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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Jan 22. 2019

길흉화복은 정해져 있을까

잠재된 욕구

"3년 후부터 대운이 들어온다더라."

"사주가 아주 좋단다."

"그 사람하고 살면 계속 싸우게 된대."

"평생 놀고먹을 팔자야."

과연 이런 말들이 사실일까?

인간의 삶이 정해진 운명대로 가는 것일지 생각해 본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때 불안해지기 쉽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알고 싶은 마음이 들어 점을 본다.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각을 말하면 운명이란 것이 술술 풀려나온다.

듣다 보면 자신이 살아온 삶이 어쩌면 그리 정확하게 설명되는지 놀랍기도 하다.

그래서 앞날을 예언하는 말들이 쑥 들어온다.


불확실한 미래가 불안해서 알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런데 스스로 앞날을 예측해서 필요한 대비를 하기보다 근거가 확실치 않은 이야기에 현혹되며 의지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을까.

만약 미래가 정해져 있다면 현재 내가 하는 노력이 아무 쓸모가 없을 것이다.

그냥 운명에 순종할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지금 내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도 운명에 따른 것일까?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길이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어떻게 하느냐가 앞날을 결정한다고 보는 것이 이치에 맞다.

미래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행동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지난날 내가 한 일을 알고 싶으면 현재 내가 받고 있는 결과를 보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고 싶으면 현재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을 보라고 한다.


그런데 인생을 살다 보면 좋은 일이 생기기도 하고 나쁜 일이 생기기도 한다.

길하거나 흉하거나 화가 되거나 복이 되는 일이 교차하면서 일상을 산다.

길하고 복이 되는 일이 많이 벌어지면 '운이 좋다'라고 하고, 흉하거나 화가 되는 일이 많이 일어나면 '운이 나쁘다'라고 한다.

심지어 나쁜 운을 바꾸기 위해 이름을 바꾸기도 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아주 간단하게는 돌을 던지면서 이 돌이 어디쯤 떨어질지 예측할 수 있다.

돌의 무게와 돌을 던지는 사람의 능력을 감안하면 돌이 어디쯤 떨어질지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는데, 이 방법은 이치에 맞다.

과거 경험과 현재 상황을 잘 살펴서 적절한 예측을 한다면 미래가 완전히 불투명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길흉화복도 미리 예측할 수 있을까?

정말로 사주팔자란 것이 딱 들어맞아서 길흉화복이 그대로 일어나는 것일까?

우리는 지구에 산다.

지구에 사는 존재들은 당연히 지구의 영향을 받는다.

지구와 달의 인력 때문에 밀물과 썰물이 생기는 것은 밝혀진 사실이다.

태어날 때 지구의 역학관계가 그 사람의 기길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가정도 해 볼 수 있다.


추운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더운 지방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방식은 다르다.

아주 추운 말에 반팔을 입고도 시원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조금 쌀쌀한 날에 춥다고 덜덜 떠는 사람도 있다.

지구의 기온이나 지형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 연관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주팔자로 푸는 기질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길흉화복까지 사주로 정해질까?


더 근본으로 들어가 보면 과연 길흉화복이란 것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구름이 없고 해가 밝게 떠 있으면 길한가?

폭풍우가 몰아치면 흉한가?

재물복이 없다면 박복한 것인가?


가뭄이 계속되고 있을 때에는 비가 오는 것이 길한 일이고 복이다.

맑은 날씨가 늘 좋지는 않다는 말이다.

좋고 나쁨은 그 자체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원하는 목적과 현재 벌어지는 현실 상황에서 좋고 나쁨은 결정된다.

스님이나 신부님 같은 성직자들은 여복이나 재물복이 없는 것이 아주 좋은 팔자이다.

물론 사업을 하는 사람한테는 돈이 많이 붙는 것이 좋은 팔자가 된다.



길한지 흉한지, 화가 되는지 복이 되는지는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같은 상황이 누구한테는 복이 되고 누구한테는 화가 된다.

벌어지는 일은 어떤 자세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길흉화복이 결정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길흉화복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을 바라느냐'가 핵심 요인이 된다.

마음을 비우면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다 좋은 일이 될 수 있다.

마음이 욕심으로 가득 차면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불만이다.

길흉화복은 자신의 마음이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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