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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Jan 29. 2019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관심과 정성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리 울었나 보다."

서정주 시인의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웬일인지 이 시는 김춘수 시인의 꽃과 달리 잘 외워지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서정주가 친일파라서 그럴까?

아마도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자연은 순환한다.

불, 공기, 바람, 흙, 태양이 합작해서 만물을 길러낸다.

소가 풀을 뜯어먹으면 그 풀은 소의 일부가 된다.

소가 똘을 싸서 그 똥을 미생물이 분해해서 영양소가 되어 풀을 기른다.

서로서로 그물망처럼 얽혀서 돌고도는 것이 이 세상의 모습이다.

국화꽃 한 송이를 피우는데 관여한 존재가 얼마나 될까?


소쩍새의 울음이 국화꽃을 피웠을까?

언뜻 보기에 소쩍새의 울음과 국화꽃은 상관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시인은 봄에 들었던 소쩍새의 울음을 가을에 핀 국화꽃과 관련짓고 있다.

시에는 상징성이 많으니 소쩍새가 울었던 봄과 국화가 핀 가을을 연관 짓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대충 보고 무심히 지나칠 만한 현상도 민감하게 포착해서 감동을 하는 것이 시인이 가진 탁월한 감수성일 수도 있다.


대충 넘어가지 않고 깊이 파고들다 보면 아주 놀라운 현상을 발견할 수도 있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폭풍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나비효과'는 억지주장이 아니다.

물론 나비의 날갯짓이 폭풍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원인과 결과가 일대일로 연결되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된다.

수많은 원인과 수많은 조건이 결합되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다만 관찰자가 관심을 가진 요인을 골라서 원인으로 연결 짓는다.


지금 나의 삶에 영향을 끼친 요인들은 얼마나 많을까?

그 요인들을 다 알아낼 수 있을까?

만약 슈퍼컴퓨터를 다 동원해서 계산을 하더라도 다 밝혀낼 수 없을 것이다.

세상은 그물망처럼 얽히고설켜 있어서 한 지점을 잡아도 전체가 연관이 되어 있다.

나의 작은 경험 하나에도 온 우주가 다 관여되어 있다는 말이다.


국화꽃과 소쩍새의 울음을 연관 짓는 것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연관을 짓는 관찰자의 마음은 어떨까?

할 말을 다 하지 못하고 가슴에 묻어야 했던 엄혹한 시절에 시를 쓴다면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온갖 은유와 상징으로 본심을 암호처럼 풀어내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에선 시인의 본심을 읽기 어려웠다.


어차피 시를 쓴 시인의 손을 떠난 시를 감상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그래서 나도 내 멋대로 이 시를 해석하고 있다.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수많은 다른 존재의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해석하면 그럴듯하다.

관심을 가지고 정성을 다해서 애를 쓰면 꽃을 피울 수 있다.

하지만 그 꽃은 내 정성과 관심으로 핀 것이 아니다.

꽃을 피우는데 더 가깝게 관여한 요인은 태양, 바람, 흙, 물이라는 자연이다.


그냥 관찰자로만 머물러 있는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이 보고 있는 대상에 마음을 담을 줄 아는 사람이 좋다.

상담을 할 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내담자들한테서도 이런 차이를 쉽게 발견한다.

자신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정성을 쏟는 내담자는 경험을 이야기하더라도 남의 일 이야기하듯 하지 않는다.

작은 경험이라 하더라도 마음이 담긴 이야기를 꺼낸다.

그런데 자신을 잃어버린 내담자는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 속에 자신이 없다.



꽃은 다른 존재의 눈길을 끈다.

과학으로 보더라도 꽃은 종족을 유지하기 위한 생식기관이다.

씨를 넓게 퍼뜨리기 위해 나비나 벌을 끌어들이려 아름다운 모양을 만들었다.

꽃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도 자연의 위대한 설계에 맞는 움직임이다.

꽃을 바라볼 때 그냥 겉모양의 아름다움만 보는 사람과 꽃에 담긴 처절한 생존 의지까지 보는 사람은 정말 다르다 하겠다.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일들을 그냥 의미 없는 몸짓으로 여기는 사람과 꽃으로 보는 사람의 차이는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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