입되지만 오래오래 활용할 수 있다.      


책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대형 출판사도 모든 시장을 장악할 수는 없다. 너무 협소하여 대형 출판사들이 공을 들여도 남는 게 별로 없는 시장이거나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시장이라면 작은 출판사가 비용 효율 면에서의 이점 때문에 특정 세분 시장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 규모와 상관없이 색깔이 분명한 출판사나 특정 시장에서 확실한 수익 기반을 얻으려는 출판사는 그 분야에서 지속적인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도서 라인을 론칭하고 그 세분 시장에 대한 지식과 노하우를 계속 사내에 축적하여 활용함으로써 안정적인 매출을 올릴 수 있다.      


회사의 미래는 경영 능력이 좌우한다     


유능한 경영자가 지속 가능한 회사,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회사, 직원들이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든다. 이미 확고한 수익 기반을 다진 극소수 출판사가 아니라면 오래 다닐 만한 회사인지 가늠할 가장 중요한 지표는 경영 활동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는가이다.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는 신임 단장이 야구 분야 경력이 없다고 야구선수들과 스태프들에게 무시당한다. 하지만 구성원 각자의 역량과 상호작용, 문제점을 면밀하게 분석한 단장은 야구팀을 효과적으로 재구성한다. 외부에서 필요한 수혈을 받기도 한다. 경영은 이렇듯 사내의 전문성과 자원, 외부의 기회를 효과적으로 결합하여 최고의 성과를 올리는 일이다.      


안정된 매출 기반이 있는데 경영자도 유능하다면 그 출판사의 미래는 밝다. 수익 기반은 확실한데 경영에 문제가 많다면 직원들이 복잡한 사내정치에 휘말려 희생되기 쉽다. 그래도 관리자가 아닌 실무자라면 대안이 없는 경우 자금력이 탄탄한 회사에 최대한 오래 다니는 편이 낫다. 


그때그때 출간되는 신간 판매에 따라 매출이 널뛰기하며 흑자와 적자를 넘나드는 회사라면 경영자의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경영 효율화와 장기 전략 마련에는 소홀한 채 단기 매출 실적으로 직원들을 압박하는 일에만 열심인 회사라면 갑자기 구조조정을 당하거나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심할 수 있으니 적당한 시기를 보아 이직하는 것이 현명하다.      


장기적인 수익 기반과 경영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출판사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어떤 분야에서든 오래 다닐 만한 회사를 고르려면 그 두 가지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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