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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Oct 06. 2021

공감 능력

실제와 가상

"가상인 줄 알면서도 눈물이 잘 나는데 현실에서는 남의 이야기를 듣고 전혀 공감을 못해요."

자신의 공감 능력을 의심하는 사연이다.

공감능력이 시대의 화두가 되고 있다.

공감에 대한 오해도 그만큼 많은 것 같다.

(10월 6일 참나원 팟캐스트 방송)



다른 사람이 힘든 이야기를 하면 전혀 공감을 못한다.

'그래서 나한테 어쩌라고?'라는 생각만 든다.

그런데 드라마 같은 곳에서 조금만 슬픈 이야기가 나와도 눈물이 난다.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어째서 공감을 전혀 못하는지 모르겠다.


사연자는 자기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한테 하지 않는다.

심지어 가족한테도 말을 하지 않는다.

어려운 이야기를 꺼내기가 힘들다.

자신은 공감능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사연자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가상과 실제가 너무 다르다는 점이다.

만약에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가상의 이야기에도 반응이 없어야 할 것 아닌가.

지어진 이야기라고 알면서도 슬픈 이야기에 금방 눈물이 난다.

그런데 어째서 현실 이야기에는 그토록 무감각한 것일까.


공감이라는 개념이 화두처럼 회자되고 있다.

현대사회에 절실한 것이 공감이라고들 한다.

공감능력이 있어야 사람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감이란 느끼는 것일까.


공감능력이 없는 예로 전혀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죄의식도 없는 사이코패스를 떠올리곤 한다.

일리가 있는 생각이다.

하지만 공감능력은 단순히 느끼는 능력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드라마를 보며 감정 이입해서 보이는 반응과 공감능력은 다르다.


공감은 타인의 입장이 되어 보았을 때 일어나는 감정이다.

그런데 사연자는 거의 감정을 나누지 않는다.

그러니 공감을 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능력이 아니라 경험의 문제에 더 가깝다.


사연자가 가상의 이야기에라도 감정은 움직이고 있음을 보면 능력이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실제든 가상이든 생각에 따라 감정은 일어난다.

현실에서는 부담을 느끼고 나누지 못하기에 느끼지 못하고 있다.

가상에서는 부담이 없어서 자연스럽게 느낌이 일어나는 것일 뿐이다.



경험의 문제를 능력의 문제로 볼 때 절망하기 쉽다.

용기를 내서 해보면 개발할 수 있는데 말이다.

공감은 능력이라기보다 태도의 영역이다.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어야 공감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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