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땐 서른이 되면 좀 더 어른이 되어있을 줄 알았다. 의식주를 내 돈으로 해결하고, 인생의 중요한 결정도 힘들이지 않고 뚝딱 해내는 사람. 통통 튀던 밝은 기운은 평소 동경하던 차분한 분위기로 대체되길 바랐다.
서른 넷의 난 월급으로 밥 사 먹고 가끔 옷 사 입는 덴 딱히 지장이 없고, 비록 대출이자 덕분에 월급 대부분은 손에도 쥐지 못한다고는 해도 따스한 바닥 아래 담요 덮고 귤 까먹을 공간은 있으니 어른이 된 걸까. 지혜가 깊어져 차근차근 손쉽게 결정을 내리지는 못하니 어른이 아닌 걸까. 좀 더 겁이 많아져서, 걱정하는 마음으로 머릿속 생각을 잠재우는 데 익숙해졌으니 조금은 어른이 된 걸까.
크리스마스이브 전날, 혼자 저녁을 먹고 전화로 사주상담을 받았다. 2년 전부터 매년 신년 사주를 보는데, 그날 밤엔 모르는 사람 붙잡고 신세 한탄 좀 하고 싶었다.
그동안 일하는 건 힘이 들어도, 사람을 보며 일했다. 힘든 일이 닥쳐올 때면, 커피라도 몇 잔 사들고, 아니면 집 앞 베이커리에서 휘낭시에랑 마들렌 몇 개라도 챙겨 회사에 갔다. 직원들 자리에 하나씩 올려두면, 일을 많이 시켰다는 죄책감에서 좀 더 자유로워졌고, 좋은 상사가 된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해서 계속 반복했다. 가끔은 '힘내세요! 주무관님 덕분에 잘하고 있어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조그마한 선물을 보냈다. 그렇게 제법 어른 노릇을 잘하고 있는 줄 알았다.
나 때문은 아니라지만, 직원 하나가 퇴사한단다. 여기 오기 전부터 퇴사하고 싶다고 했던 직원이니까, 요즘 여기저기서 주무관 인력난을 호소하니까, 그래 그럴 수 있겠지 생각하고 싶어도 심란했다. 내가 잘못해서 그런 걸까, 그냥 일을 혼자 다 했다면 나았으려나? 아니면 용돈을 챙겨줬어야 하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잠재우고, 그가 했던 말에 집중한다. 장사를 하고 싶다니 그럴 수 있지. 나 때문은 아닐 거야. 스스로를 위로하다가, 앞으로 누굴 데려와야 하지, 아니 대체 인력을 구할 수는 있을까. 그러던 중 23일 크리스마스이브의 이브 오후, 막내 직원이 휴직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설상가상이 이런 때 쓰는 말이려나?
답답해서 하소연하고 싶은데 남편은 본가로 가버렸다. 엄마껜 서운하게 한 일이 있어 아마도 전화를 받지 않으실 거다. 그렇다고 친구한테 시시콜콜하게 불평을 늘어놓을 용기도 나지 않았다. 다들 빨강초록 색깔과 함께 케이크 혹은 꽃다발을 안고 설렘 가득히 보낼 저녁에 재를 뿌리고 싶진 않았다. 그럼 너무 이기적인 아이 같잖아.
그래서 돈을 지불하고 상담을 신청했다. 업으로 만났으니 고민 이야기하기에도 떳떳하고,12월 23일, 크리스마스이브의 이브 저녁엔 희망적인 이야기에 의지하고 싶었으니까. 사실 신세한탄은 거의 못 했고 거의 이야기를 듣는 입장이었다. 호구살이 있어서 남 좋은 일만 시킨다는 이야기, 그럴 바엔 제 몫 좀 챙기고 힘든 티 좀 내라는 이야기에 코끝이 찡해졌다. 제2의 인생을 모색해야 답답함이 사라질 거란 사주선생님의 말씀에 의지를 불태우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은 호구살을 잠재울 겸, 유학 지원서를 써볼 겸 연차를 냈다. 막상 자기소개서를 쓰려는데,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모르겠고, 쓰다 보니 정리도 안 되고, 그렇게 욕했던 10년간의 공직생활을 피하고는 자기소개가 도저히 불가능하단 걸 보면서 헛헛하기도 하다. 뭐 이렇게 쓰다 보면 또 몇 자는 또 쓰게 되겠지. 그렇게 구불구불 걸어가다 보면 어느새 예순, 일흔이 되어있겠지.
그땐 과연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