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 자극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꽃'에 나오는 말이다.
꽃은 화려함이고 기쁨이고 의미이다.
이름을 불러주어야 생기가 돌고 기뻐지고 의미가 생긴다는 말이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흔히 말하길 '사람은 밥만 먹고살 수 없다.'라고 한다.
밥이란 생존에 필요한 물질들을 대표한다.
그러므로 이 말은 몸을 지탱하는 것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또 무엇이 필요할까?
우리에겐 마음이란 것도 있다.
마음은 무엇을 먹고살까?
마음도 적절한 자극이 주어져야 제대로 기능한다.
팽이를 돌리려면 계속 채로 쳐 주어야 하듯 마음에도 필요한 자극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스트로크(stroke)라고 한다.
스트로크는 아주 짧은 순간에 가해지는 충격을 말한다.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아주 짧은 순간이다.
수많은 자극을 감각기관을 통해 받아들이면서 마음은 계속 자극되고 있다.
만약 자극이 없다면 마음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마음은 모든 자극에 똑같이 반응하지 않는다.
어떤 자극에는 마음이 다가선다.
그런데 어떤 자극에는 마음이 물러선다.
원하는 자극은 반겨 다가서고 원치 않는 자극은 꺼려서 물러선다.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원치 않을까.
사람마다 다 다르지만 생존에 도움되는 것을 원하고 위협이 되는 것을 피하는 방향으로 진화되어 왔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생물 가운데 인간의 신체 능력은 뛰어난 편이 아니다.
먹이사슬로 보자면 맹수들과 견주어서 훨씬 아래에 위치한다.
그런데 신체 능력이 약한 인간이 어떻게 지구를 호령하게 되었을까?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고 정보를 공유하면서 협력했기 때문일 것이다.
힘을 합치기 위해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스트로크라는 인정 자극을 구하는 것은 이런 이유로 시작되었을지 모르겠다.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사회생활을 전제로 한다.
소외될까 두려워 집단에 동조하고 동화되는 모습에서 이를 알 수 있다.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 불안하고 막막하다.
누군가의 눈길이 느껴지고 내 존재가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안정을 되찾는다.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에 이런 심리가 잘 드러나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어떤 대상에 관심을 기울이고 주의를 하지 않으면 그 대상은 무의미한 존재일 뿐이다.
그런데 관심을 기울여 그 대상에 주의를 쏟는 순간 하나의 몸짓일 뿐이었던 그 의미 없던 대상이 달라진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 꽃이 되었다.'
수많은 자극이 있어도 내가 마음을 주는 자극이 내게 의미가 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거나,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다'라는 이야기도 인정 자극을 말하는 것이다.
사회는 인정을 받고 인정을 하는 관계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삶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마음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살펴서 불만족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어떤 자극을 받아들이고 내칠지 결정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자신이 무엇을 '꽃'으로 삼느냐에 따라 행불행이 결정된다.